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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내몰림 뒤엔 밀레니얼세대 있다”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 저자 경신원 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장

등록 : 2019-12-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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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분석에 새 시각 제시

“도시공간 소비” 밀레니얼 특성에 주목

핫한 곳도 프랜차이즈 들어서면 떠나

“특색 있는 골목길 기획할 기획자 필요”

경신원 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장이 11월21일 서초구 반포동 부모님 댁에서 자신의 저서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을 펼쳐 보이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떠남 현상)은 굉장히 학문적인 용어인데 언론과 일반인들이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는 게 매우 흥미로웠죠.”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파람북, 2019)을 출간한 경신원(46) 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장은 11월21일 “한국에 돌아와보니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무조건 나쁜 것’이라며 굉장히 부정적으로 다루는 데 놀랐다”고 했다.

경 소장은 2002년 1월 영국으로 건너가 도시 및 지역학을 전공하고 15년간 영국과 미국에서 주택·도시개발 분야에서 교육·연구 활동을 하다 201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경 소장은 영국을 예로 들며, 주택 시장과 사회계층의 변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건물주의 임대료 폭리와 상권에서 내몰리는 세입자’라는 상업적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반에 소개된다고 설명했다.

<흔들리는 서울의 골목길>은 이태원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다. 특히 골목을 변화시키고 골목을 소비하는 중심에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고 본 것이 새롭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나라마다 도시마다 그 양상이 다르다. 경 소장은 “서울의 골목길을 변화시키는 데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며 “이들은 누구이며, 사람들은 왜 이들이 만든 상품에 열광하는지 그게 제일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경 소장은 서울의 핫플레이스(골목길) 이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주된 원인이지만, 반드시 임대료 상승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도시 공간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밀레니얼의 소비 행태에도 원인이 있다”고 봤다. 경 소장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을 임대차 문제뿐만 아닌 문화적인 면, 즉 새로운 세대의 특성으로 파악했다.

“한국이 탈산업화를 겪으면서 문화와 서비스 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죠. 동시에 새로운 문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게 바로 밀레니얼 세대죠. 돈은 없지만 다양성이 있고 모든 면에서 열려 있죠. 우리 사회를 좀더 포용력 있는 도시로 만드는 친구들입니다.”

경 소장은 밀레니얼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국내 전체 인구의 25%인 1300만 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그는 “문화적 경험과 아이디어가 풍부한 세대로, 안정된 직장 생활보다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내 스타일의 사업에 도전하는 비율이 높다”고 했다.

경 소장은 “엑스(X)세대가 단독주택에 살다가 초등학교 4~5학년쯤에 아파트에서 자랐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아파트에서 태어난 세대”라고 했다. 그래서 “강남의 반듯반듯한 도로보다 강북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더 재밌어한다”고 설명했다.

“소박하지만 개성이 뚜렷한 밀레니얼 세대가 모여 강북의 골목길을 조용히 바꾸어내니 너무 신선하고 재밌죠. 하지만 이들은 홍대에서 연남동, 상수동으로, 이태원의 중심에서 경리단길과 해방촌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습니다.”

경 소장은 서울의 여러 곳 중에서도 특히 이태원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이국적이고 슬픈 곳, 근대화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곳이라서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또 이태원이 경 소장이 어릴 때 경험했던 곳으로 현재와 비교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다른 핫플레이스는 뜨기 전에는 가본 적이 없지만, 이태원은 20대 때 짝퉁 가방을 사러 가봤다. 그에게 당시 이태원은 “매춘도 하고 사람도 죽는 무서운 곳”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가방을 사서 곧장 빠져나오던 “더는 머무르지 않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런 이태원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외국 문화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이태원으로 모여들었다. 2010년 이후 이태원은 경리단길 등 골목골목으로 빠르게 확장됐고 어김없이 젠트리피케이션이 찾아왔다.

“핫했던 경리단길이 지에스(GS)25가 들어오면서 망했다고 생각합니다.”

경 소장은 “밀레니얼은 자신들이 만든 공간에 배스킨라빈스,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만드는 핫플레이스는 자신의 취향에 맞춘 개성 넘치고 가치 있는 공간인데, 몰개성적인 프랜차이즈 업체가 들어오면서 공간을 망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지역 발전에 목매는 세력과 지자체가 합심해 골목을 없애고 반듯한 도로를 만드는 것도 문제로 봤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공간을 제대로 기획해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경 소장은 “공간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공간 기획자가 있어야 하고, 이를 기초지자체 등 자치단체가 해줘야 한다”며 “적당히 시간을 보내면서 머물고 싶은 ‘적당한 골목길’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경 소장은 이태원에는 먹고 마시는 곳은 있어도 지적인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할 곳이 없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의 ‘핫플레이스 진출’을 경계했다.

“앞으로 서울이 경쟁력 있는 도시가 되려면, 대기업은 이제 좀 손을 떼고 ‘로컬 크리에이터’가 골목길과 골목 상권, 장소성의 변화를 이끌어야 해요.”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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