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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서 민원인 만난 구청장, “예산 어려움” 역호소

이현숙 기자, 이승로 성북구청장 ‘현장 구청장실’ 동행 취재ㅣ구예산 넘는 사업 요구에 ‘곤혹’…노인정 설치 등은 즉석 수용

등록 : 2018-11-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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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6일 오전 11시30분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현장 구청장실’을 꾸려 성북구 월곡동의 쓰레기차 차고지인 적환장을 찾았다. 주민 10여 명이 악취와 모기로 겪는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음식물 빼고 재활용 쓰레기차만 들어온다 해도 악취가 난다. 선거 때만 관심을 갖다가 당선되면 나 몰라라 하지 않았으면 한다.”

10월26일 낮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성북구 월곡동 적환장(쓰레기차 차고지)엔 30여 명이 모여 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현장 구청장실’을 꾸려 구의원, 직원들과 함께 주민 10여 명과 마주했다. “계속 참으라고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달라”며 주민들은 쓰레기차 차고지를 지하화하고 지상에 복합문화시설을 빨리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이 구청장은 “우리 구 예산만으로 해결이 힘들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예산 도움이 필요하다. 지역의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구청장이 각각 역할을 나눠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구청장은 차고지의 탈취기가 제대로 작동되는지도 확인하며 “청소가 제대로 안 되면 구청장과 지역 의원들이 나서자”고 제안했다.

현장 구청장실은 민선 7기 이 구청장의 공약이다. 취임하자마자 이 구청장은 성북구의 20개 동 전체를 찾아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올 하반기에는 권역 2곳에서 1일 현장 구청장실을 차린다. 현안이 있는 지역에 한두 시간 찾아가는 방식과는 달리 국·과장들과 함께 온종일 지역에 머무르며 주민들을 만나 현안을 풀어간다. 하루 동안 구청장실을 그대로 동네에 옮겨놓는 셈이다.

첫 현장 구청장실은 현안이 많은 종암·월곡동 일대에 꾸려졌다. 아침 7시 민관 합동 청소로 시작해 오후 6시까지 지역 현안 설명회, 현장 방문, 지역 현안 토론회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오전 9시30분 종암동주민센터에서 이 구청장은 주민 200여 명과 현안 설명회에 함께했다. 이 구청장은 “탁상에서 행정 위주로 했는데 지금부터는 현장에서 주민들과 행정을 펼치려 한다”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이어서 “있는 그대로,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소통하겠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찾으려 한다”고 현장 구청장실의 취지를 설명했다.

10월26일 오전 9시30분 종암동주민센터에서 열린 종암·월곡 지역 현안 설명회에 주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주민들의 질문과 제안에 빠짐없이 답변했다.

주민들은 구청의 지역 현황과 주요 과제, 주요 현안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질문과 제안을 했다. “잘 이용되지 않는 공중화장실 근처의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꿔달라”고 한 주민이 제안했다. 옆에서 다른 주민이 바로 반대 의견을 말했다. “녹지 훼손이 되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다”는 이유다. 이 청장이 “공원 녹지 분야는 도시계획 사업을 짜기가 쉽지 않기에 놀이터를 그대로 두는 거로 하자”고 그 자리에서 바로 정리했다. “경전철 출입구가 어디로 나오나”와 같은 민감한 질문도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주민 설명회를 열어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현장 탐방은 이육사 기념관이 들어설 장소에서 시작했다. 인근 주민들은 “기념관이 들어선다니 기쁘다”면서도 주차 문제를 걱정했다. 이 구청장은 “불법 주정차 단속으로 차량 소통이 원활하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동장과 통장, 주민의 협조를 부탁했다. 주차 문제는 구민운동장 개보수 현장에서도 이어졌다. 이 구청장은 해당 국·과장과 공사 책임자에게 “지하주차장 운영 계획을 잘 짜서 인근의 주차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예산과 공사 기간을 더 들여서라도 어린이와 청소년 체험 시설로 이용될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10월26일 오전 11시 월곡구민운동장 지하주차장 조성과 보수 현장을 찾은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공사 진행 사항을 보고받은 뒤 보완할 점을 직원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몰랐던 내용 알게 됐다” 주민들에 ‘감사’

예산 확보 애쓰는 직원 안쓰러워

오후에는 복지 행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노인복지관를 찾은 구청장은 프로그램을1, 2부로 나눠 운영해 대기하는 어르신 여럿을 만났다. 이 구청장은 “별관 신축 공사를 최대한 당겨 내년 초에는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인복지센터에서는 노후화된 휴게 공간의 난방 시설을 보수하고 창고로 쓰는 지하 공간의 교육장 활용을 검토해달라는 건의가 있었다. 경로당에서는 “공동작업장이 있는데 주차 공간이 없어 불편하다”는 민원이 있었다. 이 구청장은 함께한 어르신복지과장에게 해결 방안을 찾아 보고하라 했다.

오후 3시30분 지역 현안 토론회가 열렸다. 월곡동 생명의전화종합사회복지관에는 250여 명의 주민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청년부터 어르신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종암동, 월곡1·2동 3곳의 주민 대표가 나와 17건의 주민 제안과 민원 사항을 발표했다. 공영주차장 조성, 인도 설치, 보도 개선, 버스정류장 이전 등 교통과 도로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경로당 설치, 쓰레기 무단투기조치, 공공 펼침막 게시대 설치 등의 건의도 있었다.

이 구청장은 “몰랐던 내용도 알게 됐다”며 “주민 불편사항을 빨리 알고 처리하는 현장 구청장실 취지를 살린 것 같다”고 제안한 주민들에게 고마워했다. “800여 명의 노인이 사는 동네에 경로당이 없어 대부분이 공원 정자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모랫말공원 동네 사정을 듣고, 이 구청장은 “공간을 빌려서라도 바로 경로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동네의 오래되고 낡은 전통시장의 시설 개선 민원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담당 과장이 “무등록 시장이라 지원이 어려웠는데 주민참여예산으로 내년에 개선 작업이 이뤄진다”고 밝혀 주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교통 체계 개선 등 일부 민원에는 행정의 고충을 얘기하며 양해를 부탁했다. “학교 앞에 보도를 만들어달라”는 민원에 대해서는 “강동길 시의원(더불어민주당)이 나서주면 가능하다”고 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구청장과 주민들은 내부순환로 월곡램프 설치, 개운산 안 대학기숙사 신축을 둘러싼 갈등 등 복잡한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11시간의 현장 구청장실 업무를 마무리하며 이 구청장은 구정의 가장 큰 어려움인 재정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보다 재정자립도가 더 떨어져 구정 예산의 81%를 외부에서 가져와야 한다. 서울시 등을 수시로 찾아가야 하는 구청 직원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며 눈시울을 붉히고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했다. 몇몇 주민이 “힘내세요!” “청장님 파이팅!”을 외치자 참석자 모두가 박수로 응원을 보냈다. 이 구청장은 “동네에서 쉽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구청장이 되고 싶다”며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 임기 내 현장 구청장실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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