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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정비 대신 40차례 협상…서울시 올해 ‘으뜸 행정’

등록 : 2018-12-27 15:47 수정 : 2018-12-2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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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자치구 최우수 행정 사례로 서대문구 박스퀘어 선정

상생의 길 열매 맺어…문 구청장 “신촌 사례 널리 확산되길”

서대문구가 전국 최초로 신촌역 맞은편에 공공임대상가 박스퀘어를 만들어 30년간 갈등을 겪었던 이대 앞 거리가게 상인들을 입점시켜, 행정과 상인들 간의 상생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올해도 서울의 25개 자치구는 다양한 혁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주민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애썼다. 서울시는 지난 21일 ‘2018년 자치구 행정 우수 사례 발표회'를 열어 자치구의 이런 노력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 심사단과 400여 명의 현장평가단이 뽑은 행정 우수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

“신촌 박스퀘어를 노점(거리가게) 상인과 청년, 지역이 상생하는 핫플레이스로 발전시켜가겠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서울시 자치구 최우수 행정 사례로 선정된 신촌 박스퀘어를 이화여대 지역 상권 활성화의 교두보로 삼겠다고 24일 밝혔다. 서대문구의 신촌 박스퀘어는 ‘2018년 자치구 행정 우수 사례’ 발표회에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49건의 응모 사례 중에서 1차 전문가 심사로 10건을 선정한 뒤, 이날 현장평가단의 투표로 최우수 1건, 우수 2건, 장려 3건과 특별상을 받을 자치구 4곳을 각각 선정했다.

서대문구는 지난 9월15일 경의중앙선 신촌역 맞은편에 공공임대상가 박스퀘어를 지어 전국 최초로 거리가게와 청년 상인을 입점시켰다. 이화여대길에서 영업하던 거리가게 상인 24명과 공모로 선정된 청년 상인 18명이 입점해 활발하게 영업하고 있다. 신촌 박스퀘어는 서대문구가 34억원을 들여 지은 연면적 745.46㎡(226평)의 지상 3층 컨테이너형 건물로, 1층에 점포 32개, 2층에 27개, 3층에 1개와 옥상공원이 들어섰다.

출입문은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창문형 폴딩 도어 등으로 다양하게 디자인했으며 투명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3층은 루프톱(옥상) 형태로 수제맥주와 공연, 음악 등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컨테이너형 건물인 박스퀘어는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8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공모에서 ‘생활 품격을 높이는 공공디자인 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대 앞 거리가게는 지난 30년 동안 통행 불편, 안전과 위생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다가 문석진 구청장이 취임한 뒤 서대문구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으로 상생의 길을 걷게 됐다.

지하철 2호선 이대역에서 이화여대 정문에 이르는 이화여대길 230m 거리는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문 구청장은 2016년 12월 거리가게 상생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하고 새로운 정책 방향을 설정했다. 신촌역 앞 쉼터에 신촌 박스퀘어를 만들어 거리가게 상인들을 입주시키기로 하고, 2017년 초 설계를 시작해 지난 5월에 완공했다. 서대문구는 거리가게 상인들에게 40여 차례의 설명회와 간담회를 열어 신촌 박스퀘어를 꾸준히 알렸다.

처음에는 행정기관과 거리가게 상인들 사이에 불신이 깊었다고 한다. 2016년 서대문구가 박스퀘어 건설 계획을 세우고 설명회와 간담회를 열며 거리가게 상인 설득에 나섰으나 반대가 만만찮았다. 거리가게 상인들은 마지못해 나와서는 “대화는 필요 없다”며 소란을 피우고 애를 먹였다.

그래도 구청 직원들은 퇴근 후에도 거리가게 상인들을 찾아가 커피 한잔 마시고,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끊임없이 정책의 진정성을 호소했다. 박스퀘어의 장점을 거리가게 상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입점하도록 설득했다.

조희동 전 서대문구청 건설관리과 가로정비팀장은 “거리가게는 비 오면 못하고, 전기와 수도가 없어 불편한데다 위생도 좋지 않은 반면, 박스퀘어는 이런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웠다”고 한다.

이렇듯 조금씩 신뢰를 쌓아갔더니 지난해 여름부터 간담회에서 고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상가를 지어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박스퀘어에 입점하면 장사가 안될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이런 거리가게 상인들의 염려를 전해 들은 구청은 거리가게 상인들에게 이대 앞 거리를 비우고 박스퀘어에 입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장사 잘해서 자립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안심시켰다. 문 구청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신촌역 밀리오레 활성화 방안, 이대 옷가게 활성화 방안 등을 설명하며 지원을 약속했다.

박스퀘어는 한 차례 개소식이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난 9월15일 개소식을 열고 ‘상생의 닻’을 올렸다. 문 구청장은 “노점을 강제로 정비하지 않고 상생의 길을 선택한 결과로 결실을 맺은 신촌 박스퀘어의 사례가 더욱 널리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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