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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회장도 반한 아날로그 소리 만들다

국내 유일 텐테이블 제작자 류진곤 진선오디오 대표

등록 : 2019-11-07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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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00만원짜리 턴테이블

재벌총수, 기술력 인정해 3대 구매

11년간 아이리스 시리즈 800대 팔려

“복고 취향 아닌 최고 소리 찾는 과정”

류진곤 진선오디오 대표가 출시 1년 만에 120대가 팔린 아날로그 입문용 턴테이블 아이리스5를 가동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8월 중구 황학동 중고 엘피(LP) 가게. 30대 젊은 부부가 올드팝 엘피를 10여 장 고른다. 그러면서 가게 쥔장에게 “어떤 턴테이블이 좋냐”며 엘피를 틀 수 있는 턴테이블 소개를 부탁한다. 이 가게에는 턴테이블도 갖추지 않은 20~30대 젊은층이 판을 사러 오는 진풍경이 가끔 벌어진다. 지난해 11월8일 옛 서울역에서 열린 제8회 서울레코드페어가 시작되기 20분쯤 전 입장을 기다리는 대기줄이 100m가량 늘어섰다. 이틀간 열린 레코드페어에 다녀간 손님의 70%가량은 20~30대 젊은층이었다.

한국의 오디오·음악 시장에도 아날로그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엘피를 트는 데 필수적인 턴테이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턴테이블을 제작·판매하는 유일한 장인이자 진선오디오 대표인 류진곤(59)씨는 국내 아날로그 붐의 숨은 견인차로 꼽힌다.

앰프를 자작하거나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국내 동호인이 제법 많지만, 턴테이블을 제작해 판매하는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 턴테이블은 소리의 질을 크게 좌우하는 정밀기계여서 숙련된 기술이 필요해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아이리스(IRIS) 레퍼런스라는 이름의 1200만원짜리 고가 턴테이블을 제작, 시판한 이후 지난 10여 년간 아이리스 시리즈 턴테이블 800여 대를 만들어 팔았다. 아이리스 레퍼런스는 지금껏 26대나 팔렸는데 구매자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 회장도 2명이나 끼어 있다. “아이리스 레퍼런스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에 걸쳐 개발했는데 그사이에 열 분이 구매 계약을 해줘 연구개발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한 재벌 회장은 아이리스 레퍼런스의 기술력을 인정해 석 대나 구매했어요.”

자신의 브랜드를 건 턴테이블 제작에 앞서 10년간 이엠티(EMT), 토렌스 등 고가의 유럽 턴테이블을 수리하면서 턴테이블의 원리를 파악한 그는 ‘모터 진동을 최소화한 최고의 턴테이블’을 목표로 연구개발 및 제작에 착수했는데 그의 실력을 알아본 마니아들이 선금을 선뜻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나온 아이리스2, 3, 4, 5호기는 시판가가 700만원, 180만원, 100만원, 70만원으로 갈수록 낮아졌다. 처음에는 소수 마니아를 겨냥해 성능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류 대표의 제작 목표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제대로 된 엘피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시된 입문자용 아이리스5는 7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대와 아날로그 붐에 힘입어 1년 만에 120대가 팔리는 대박을 낳았다.

턴테이블을 제작하면서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카트리지를 매달아 소리를 자연스럽게 내게 하는 톤암이라고 한다.

“그동안 판매한 턴테이블 중 본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는 거의 없지만 톤암은 여러 번 업그레이드해 교체해주었어요. 톤암은 변화무쌍해서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질량이나 떠받치는 방법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이에요. 톤암이 턴테이블보다 어렵습니다.”

그는 최근 아날로그 붐은 복고적 취향이 아니라 최고의 소리를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엘피는 단순히 추억의 소리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디지털 소리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최고의 고급 소리를 들려줍니다. 엘피가 부흥한 것이지 복고풍으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음식으로 치면 유기농 과일 맛이 바로 엘피 소리의 맛입니다. 디지털로는 도저히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거죠.”

그러면서 그는 아이리스 턴테이블로 엘피 소리를 들은 한 젊은 애호가가 4천만~5천만원짜리 시스템을 다 없앴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그는 앞으로 아이리스5의 울타리를 넓혀 일본 등 국외에 판매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그가 아이리스 턴테이블을 통해 구현하고 싶은 소리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는 선뜻 현장음의 재현이라고 말했다. 소리의 기준을 잡기 위해 아이리스 개발 초창기에 예술의 전당 로열석을 1년간 다녔다는 그는 300석 규모의 작은 음악홀에서 “하프에 손이 스치는 소리를 듣고 황홀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현장음을 정직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고 한다.

서울연구원은 그의 삶과 장인 정신을 높이 사 2013년 서울스토리텔러 대상을 수여했다.

류 대표의 어릴 적 전북 남원 집은 동네에서 전축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집이었다고 한다. 형님이 사온 레코드판을 통해 어릴 적부터 음악적 감성을 키웠다.

스무 살 넘어 상경해서도 음악다방에 살다시피 하며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었으나 그 이후 문래동 철공소 골목에 들어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격증 학원에 다니느라 음악과 한참 멀어졌다. 1988년 구로구 고척동 산업용품 상가에 진선기계를 차리고 선반, 밀링과 씨름했다. 92년 한 뜨내기손님이 턴테이블 방진대(스피커 소리의 진동이 턴테이블에 전달되지 않도록 받침으로 쓰는 장비) 제작을 요청한 것이 오디오 제작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95년 이후에는 오디오 관련 일에 전념했다.

지금은 턴테이블뿐 아니라 턴테이블과 포노앰프, 톤암, 앰프·스피커를 하나로 묶은 보급형 컴포넌트 오디오 등도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경영자 또는 사업가라기보다는 공작기계를 이용해 제품 업그레이드를 궁리하는 엔지니어 냄새를 많이 풍긴다. 1인기업 진선오디오에도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대학 전기과를 졸업한 셋째아들(29)이 진선오디오에 입사해 아버지 일을 거들고 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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