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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올 때만 열리는 빗물받이 최초 발명”

‘스마트 빗물받이’ 특허 출원한 금천구 치수과 허원회 과장과 직원들

등록 : 2019-10-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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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T 이용, 비 그치면 다시 닫히게 해

침수 피해도 막고 하수도 악취도 방지

“주민 편의 생각하니 아이디어 떠올라”

내년 상반기 테스트 거쳐 보급 확대

금천구 치수과 직원들이 10월25일 금천구청 옆 도로에 설치된 스마트 빗물받이를 점검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허원회 치수과장, 김창신 하수팀장, 이동섭 주무관, 함대용 주무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주민 안전과 편의를 위해 개선할 곳을 찾다보면 아이디어가 막 떠오르죠.”

‘스마트 빗물받이(도로 배수 시설)’를 개발해 지난 9월 특허 출원을 낸 허원회 금천구 치수과장은 10월25일 “조금이나마 주민 삶에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개발하게 됐다”고 했다.

스마트 빗물받이를 만드는 데는 허 과장을 비롯해 김창신 치수과 하수팀장, 이동섭 주무관, 함대용 주무관 등 금천구 치수과 직원 4명이 힘을 합쳤다. 직원들이 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는 정보통신 기술, 사물인터넷(IoT) 기술, 태양광 기술 등이 더해졌다. 허 과장은 “전세계 특허 등록된 기록을 훑어봐도 스마트 빗물받이가 없어 금천구에서 출원한 스마트 빗물받이는 국내 최초는 물론 세계 최초”라고 자랑했다.


빗물받이는 빗물이나 도로에 흘러내린 물을 하수관으로 흘려보내는 시설로 호우로 인한 침수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열려 있는 빗물받이가 각종 오물, 담배꽁초, 토사와 낙엽 등으로 막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오물이 쌓이면 악취도 심하게 나 빗물받이가 아니라 ‘쓰레기받이’라는 오명도 듣는다. 일부 주민은 이를 막기 위해 평소에는 ‘고무판’ 등으로 빗물받이를 덮어놓는데, 갑작스러운 집중호우가 질 때는 침수 피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빗물받이에 쓰레기가 쌓이고 악취가 나다보니 ‘빗물받이를 설치하지 말라’는 주민 민원도 들어온다. 허 과장과 직원들은 이런 주민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많은 논의를 해 해결 방안을 찾아왔다. 지난 1월에는 하수도관리 업무개선 태스크포스팀(연구팀)을 만들어 빗물받이가 막혀 발생하는 침수 피해도 예방하고 하수도에서 나는 악취도 막을 수 있는 빗물받이 개발에 착수했다. 허 과장은 “고민의 출발은 민원이고, 첫 아이디어는 김창신 하수팀장이 냈다”고 했다.

연구팀은 충분한 아이디어를 내고 많은 회의를 거치면서 ‘스마트 빗물받이’를 구체화해나갔다. 우리나라는 10㎜ 이상 비가 오는 날이 1년 중 30일가량 된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닫혀 있다가 비가 오면 열리는 빗물받이를 고민했다.

연구팀은 10개월 만인 지난 9월 드디어 스마트 빗물받이를 개발해 특허 출원을 냈다. 스마트 빗물받이는 빗물 감지 센서가 빗물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덮개가 열리고 빗물이 하수관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도로 위 빗물이 모두 빠지면 다시 닫힌다. 빗물받이를 개폐하는 데 필요한 전력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태양광을 통해 생산한다. 김창신 팀장은 “금천구가 지난해 민간 업체와 공동 특허를 낸 건 있지만 단독 특허를 낸 건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연구팀 막내인 함대용 주무관은 특허 출원은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했다. 함 주무관은 “부서장의 리더십, 새로운 아이디어, 이를 구체화하는 시간 등이 서로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동섭 주무관은 “발명은 처음 해봤는데, 새로운 경험으로 성과도 있었다”며 뿌듯해했다.

스마트 빗물받이는 평소 덮개로 덮여 있어 오물 등으로 막힐 염려가 없고, 악취가 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비가 오면 덮개가 열려 빗물이 하수관으로 흘러가 침수를 예방할 수 있다.

금천구는 10월 초 금천구청 옆 도로에 스마트 빗물받이 한 개를 설치해 내년 상반기까지 현장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허 과장은 “테스트가 끝나면 금천구 내 침수 피해를 겪는 저지대나 다중이용시설 주변 등 10개 지역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했다.

금천구는 스마트 빗물받이 보급이 확대되면, 모바일과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관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인데 작동이나 배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에는 빗물받이가 48만여 개, 금천구에는 1만5천여 개가 있다. 서울시는 올해 하수관로 준설 비용으로 272억원, 악취 방지 덮개 구매 비용으로 11억원이 책정돼 있다. 허 과장은 “서울시 전역에 스마트 빗물받이를 설치하면 이런 비용이 필요 없어 280억원가량의 예산을 매년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스마트 빗물받이 설치를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설치 비용이 기존 빗물받이에 비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허 과장은 “일반 빗물받이는 15만원가량 하지만 스마트 빗물받이는 50만원가량 한다”며 “지금은 설치 비용이 비싸지만 대량으로 설치하면 절반 이하로 비용이 낮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허 과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발명왕’으로 통한다. 지난 7월에는 ‘사각형거 무동력 물돌리기·물막이 공법(장치)’을 특허 출원했다. 하수관 공사에서 물을 제대로 막지 못해 생기는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물막이 장치다. 작업자의 안전은 물론 시공 품질을 높일 수 있다. 허 과장은 “하수도 악취를 방지할 수 있는 특허 출원도 준비하고 있는데, 올해 안으로 2~3가지 발명품이 더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정년을 2년 정도 남겨둔 허 과장은 서울시청에 근무하다 2015년 금천구로 와 도로과를 거쳐 2017년부터 치수과장을 맡고 있다. 그는 스마트 빗물받이 개발은 “여러 번 실패도 했지만 직원들과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맞은 결과로 나의 공은 30%, 직원들 공이 70%”라며 팀원들의 공을 더 높이 샀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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