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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재난’ 규정…취약층 겨냥 민감군 주의보 새로 도입”

미세먼지 대책 총괄하는 황보연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

등록 : 2017-06-08 15:13 수정 : 2017-06-0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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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이 지난 2일 서울 서소문청사에서, 하루 전 서울시가 발표한 ‘대기 질 개선 10대 대책’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서울시 미세먼지 대책을 총괄하는 황보연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은 요즘 ‘재난 상황에서 긴급구호를 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올해 들어 이미 초미세먼지주의보가 세 차례나 발령될 정도로 급격히 나빠진 서울 지역 대기 상황 때문이다.

그는 날마다 시간대별로 서울시 주요 지역별 미세먼지 농도를 점검하고, 물청소 차량이 서울 시내 도로를 하루에 몇 ㎞나 청소했는지까지 꼼꼼하게 챙긴다. 황 본부장이 이렇게 각종 미세먼지 저감책을 고민하면서 강조해왔던 말이 있다. 바로 “미세먼지야말로 재난”이라는 것이다. 황 본부장은 “오이시디(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미세먼지로 인한 사망자가 2010년 1만7000여명에서 2060년에는 5만2000여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태풍이나 해일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다”며 “미세먼지 피해에 대한 인식을 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철학은 서울시가 지난 1일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내놓은 ‘대기질 개선 10대 대책’에 녹아 있다. ‘10대 대책’의 첫번째가 “미세먼지를 ‘자연 재난’으로 규정하고 시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시민 건강 보호 조치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일 서울시 서소문청사에서 황 본부장을 만나 이번 대책에 대한 배경과 이후 서울시의 미세먼지 대처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시가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하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미세먼지 대책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세먼지는 2013년 세계보건기구가 1급 발암 물질로 규정했듯이 ‘침묵의 암살자’다. 시민들도 미세먼지를 기존의 불편한 것, 보기 싫은 것, 답답한 것이라고 보던 인식을 넘어, 건강의 문제, 생존권의 문제로 점차 인식하는 것 같다. 서울시가 이번 대책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한 것도, 시민들의 이런 앞선 인식에 발맞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5월27일 광화문광장에 시민 3000명이 모여 미세먼지 문제를 토론한 것은 시민의식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행사였던 것 같다.


“이날 시민들이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이것이 서울시가 시민 참여형 차량 2부제나 공해 차량 도심 운행 제한 등의 과단성 있는 정책을 세우게 하는 동인이 됐다. 더운 날 야외에서 하는 토론회에 얼마나 참석할 것인지 걱정도 됐지만, 일찌감치 자리가 다 차는 등 시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참가자들도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주부에서 6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서울시의 ‘재난’ 규정에 따라 어떤 정책 변화가 나타나게 되나?

“우선 구체 대책을 보면, 취약층에 대한 정책들이 새로 마련됐다. 영·유아, 어린이, 65살 이상 어르신, 임신부, 호흡기 질환자 등 미세먼지 취약계층을 위한 ‘서울형 초미세먼지 민감군 주의보’를 새로 도입했다. 일반인 기준으로 위험주의보는 90μg/㎥여야 발령이 되는데, 이때 취약군에 대한 보호가 늦어진다. 그래서 75μg/㎥만 돼도 민감군 주의보를 발령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 기준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서울시가 앞장서서 민감군을 위한 주의보를 마련했다.”

황 본부장은 ‘재난 규정’의 더 중요한 기능은 환경 중심 인식 확산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파리·런던·스톡홀름 같은 유럽 여러 나라는 ‘교통 혼잡’이 아니라 대기환경 측면에서 차량 진입을 규제한다”는 것이다. 이들 도시가 서울보다 대기 질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만큼 더 먼 미래의 삶까지 내다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황 본부장은 ‘재난 규정’을 통해 이런 인식이 우리 사회에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석탄이 싸다고 하는데 ‘공해 비용’을 반영하면 싸지 않다는 생각이 퍼져야 한다. 환경까지 고려해 발전 단가를 계산하면 석탄은 정말 값싼 연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석탄을 비싸고 더러운 연료라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등도 이런 인식 아래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우리도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 투자 등이 절실하다.”

황 본부장은 이에 따라 10대 대책 중에 포함된 ‘미세먼지 연구개발비’가 우리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는 구실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처음 20억원이 책정된 ‘미세먼지 연구개발비’는 미세먼지의 원인 규명, 모니터링과 저감기술 개발, 대응 체계 마련 등에 쓰일 예정이다.

환경문제에서는 정부 정책이 중요한 것 아닌가? 서울시의 ‘선도적 대책’은 정부 정책과 관련해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나?

“이제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지역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피해는 지역에서 더 정확히 알고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노력이 바탕이 돼야 국가 정책도 주민들에게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등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서울시의 이번 대책도 이런 측면에서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에 철학 변화와 구체 대책을 촉구하는 방아쇠 구실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황 본부장은 서울시가 이번에 발표한 ‘대기질 개선 대책’을 남보다 먼저 용기를 내 도전하는 ‘퍼스트 펭귄’에 비유했다. 무엇보다 미세먼지 문제가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닌 지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미세먼지 문제를 “지구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자각하라고 지구가 보내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이런 신호를 깨닫지 못하면 나중에 정말 큰 문제가 될 거예요.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정책 협력이 더욱 강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서울시 대기 질 개선 10대 대책

1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 공공 시민건강 보호조치 강화(7월)

2 ‘서울형 초미세먼지 민감군 주의보’ 도입(7월)

3 ‘서울형 비상저감조치’ 신규 도입(7월)

4 시민참여형 차량 2부제 실시와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 요금 무료화(7월)

5 서울 4대문 안 공해 차량 운행 제한(2018년)

6 친환경 건설기계 사용 의무화(5월)

7 서울시 건축물 친환경 보일러·저녹스 버너 보

급 의무화(9월)

8 미세먼지 대응 R&D 지원 확대(2017년)

9 ‘동북아 수도 협력기구’ 설치(2018년)

10 정부·지자체 대기 질 공동 협력 확대(6월)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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