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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9일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신국현 이사장(왼쪽부터), 한정숙·이순진 조합원, 손경주 이사가 종로구 창신동 백남준기념관 앞에 섰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3월10일 종로구 창신동에 비디오 아트 작가 백남준(1932~2006)의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작가가 다섯살 때부터 13년 동안 살았던 집터에 들어섰다. 백남준기념관에는 창신1동 주민협의체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다. 그런데 주민협의체가 법인이 아닌 임의단체라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할 수 없어 이용하는 주민의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6월29일 오전 카페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일주일 전에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사업자등록을 마쳐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게 된 것이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은 2014년 서울시가 도시재생활성화 지역으로 선정한 창신숭인 지역 주민 43명이 3만원부터 50만원까지 출자해 만든 전국 1호 ‘지역재생기업’(CRC)이다. 지역재생기업이란 공공이 마중물 사업 등으로 지원하는 초기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에도 지역사회의 공유자산을 활용해 기업적 방식으로 도시재생을 진화·발전시켜 나가는 주민 조직이다.
그동안 도시재생이 행정, 지역활동가, 전문가 등 공공의 주도로 진행돼왔다면 이제는 주민 스스로 도시재생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신국현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이사장은 “마중물 사업이 올해로 끝나면서 창신숭인 도시재생센터도 문을 닫는다. 이대로 도시재생이 중단되지 않으려면 지역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며 “도시재생사업의 연속성도 중요하지만 지역 공동체와 주민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은 카페를 비롯해 올해 안에 문을 열 예정인 창신2동·창신3동·숭인1동 공동이용시설을 이용해 공동육아, 청소년 공부방, 마을 미디어, 소규모 공유부엌 등 공간을 대여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지난해부터 ‘공간기획단’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도시재생 기초교육, 바리스타 교육, 마을카페 사례 답사, 일일찻집 운영 등을 준비해왔다. 현재 카페는 조합원 15명이 오전·오후 2명씩 번갈아 운영하고 있다.
손경주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 이사는 “카페는 석달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다른 공동이용시설 3곳은 이제 착공했다. 서울 도시재생활성화지역 가운데 처음 선정된 곳이라 제도가 못 따라올 때가 많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신 이사장은 “지금까지 카페에서 신용카드 결제를 할 수 없어 석달 동안 하루 매출이 5만~8만원에 불과했다. 활동비조차 받지 않고 봉사한 조합원들 덕에 유지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을 만들 때 ‘행정이 주민에게 책임만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려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 주민도 있었다. 서울시가 앞으로 창신숭인의 도시재생을 이끌어갈 주체로 지역재생기업을 인정한다면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조합원 14명은 20주 과정의 도시재생 해설사 교육을 이수하고 지난 4월 말부터 ‘창신숭인 도시재생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 공무원 연수팀, 청주 도시재생지원센터 주민, 인천시 도시재생과 공무원, 이화여대 건축학과 학생 등이 이들의 안내로 창신숭인 지역의 도시재생 현장을 답사했다. 이날 오후에도 한국지역진흥재단 공무원 연수팀 38명이 답사를 온다고 했다.
손 이사는 “방문객 15명마다 2인1조로 해설을 맡는데, 해설비가 10만원으로 저렴해 1인당 수입은 거의 소일거리 수준이다. 그것보다 해설사로 활동하는 주민들이 ‘30~40년을 살았지만 우리 동네가 이렇게 좋은 동네인지 몰랐다’ ‘동네가 소중하게 느껴져 지금까지 안 가본 골목을 주말마다 찾아가고 있다’ ‘전에는 뉴타운에 찬성했는데 재개발이 안 돼 정말 다행’이라며 마을에 자부심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창신숭인 도시재생 협동조합은 창신숭인 지역의 대표 산업인 봉제산업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도 장기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박수근 화백 등 이 지역 출신 작가의 작품을 활용한 제품도 유통할 계획이다. 신 이사장은 “지역재생기업은 지역복지 등 공공의 역할을 대신하는 측면도 있다. 전국 최초라는 책임감을 갖고 자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행정도 많이 도와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지역재생기업은 마중물 사업 이후 주민 스스로 도시재생을 이끌어나갈 자립 기반”이라며 “정부가 50조원 규모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만큼 서울시가 도시재생 분야에서 개척하는 새 길과 진행 과정이 좋은 선례이자 모델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