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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폭염 대책…올여름 무더위 “게 섰거라!”

등록 : 2019-07-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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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노인·쪽방촌·노숙인·장애인 등 취약계층 폭염 대책 강화

그늘막 늘리고, 24시간 무더위 쉼터 운영…구청도 다양한 대책 내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사는 송성구(79)씨가 9일 종로1·2·3·4가동주민센터와 자원봉사자들이 폭염 대책으로 나눠준 삼계탕과 물김치를 먹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여름이 왜 그렇게 더운지…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지옥이지.”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사는 송성구(79)씨는 몸을 누이면 딱 맞을 정도의 좁은 방에서 창문도 없이 달랑 선풍기 하나로 지난여름을 보냈다. 열대야가 26일 동안 지속된 더운 여름을 송씨는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했다.

“관절염 때문에 제대로 걷지를 못하죠.” 송씨는 각종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몸을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방 안이 너무 더워 무더위 쉼터 등에서 더위를 피하려고 해도 지팡이 없이는 거동이 힘들어 방에서만 지낼 때가 많다. 게다가 건강이 점점 나빠져 혈액암으로 두 달 동안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올여름은 또 어떻게 넘길지 걱정이다.

종로1·2·3·4가동주민센터는 9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올해 폭염 대책으로 물김치, 삼계탕과 전복죽 등 보양식, 대자리를 쪽방 주민 20명에게 전달했다.

이날 점심때 삼계탕을 받은 송씨는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이런 귀한 걸 주시고”라며 숟가락을 들었다. 관절염으로 손 움직임이 불편한 탓에 밥상 대신 깐 신문지 위에 삼계탕 국물이 흘러내렸다. 송씨는 물김치도 먹어보더니 “아이고 맛있다”며 흐뭇해했다.


주민센터가 물김치를 나눠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쪽방 주민들이 좁은 방 안에서 음식을 만든다면 더운 열기 때문에 견디기 힘들다. 물김치는 불을 쓰지 않고 만들 수 있고, 시원한 국물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음식이다. 박현숙 종로1·2·3·4가동 마을복지1팀장은 “자원봉사자와 함께 쪽방촌 주민이 물김치를 담가 이웃 쪽방촌 주민에게 나눠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돈의동 쪽방촌 주민 700여 명 중 500여 명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이들은 보증금 없이 월세 24만원 정도 하는 1.5~2평 남짓한 방에서 산다. 소득이 아예 없는 경우, 정부에서 주거급여 24만원과 생계급여 50만원 등 월 74만원 정도의 기초생활급여로 살아간다.

동대문구 이문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사는 신은경(39)씨는 지난 5월 한국에너지재단의 도움으로 집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미혼모인 신씨는 분열뇌증을 앓는 4살 아들과 함께 사는데, 지난해에는 더위로 고생했다. 신씨는 2일 “지난해 여름은 냉장고도 없이 말도 못하게 더웠지만, 올해는 에어컨을 설치해 한시름 놓았다”고 기뻐했다. 그는 “요즘 매일 켜다시피 해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 것 같아 걱정”이라며 웃었다.

동대문구 휘경동 다세대주택 옥탑에 사는 김동석(66)씨도 한국에너지재단의 도움으로 방에 에어컨을 달았다. 김씨는 “지난해는 날도 덮고 밤에 모기도 많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올해는 에어컨을 새로 설치해 아주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좋아했다.

한국에너지재단은 저소득층 가구나 사회복지시설에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시공을 해주거나 냉·난방 기기를 보급하는 등 에너지 사용 환경을 개선해 에너지 복지를 높인다. 올해는 10월 말까지 전국에 에어컨 5천~1만 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지난해는 7월21일부터 26일간 열대야가 이어져 가장 장기간 열대야가 지속된 해로 기록됐다. 서울연구원은 지난해 발병한 열사병 등 온열질환 환자가 616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2011년 27명, 2014년 39명, 2017년 107명과 견줘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온열질환자는 50대 이상 연령에서 발생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해 연령대별 온열질환자는 50대 미만이 23.8%인데 50대 이상은 76.2%였다. 이 중에서 70~80대가 41.3%나 됐다. 온열질환자는 낮 12시~저녁 6시(48.7%)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장소별로 보면, 실외(58.8%)가 실내(41.2%)보다 높았다. 실내는 집 안이 32.1%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실외는 길가가 21.4%, 다음으로 작업장이 16.9%로 나타났다.

“찜통더위 어쩌나” 어르신 한숨, 종로 자봉단 물김치가 쫓아버려

올해 폭염일수 늘어날 것 전망 속

에너지재단, 미혼모 등에 에어컨 건네

송파구, 어린이집 등지 쿨루프 지원

금천구, ‘사망 1천만원’ 지원금 지급

동대문구 휘경동 다세대주택 옥탑에 사는 김동석(66)씨가 한국에너지재단에서 설치해준 에어컨을 손으로 가리 킨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은 지난 4일, 7월 들어 첫 폭염특보가 발효돼 이른 무더위가 시작됐다. 폭염특보는 주의보와 경보로 나뉘는데,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폭염경보는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한다.

올여름은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폭염일수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서울시와 구가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5월20일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 폭염 상황 관리 테스크포스를 운영한다. 올해는 노인, 쪽방 주민, 노숙인, 최중증 홀몸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 대책을 강화했다.

서울시는 횡단보도 그늘막 1706개를 설치하고 경로당, 복지관, 주민센터 등 3686곳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이 중 687곳은 밤 9시까지 연장 운영하고, 야간(밤 9시~다음날 오전 7시)과 주말 운영도 확대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지난 6월부터 노숙인과 쪽방 주민이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 21곳을 운영하고, 7~8월에는 5곳을 추가해 모두 26곳을 운영할 계획이다.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위한 무더위 쉼터는 24시간 개방하며 밤에 잘 수도 있다. 노숙인 무더위 쉼터는 서울역 6곳, 영등포역 3곳, 시청·을지로 1곳 등 총 16곳, 쪽방촌 무더위 쉼터는 서울역·남대문·돈의동·창신동·영등포 등에 각 2곳씩 10곳을 운영한다.

고속버스터미널 등 5곳에서는 이동목욕차 3대를 운영한다. 고속버스터미널은 월·수·금 오후, 영등포와 종각역은 화요일 야간, 청량리역은 목요일 주간, 탑골공원은 목요일 야간에 운영한다. 65살 이상 노인과 장애인, 만성질환자는 하루 한 번 간호사가 직접 방문해 간호와 안부를 확인한다.

각 구청도 무더위 쉼터 운영, 재난도우미, 노숙인과 쪽방 지역 현장 순찰, 취약계층 방문 건강관리 프로그램 마련 등 다양한 폭염 대책을 세워놓았다. 환경미화원 등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쿨조끼도 지급한다.

종로구는 노숙인, 쪽방 주민을 위한 안전 관리 대책을 세우고 돈의동 새뜰마을과 창신동 쪽방촌 등에 현장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송파구는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 11곳에 쿨루프를 만들고 있다. 쿨루프는 ‘시원한 지붕’을 뜻하는 말로 밝은색 페인트를 지붕에 칠해 햇빛과 태양열을 반사·방사해 열기가 덜 쌓이도록 한다.

서대문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동네 미니 수영장을 운영하고, 양천구와 관악구는 공원에 쿨링 포그(인공 안개 시설)를 설치해 운영한다. 금천구는 올해부터 폭염으로 사망하면 1천만원, 다치면 250만~500만원까지 재난지원금을 지원한다.

이진산 서울시 복지정책실 자활지원과 자활정책팀 주무관은 “지난해 열대야를 고려해 올해는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위해 무더위 쉼터를 24시간 운영하기로 했고, 방문 간호사들도 건강이 좋지 않은 쪽방 주민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챙기고 있다”며 “여름철 취약계층의 무더위 대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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