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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빨아준 이불, 기분 좋네요” 지체장애 서씨의 미소

등록 : 2019-08-22 15:24 수정 : 2019-08-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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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시행 중인 동대문구의 맞춤형 ‘생활돌봄서비스’ 현장

방문돌봄·세탁·반찬 배송·방역 서비스 선택 가능…찾동의 진화

지난 2일 동대문구 청량리동 다가구주택 3층에 사는 지체장애인 서이형씨가 사회적기업 ‘우리다온’ 김현정 이사장이 들고온 세탁물을 반갑게 받았다. 서씨는 동대문구의 생활돌봄서비스의 하나인 세탁배송 서비스를 신청해 이불 등 빨랫감을 맡겼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2일 동대문구 청량리동 다가구주택 3층. 사회적기업 ‘우리다온’ 김현정 이사장 등 일행이 무거운 세탁물 두 꾸러미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오자, 서이형(53·가명)씨가 불편한 몸을 일으켜 반갑게 맞이한다.

서씨는 동대문구청에서 지난 7월부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가구에게 해주는 ‘생활돌봄서비스’ 중 하나인 ‘세탁배송 서비스’를 처음 신청했다. 그리고 집 안에 오래 묵혀놓았던 이불 등 빨랫감을 우리다온에 맡겼다.

서씨는 버거씨병으로 수술을 15번 받은 끝에 양다리를 잘랐다. 목발을 짚으니 거동이 불편한데다 당뇨와 백내장 등 복합 질환까지 앓고 있는 지체장애인이다. 1년 전까지 불편한 몸으로, 병을 앓는 어머니를 봉양하며 “어머니 대소변이 묻은 이불을 세탁기에 돌리곤 했”던 서씨는 “남이 해준 깨끗한 이불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며 환히 웃었다.

서씨의 어머니는 1년 전에 수술을 두 번 받고 충남 조치원의 요양병원에 입원해, 이제 서씨는 3층 다가구주택에 월세 30만원을 내며 살고 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혈혈단신의 병든 몸이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러던 중 동대문구청으로부터 연간 세 번까지 이용할 수 있는 세탁배송 서비스 제도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신청해보았다. 빨래를 가져간 지 하루 만에 뽀송뽀송한 상태로 배달까지 해준다.

우리다온의 김현정 이사장은 “세탁배송 서비스는 서씨 같은 장애인을 돌보는 데 꼭 필요한, 뜻있는 서비스다. 근처에 빨래방이 있으나 이불 한 장을 빠는 데 1만원씩 해서 서씨 같은 분이 이용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사실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지만 앞을 보고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다온은 동대문구와 계약을 맺고 세탁비 1만원, 배송비 2만원 미만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씨는 내친김에 매주 수·금요일 두 차례 반찬 세 가지를 담아서 배달해주는 ‘반찬 서비스’도 신청했다. “그동안 반찬은 조금씩 해먹고 교회 등지에서 얻어먹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리고 한 달에 5만원씩 이용 쿠폰을 주는 동대문구의 돌봄택시 지원사업 안내문을 꺼내며 “나같이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딱 좋은 사업”이라며 신청 의사를 내비쳤다.

일행이 빨래를 전달하고 돌아가려는데 서씨가 어렵게 말을 꺼내며 도움을 요청한다. “동주민센터에서 쌀 한 가마니를 문앞에 갖다놓았다는데, 누가 훔쳐갔다.” 그의 전기밥솥에는 한두 끼분의 밥만 남아 있어 당장 지원을 받지 못하면 꼼짝없이 굶어야 할 판이었다.

이날 취재 현장에 동행한 이승주 동대문구 복지정책과 주무관이 “바로 관할 청량리 동주민센터에 연락해 조처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곧바로 청량리동주민센터는 서씨 앞으로 10㎏짜리 쌀 포대를 배달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10㎏짜리 쌀 한 포대를 본인 부담금 1960원을 내고 받는다.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동대문구 청량리동 비좁은 쪽방에 사는 윤장손(70·가명)씨는 방문돌봄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후두암을 앓고 당뇨에 척추굳음증으로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윤씨에게 요양보호사인 김점순(65·가명)씨가 7월17일 이후 날마다 세 시간씩, 목욕도 시켜주고 식사도 챙겨주고 말벗도 해준다.

지난 2일 동대문구 청량리동 단칸방에서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윤장손(70·가명)씨가 동대문구의 방문돌봄서비스를 받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인의 월셋집에 눌러사는 윤씨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옆집 사람이 방문돌봄서비스를 신청한 것이다. 윤씨는 마장동에서 40여 년간 축산유통업을 하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IMF 사태) 때 사업 실패로 아내와 이혼한 뒤 고기 해체·분류 작업 등 축산 관련 일용직 일을 하다 병석에 누워 홀로 지내는 1인 가구다. 자식은 있지만 왕래가 끊겨 사실상 홀몸이다.

2016년 9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됐으나, 이듬해 12월 재산이 늘어난 자녀가 부양 능력이 있다며 수급이 중지됐다. 이후 서울형기초생활보장 급여 20만원, 기초연금 30만원을 받으며 살아간다. 동대문구는 윤씨의 처지를 고려해 기초생활수급자 재지정을 검토 중이다.

요양보호사 김씨는 무엇보다 어르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려 노력한다 했다. “오랫동안 누워 있다보니 늘 우울하시다. 그래서 ‘빨리 나으셔서 혼자 일어서세요. 그러려면 운동도 많이 하고 그러세요’라는 말을 많이 한다.”

윤씨는 “자식들 왕래도 없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는데, 요양보호사가 온 뒤부터는 기운이 난다”며 김씨를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차려주고… 천사표다”라며 고마워한다. 김씨는 최저임금을 조금 웃도는 시급을 받고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니까 즐겁다”고 했다.

윤씨는 그동안 요양보호사 간호 등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기요양등급제가 있는 줄 모르다가 동대문구의 도움으로 지난 2일 지원 자격을 얻었다. 이에 따라 윤씨는 동대문구의 일시적인 생활돌봄서비스가 아니라, 정부로부터 정기 방문돌봄서비스를 받게 됐다.

찾동의 원조, 동대문구 보듬누리 사업 3405가구 결연 혜택

찾동 전인 2011년 12월부터

구 직원, 복지 사각지대 가구와 결연

현재는 민간까지 확대돼

유덕열 구청장도 80대 할머니와 ‘결연’

동대문구의 생활돌봄서비스는 세탁배송, 방문돌봄, 반찬 배달, 방역 서비스 등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에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구는 12월까지 1천 가구에 생활돌봄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국비 5천만원에다 구 예산 5천만원을 보태 1억원의 생활돌봄서비스 사업비가 책정됐다.

서울시는 올해 5개 구 각 동주민센터에 직원을 상주시켜 ‘돌봄 SOS사업’을 한다. 그런데 동대문구는 “자체 돌봄 인프라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사업을 신청하지 않고 독자적인 돌봄서비스인 생활돌봄서비스를 한다. 빨래와 방역 서비스는 동대문구만의 서비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주 동대문구 복지정책과 주무관은 “애초 구내 돌봄 인프라 구축 확보도 이번 사업 목표의 하나였는데, 6개 업체가 참여한다. 또 100건이 넘게 이용 신청이 들어와 돌봄 사각지대를 줄이자는 애초의 큰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룬 듯하다”고 말했다.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려는 동대문구만의 노력은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에 앞서 2011년 12월부터 시작한 ‘보듬누리’ 사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보듬누리는 동대문구 직원들이 법적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가구와 일대일로 결연하는 사업에서 시작됐다. 구청장 이하 소속 구 직원 1362명이 저소득 홀몸 어르신, 장애인, 한부모 가족 등 복지 사각지대 구민과 결연하고 매달 안부 전화를 하고 가정을 방문해 부족한 것을 살핀다. 동대문구에 따르면 현재는 직원뿐 아니라 민간까지 확대해 3405가구가 결연 혜택을 받고 있다.

또한 2013년 4월 지역 내 14개 동에서 지역주민 399명이 동 희망복지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원봉사, 재능기부, 후원금 출연을 하며 지역 소외계층의 삶을 돕고 있다.

현재는 교육계, 자영업, 전문직, 종교계, 주부 등 1523명의 희망복지위원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동대문구가 보듬누리 사업으로 확충한 복지 자원만 약 57억원. 사업 결과로 2014년 복지행정상 최우수상, 2016년 국민통합 우수사례 대상, 2019년 제9회 서울사회복지대상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또한 동대문구 자살 사망자 수가 2009년 115명에서 2016년 64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도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려는 구의 노력 결과라고 동대문구는 설명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이 지난 7월30일 새롭게 결연관계를 맺은 동대문구 제기동의 최아무개 할머니(85) 댁에 수박을 들고 방문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 동대문구 제공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7월30일 동대문구 제기동 작은 셋방에서 혼자 사는 85살 최아무개 할머니를 방문해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자주 들르겠다고 했다. 이미 일대일 결연 관계가 있는 유 구청장이 새로운 일대일 결연 가정을 방문해 실태를 점검한 것이다.

장애인일자리급여와 기초연금, 주거급여 등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지만 가족을 포함해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항상 외로움을 느끼는 최 할머니는 유 구청장이 사온 수박을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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