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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문화마당…작은도서관의 '진화'

등록 : 2019-05-09 15:43 수정 : 2019-05-0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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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공립 작은도서관 ‘미래향기’ 직영 1년

하루 70~80명 이용…단톡방 700명 의견 교환

4월26일 오전 금천구 독산2동주민센터 1층 작은도서관 ‘미래향기’에서 동네 어린이집 아이들과 교사 30여 명이 손인형극을 보고 있다. 어르신 인형극단 ‘금빛노을’의 할머니 세 분이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손인형들을 움직이고 있다. 미래향기는 동주민센터 신축 이전과 함께 1년 전 재개관 했다. 그간 새마을문고 회원들의 봉사로 꾸려오다 금천구 직영으로 운영 방식을 바꿨다. 지역 사립 작은도서관 운영 경험이 있는 문세이씨를 관장으로 채용하고, 개관 시간을 늘리는 등 안정적인 운영의 틀을 마련했다. 지난 1년간 미래향기를 이용한 주민들은 독서 동아리를 만들고, 코딩교육 등 재능기부 프로그램, 책놀이 봉사활동 등을 해왔다. 미래향기는 책읽기와 더불어 체험하고 나누는 동네 문화 공간이 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4월26일 오전 금천구 독산2동주민센터 1층 작은도서관 ‘미래향기’에서 손인형극 공연이 있었다. 동네 어린이집 3곳의 꼬마 30여 명이 인형극 <미운 아기오리 동동이>를 보러 선생님 손을 잡고 작은도서관을 찾았다.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차례로 들어선다. 어르신 인형극단 ‘금빛노을’의 할머니 세 분이 공연에 앞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동요를 부르고, 마술도 보여준다.

아이들은 집을 떠나는 동동이 모습에 울먹이거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손인형이 신기한 듯 무대에 다가가는 아이들도 있고, 집에서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보는 아이들도 있다. 공연이 끝난 뒤 어르신들이 손에 인형을 끼우고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아이들은 인형을 만져보며 재밌어한다. 작은도서관이 세대가 함께하는 동네의 문화 공간이 되고 있다.

미래향기 작은도서관은 지난해 6월 신축한 독산2동주민센터 건물에서 새롭게 문을 열었다. 148.57㎡(45평) 공간에 책은 5600권 정도 있고, 프로그램이나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작은 방이 2개 있다. 운영 시간은 평일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일요일은 쉰다.

독산로 큰길에 있는 동주민센터 1층이라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하루 평균 70~80명이 미래향기를 찾는다. 유모차에 실려 엄마와 함께 오는 아기부터 초·중·고생, 어른 등 다양한 연령대가 이용한다. 저녁 시간과 토요일엔 가족끼리 오기도 한다. 미래향기 네이버 밴드엔 700여 명이 모여 도서관과 마을의 소식과 정보를 나눈다. 문세이(46) 관장은 “책을 읽거나 빌리고, 돌려주는 건 물론이고, 체험하고 나누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도 많다. 도서관이 작은 마을인 셈이다”고 했다.

26개월 된 유영이의 엄마 고경미씨는 이삼 일에 한 번꼴로 아이와 함께 미래향기를 찾는다. 고씨는 “1층이라 유모차를 끌고 오기가 편하고, 화장실도 바로 옆에 있어 좋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서가가 낮고, 책 진열도 표지가 앞으로 보이게 해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직접 고를 수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동네에서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라 좋고, 아이들이 조금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내도 모두 이해해줘 고맙다”고 했다.


미래향기는 재개관 전엔 ‘다락방 작은도서관’이란 이름으로 새마을문고 회원과 자원 활동가들의 봉사로 꾸려졌다. 주로 대출과 반납 중심으로 운영하다 지난해 재개관하면서 구의 직영 작은도서관이 되었다. 지난 1년 미래향기의 가장 큰 성과는 이용자인 주민들과 관계가 만들어지고 참여로 이어진 점이다.

처음엔 아이들을 위해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부모들도 배우고 소통하는 곳이 되었다. ‘민들레’라는 엄마들의 책동아리도 생겼다. 작은도서관의 책엄마 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한 엄마들은 동네 초등학교를 찾아가 저학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책 읽기만이 아닌 듣고, 느끼기도 한다는 걸 알려주는 소리동화, 슬로 리딩 등의 프로그램도 엄마들이 배워 열고 있다. 문 관장은 “지역의 다양한 기관과 교육, 복지를 연결하는 능동적인 장소가 되려 한다”며 “작은도서관의 이용자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도서관을 움직이는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고 했다.

“금천구, 직영 전환이 활성화 주효”

미래향기는 책 읽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독왕 행사를 분기별로 연다. 3개월마다 500권이 넘으면 책이나 도서관의 프로그램 참가권을 선물로 준다. 사진은 3월16일에 열린 다독왕 행사 모습. 미래향기 작은도서관 제공

독산2동 1층, 접근성 확보

도서관 경력 있는 주민이 관장

재능기부 강의 등 능동적 참여

3D프린터 2대 등 시설 다양

미래향기는 4차산업을 특화 주제로 삼고 3D(입체)프린터 2대를 마련했다. 아빠들이 재능기부로 코딩 교육을 하고, 3D프린터 연계 강좌를 준비하고 있다. 로봇 전공자인 40대 안병국씨는 토요일마다 키트와 프로그래밍으로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교육을 한다. 분기마다 대상 연령대를 달리해 초·중·고생들이 골고루 배울 수 있다.

어르신들은 인형극이나 구연동화 등을 해주는 재능기부를 한다. 지역의 어린이집과 아동센터 아이들이 단체로 도서관을 찾아오면 공연도 하고,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어르신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 세분도 주 3회 도서관에 와서 서가 청소를 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금천구는 작은도서관 직영 전환에 적극적이다. 2016년 독산4동 꿈씨어린이 작은도서관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성과를 확인했다. 지역의 작은도서관 운영 경험자들을 전담 운영자로 채용하고 운영 시간을 확대했더니 이용자도 늘고 프로그램 운영도 다양해졌다.구는 공립도서관(10곳)을 차례로 직영으로 바꾸고 있다. 미래향기가 네 번째다.

금천구는 2015년부터 마을사서 양성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새마을문고 등 작은도서관 자원봉사 경력자들에게 교육하고, 수료생들을 면접한 뒤 마을 사서로 위촉한다. 마을사서는 작은도서관마다 1~2명씩 나가 활동한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주민자치 강화가 시대적 흐름이다. 작은도서관도 그 안에 있다고 본다. 주민 관계망이 만들어지고 지역사업을 펼치는 마을의 거점 공간이다”며 “관장을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해 운영 시간을 늘리고, 마을 사서가 활동하면서 도서관을 지속하는 데 힘이 될 것이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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