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가족관계 손상의 시대, 통역사가 필요해?

영역 침해 강박의 시대, 엄마와 자식 관계에 대해서

등록 : 2017-10-19 14:33

크게 작게

엄마 질문 공세 지쳐서

추석 연휴중 혼자 지낸 40대 여성

여행 떠난 자식이 섭섭한 60대

가족은 이기고 지는 게임 아냐

추석 연휴의 후유증일까요? 가족관계의 위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여러 사연 가운데 두 가지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첫번째는 연휴 동안 집에서만 있었다는 40대 초 직장여성의 사연입니다.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책 읽고 영화를 보며 보내다가 많은 것들을 버리기로 작심했다고 합니다.

“외국여행 다녀왔다가 모아둔 이 빠진 접시, 색 바랜 가방, 짝 잃은 귀걸이, 언제 입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옷들, 헐렁해진 머리끈, 먼지만 수북이 쌓인 아날로그 엘피(LP)판, 바짝 말라버린 꽃잎들, 쓰다가 중단한 일기장, 왜 이리도 필요치 않은 것들이 주변에 많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집이 불과 한 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인데도 추석날조차 가지 않았다는 그녀에게, 왜 가지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한마디로 ‘지쳐서’ 라고 했습니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거듭되는 질문 공세에 지쳤고, 음식에서 옷에 이르기까지 잔소리를 듣는 게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추석날에는 오빠네 가족이 오는데, 그러다 보면 엄마가 혼자 사는 자신과 오빠네 가족을 비교하는 설정이 너무도 불편했습니다. 가장 좋았던 단어 ‘엄마’가 이제는 가장 멀리하고 싶은 단어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도 리베로는 항상 제 곁에 있잖아요. 저에게 따져묻지도 않고,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저를 대해서 좋아요. 그러면 됐지요, 뭐!” 리베로는 그녀가 키우는 세살 된 반려견 이름입니다. 공교롭게도 ‘자유’를 뜻하기도 합니다.

두번째 사연은 두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60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이번 명절 그녀는 남편과 둘이서만 오붓하게 보냈다고 합니다.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오붓함이었습니다.

“두 아이네 가족들 모두 외국여행을 가버렸어요. ‘저희가 행복한 게 엄마가 행복한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으니 괜찮으시죠?’라고 하는데 더 이상 뭐라 하겠어요? 그냥 너희들 좋아하는 거 하라고 했죠. 그런데 참 쓸쓸하군요. 손자들 데려오며 북적거리는 다른 집들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일년에 고작 한두번인 명절날조차 얼굴 보기가 힘들군요. 지네 아이들 육아할 때는 일방적으로 맡기고, 돈이 필요할 때만 상냥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모습 보면서, 제가 아이들을 잘못 키운 것은 아닌지 후회스럽기도 했습니다. 요즘 ‘졸(卒) 부모’라는 말이 유행이라는데, 저도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 하고 싶군요.”

두 사연을 들으며 저는 이 시대가 겪고 있는 가족관계의 손상을 목격합니다. 좀 더 심각하게 말하면 가족관계의 해체 현상입니다. 적절한 좌표를 잡지 못해 어딘지 모르는 방향으로 표류하는 것처럼, 가족이라는 공동체도 마냥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전에 명절 때 고향에 간다는 것은 곧 엄마가 계신 곳을 간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차 엄마로부터의 이탈 현상을 확인합니다.

가족 간의 소통 단절 때문입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대화가 잘될 것 같지만, 오해와 억측으로 가득한 관계가 바로 부모 자식 간의 관계입니다. ‘가족 사랑’이라는 당연한 말이 서로 간에 오해를 낳는 시대입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사연 가운데 한쪽은 너무나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시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반면, 또 다른 경우는 거꾸로 불만과 의사를 솔직히 말하지 않는 데서 빚어진 현상입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히는 데는 열심인데, 정작 제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통에는 노력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또 하나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영역 존중’이라는 아주 새로운 현상입니다. 이전 세대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낯선 경험입니다. 이전의 엄마-자식 관계는 헌신, 따뜻함, 무조건적인 존중을 의미하였기에 서로 묻지 않고 넘나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세대들은 고유 영역에 대해 대단히 민감합니다. 사무실에서도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고 분리된 업무 공간을 갖기 원하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영역을 지키고 싶어합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 영역을 침범당했다 싶으면 처음에는 불편해하고 짜증 내다가 결국은 반목으로 비화합니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면 강력한 저항의지를 표현하는 맹수들처럼 표현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습니다.

물론 사람은 동물이 아니고, 사람 관계는 동물과 다르기에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가족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한 듯싶습니다. 불편하다는 상대방의 신호를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의외로 그 신호를 읽지 못하는 의사소통 문맹자들이 많습니다. 대개의 갈등은 바로 여기서 옵니다. 오래전부터 한쪽에서는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추석 같은 때에 한꺼번에 폭발하기도 하지요. 많은 경우 통역사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서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전혀 이해 못 하는 까닭입니다.

저는 이번 추석 연휴 동안 어머니가 입원 중인 병원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제일 먼저 가족을 찾습니다. 힘들 때, 긴급할 때도 그러합니다. 병원에서 많은 것을 목격했지만, 가장 애타는 장면은 의식이 없는 상태의 엄마나 아빠를 향한 애절한 목소리였습니다.

“엄마, 눈 떠봐. 가시기 전에 제발 한마디만 들어줘. 미안했어. 그리고 사랑해. 진심이야!”

그렇습니다. 가족이란 결국 그런 관계인 듯싶습니다.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닙니다.

글ㅣ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