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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학로 한가운데 ‘30년 묵은 전봇대’ 뽑혔다

등록 : 2019-10-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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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학교 주변 등 전주·통신주 40개 이설 작업…한전 등과 협약

서울시, 2029년까지 329㎞의 공중선 지중화 작업 추진 계획 밝혀

지난 9월20일 성동구 마장동 동명초등학교 통학로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던 전봇대를 뽑아 이설하는 공사가 벌어졌다. 학부모들이 오랫동안 학생들 등하교에 불편을 주고 안전도 위협해온 전봇대 이설 작업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도 찍고 환영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성동구 제공

성동구 행당초등학교 4학년 이윤빈(11)양은 통학로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귀갓길에 친구랑 이야기에 열중하다 학교 담장 옆 통학로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전봇대에 머리를 부닥친 것이다. 이양의 친구 서영효(11)양은 폭 120㎝ 정도 비좁은 통학로의 전봇대를 피하려 어쩔 수 없이 인도에서 잠시 내려 다녀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학부모 신미경(41)씨도 “4년 전쯤에 아이가 전봇대에 머리를 꽝 부닥친 적이 있는 등 아이들 통행뿐 아니라 일반인도 통행하기 불편했다”고 말했다. 인근 중고등학생도 행당초 통학로를 많이 이용하는데다 유모차나 자전거도 오가서 이동하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이 학교 학부모 전미연(41)씨는 말했다.

초등학생 한 명도 지나다니기 빠듯한 통학로에 30년간 버티고 서 있던 행당초 전봇대 2개가 지난 9월30일 앓던 이처럼 뽑혔다. 대신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길가로 이설됐다. 앞의 학부모 전씨는 “학부모 입장에선 아이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 감사한다”며 “다른 학교에도 모범적인 통학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정문 옆 통학로 입구 쪽에 턱 버티고 있는 전봇대도 이설을 요구하고 있으나 성동구청 쪽에서는 이설 장소가 마땅치 않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앞서 9월20일 성동구 동명초 주변 통학로에서 학생들 통학에 지장을 주던 전봇대 2개가 뽑혔다.

성동구는 올해부터 어린이의 안전을 위협하고 민원이 많이 제기된 30~50년 된 전봇대(전주 29기, 통신주 11기) 40기 이설(철거 포함)을 추진하기로 하고, 현재 16개(전주 9기, 통신주 7기)의 이설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성동구는 지난해 12월부터 성동구 내 전봇대 1만25기(전주 5846기, 통신주 4179기)에 대한 전수조사를 거쳐 동명초, 행당초 등 초등학교 통학로 주변을 비롯해 마장·송정·성수동 등 도시재생지역, 인도 한가운데 우뚝 솟아 이전이 시급한 전봇대 등 10개 동 40기를 우선 이설하기로 했다. 이설과 제거 비율은 7 대 3 정도로, 이설할 필요 없이 아예 뽑아버려도 전기·통신 공급에 어려움이 없는 경우 제거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성동구는 밝혔다.

전봇대 뽑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선 1기당 2500만원(통신주는 500만원)가량 소요되는 이설 비용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다 이설지 확보와 주변 주민 동의가 필수적으로 따른다. 성동구는 한국전력과 케이티 등 관계기관과 협약해 문제 해결의 물적 토대를 마련했다. 지난 4월9일 한국전력 광진성동지사(지사장 장준희), 9월3일 케이티와 ‘주민통행 불편 해소를 위한 전봇대 이설 이행 협약’을 체결했다. 구는 한전·케이티에 이설 부지를 제공하고 관련법에 따라 도로 점용 및 굴착 허가의 신속한 처리를 약속하고 한전 등은 이설 비용 상당 부분을 부담하기로 했다.


홍명안 성동구 재무과장은 “한전 등과 엠오유를 체결해 전봇대 이설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성동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원오 구청장은 협약식에서 “성동구와 한전의 상생협력 모델은 그동안 비용 부담 문제 등 지자체와 한전 간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모범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진구에서도 지난 8월 광장동 재한몽골학교 앞 인도 한가운데 있던 전봇대를 옆으로 이설하는 등 전선주 2기 이설 작업을 끝냈다.

특고압 송전선로와 거미줄처럼 얽힌 공중선의 지중화 사업도 올해 서울시가 발표한 주요 보행 정책 및 녹색에너지 사업이다. 특히 월계동 노원변전소(월계사슴 1단지 아파트 인접)~상계근린공원(상계주공 16단지 아파트 옆) 4.1㎞ 구간, 특고압 송전선로 및 송전철탑 18개, 창동차량기지 0.9㎞ 구간 송전선로와 송전철탑 3기 등 송전철탑 21기 지중화가 2027년까지 추진된다고 서울시와 노원구가 지난 8월 발표했다.


‘강남·북 대표 불평등 사례 지상 송전로’, 서울시가 본격 종합계획 세워

노원구, 2027년 송전철탑 21기 지중화

영등포, 2024년 공중선 12㎞ 지하화

지중화율 현 59.16%→2029년 67.2%

지난 8월 광진구 광장동 주한몽골학교 통행로 이설 작업 전후. 광진구 제공

전체 사업비는 909억원으로 비용 마련은 한전에서 50%, 서울시와 노원구에서 각각 25%씩 분담한다.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재원 문제는 한전의 한시적 장기분할상환 제도를 활용해 풀었다. 지자체가 사업비의 절반 정도를 부담할 경우 공사 완료 뒤 5년간 무이자로 균등 분할 상환하는 제도이다. 서울시와 노원구, 한전은 지난 8월23일 ‘월계~상계 특고압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해 사업 추진을 공식화했다.

사슴아파트 3단지, 매봉어린이공원 안에는 154㎸ 특고압 송전철탑 2기가 통과해 전자파 피해와 애자 등 송전설비 파손 낙하에 따른 안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노원구에 따르면 송전선로가 지나는 구간에는 월계3동 등 6개 동에 상계주공 16단지 등 12개 아파트 단지 1만4383가구, 4만4천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995년 월계사슴 1단지 아파트 입주 당시부터 시작된 지중화 요구 민원은 2007년 월계동 주민 2273명 집단 민원까지 지난 20여 년간 16건이 제기됐다고 노원구는 밝혔다. 특히 지상 송전선로는 서울 강남·북 환경 불평등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노원구에는 서울시 전체 송전철탑 185기 중 46기가 집중 설치돼 있을 뿐 아니라 송전선로 지중화율 또한 서울시 평균 90.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40.1%에 그친다.

거미줄처럼 얼키설키 얽혀 있는 공중선(가공배전선로)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대표사례다. 서울시는 329㎞의 공중선 지중화 작업을 2029년까지 추진하는 내용의 ‘서울시 가공배전선로 지중화사업 기본계획’을 지난 5월 발표했다. 지중화사업에 대한 서울시 차원의 최초 종합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보도 위에 난립해 안전한 보행과 도시 미관에 걸림돌이 되고 강풍 등으로 쓰러질 우려도 있어 시민 안전에 직결되는 전봇대도 철거할 계획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서울시는 사업이 끝나면 2018년 12월 기준 59.16%인 서울시 전체 지중화율은 3.16% 증가하며, 2029년 재개발·재건축 지중화분 4.9%까지 포함하면 67.2%로 높아진다고 밝혔다. 이면도로를 제외한 4차로 이상 주요 도로를 기준으로 하면 서울시 지중화율은 94.16%(현재 86.1%)로 런던·파리·싱가포르(100%), 도쿄(86%) 등 세계 대도시 수준으로 높아진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에서도 공중선 정비작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 2013년부터 매년 2개 구역을 선정해 공중케이블 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는 광진구는 내년 3월까지 아차산 주변 긴고랑로(중곡제4동) 60㎞ 구간 정비사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2013년 당산동을 시작으로 매년 공중선정비사업을 해오고 있는 영등포구는 2024년까지 총 15개 지역 공중선 12㎞를 지하화해 쾌적한 보행환경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는 신길1, 4, 6동 전봇대·통신주에 어지럽게 얽혀 있는 공중선을 정비 중이다. 구는 지난 5월 한전, 케이티, 에스케이텔레콤 등 4개 유관 통신사와 함께 공중케이블 정비추진단을 구성해 분기별 1회 회의를 여는 등 체계적인 정비사업을 펼치고 있다. 강남구도 올해 15개 지역 2700곳의 공중선 148.5㎞를 정비중이라고 밝혔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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