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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치매 환자 정씨에게 ‘내 집처럼’ 편안한 센터

5년 이용 정창선씨 상태 좋아져 ‘동작구 기억의 정원’ 마음 안식처

등록 : 2017-09-14 14:30 수정 : 2017-09-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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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치매 환자 정창선씨가 지난 8월 동작구 치매지원센터의 ‘기억의 정원’에 들러 기억력 회복 프로그램 중 하나인 미로찾기 놀이 ‘행복한 기억 찾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내 집처럼 거의 매일 와요.”

5년 전 뇌졸중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 판정을 받은 정창선(57)씨는 짧은 인터뷰 동안 ‘내 집처럼’이란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정씨가 ‘내 집처럼’ 드나드는 곳은 서울 동작구 사당1동 ‘동작구 치매지원센터’.

“집에서 10분 거리이고 내 집처럼 편해서요. 운동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과 장기도 두고 커피도 마시고….”

정씨는 2012년 7월4일 치매 장기요양 3등급 판정을 받은 뒤 동작구 치매지원센터에서 하는 인지건강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미술, 작업, 운동, 음악 요법을 받고 있다. 두 딸도 치매가족모임에 열심히 참여해 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돕고 있다.

이의진 동작구 치매지원센터 팀장은 “정씨의 경우 그대로 방치했다면 중증화로 진행됐을 텐데 본인의 치료 의지가 강해 치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장애 3등급 판정을 받았지만 지난 5년간 센터에 출근해서 치료도 받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정서적 안정을 얻고 5등급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동작구 치매지원센터가 지난해 9월부터 운영 중인 ‘기억의 정원’도 정씨의 정서적 안정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듯하다.

“허브 같은 식물을 보면 기분이 좋아요. 허브 향이 좋잖아요.” 기억의 정원에 들어선 정씨는 기자에게도 허브 향을 맡아보라고 권한다.


기억의 정원은 늘 흡연자들이 찾아오고 쓰레기가 쌓이던 치매지원센터 근처 나대지에 고추, 여주, 상추, 케일, 가지, 허브 등 갖가지 채소와 꽃을 심어 자연 친화적으로 가꾼 공간이다. 특히 공간 감각이 떨어지는 치매 어르신들이 안전하게 배회할 수 있는 공간과 텃밭을 제공해 인지능력을 강화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장이 되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해 9월 개장 이후 하루 평균 30여명씩 1만명 이상이 이용했다고 동작구는 밝혔다.

동작구 치매지원센터와 기억의 정원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정씨도 여전히 ‘기억의 미로’ 속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진 못하고 있다. 단기기억상실증에 빠져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온몸에 문신을 하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정씨도 과거 일은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지만, 아주 최근의 일은 금세 까먹기 일쑤다. 이의진 팀장은 “인터뷰 약속 날짜를 자주 까먹어 정씨가 몇번이나 확인하곤 한다”고 했다. 정씨는 “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을 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아프기 전 채소 장사를 하며 어린 두 딸을 부양해왔는데 치매로 쉬고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인 정씨에게 센터의 존재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듯했다. 정씨는 “센터 예산이 어떻게 되는지 걱정”이라고 했다.

동작구 치매지원센터는 전국에서 최초로 구내 75살 (1942년생) 3279명을 대상으로 전수 치매 검진을 하고 있다. 75살이 넘으면 치매 유병률이 8.6%에서 21.8%로 급증하는 현실을 고려해, 치매·고위험 어르신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매를 예방하고 중증화를 지연하려는 것이다.

또한 부양가족 없는 홀몸어르신 또는 부부 치매 어르신의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해 50여명의 자원봉사단 ‘동치미’(동작구 치매 지킴이)를 운영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연간 단위로 운영하는 동치미는 지난해 방문간호, 도배 등 주거환경 개선, 작업치료사의 운동·정서적 지원 등 270건 이상의 방문서비스를 했다고 동작구는 밝혔다. 지난 8월에는 동작구 치매지원기관의 정보 등을 담은 ‘치매 관리 로드맵’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치매지원센터는 동작구뿐 아니라 서울의 25개 자치구마다 설치돼, 치매 환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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