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간판 찍으니 메뉴와 가격, 점포 위치, 전화번호가 한눈에”

전통시장 활성화 새 모델 만들어가는 은평구 연서시장

등록 : 2019-12-1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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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특성화첫걸음시장으로 선정

스마트간판으로 가게정보 손쉽게

위생안전 관리·음식물 친환경 처리

“상인들 마음 모으니 시장 좋아져”

지난 6일 오후 은평구 연서시장의 한 순대 집 앞에서 변세근 상인회장이 손님에게 새로 단 ‘스마트간판’ 이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특성화첫걸음시장 사업으로 추진된 스마트간판은 정보무늬(QR코드)를 활용해 가게 상품이나 메뉴 목록과 가격,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 인근에 연서시장이 있다. 북한산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잦은 전통시장이다. 7개 동으로 규모(1594㎡, 100여 개 점포)는 썩 크진 않지만 먹거리, 식자재, 농축산물, 생활용품 등 웬만한 것들은 다 갖췄다.

최근 연서시장 가게마다 노란색 이색간판이 붙여져 눈길을 끈다. ‘스마트간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게 주인 얼굴 사진과 정보무늬(QR코드)가 그려져 있다. 정보무늬를 찍으면 취급하는 상품이나 메뉴 목록이 나온다. 점포 위치, 전화번호는 물론 가격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핸드폰 카메라로 여기를 찍어 보세요. 가격표시제 카탈로그가 나오죠? 가게 이름을 누르면 메뉴와 가격이 보여요.” 6일 오후 순대 집 노란색 간판을 보고 궁금해하는 손님에게 변세근 연서시장 상인회장이 이용 방법을 알려준다. 신기해하는 손님에게 “전화번호를 누르면 바로 연결돼 예약이나 배달 주문도 할 수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김기택씨는 연서시장에서 50년 넘게 순대 집을 꾸려온 부모와 함께 25년째 장사하고 있다. 김씨는 “어머니와 찍은 사진을 붙인 간판을 거니 쑥스럽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껴진다”고 했다. 건너 뒤편에서 10여 년째 옷수선 가게를 하는 이미옥씨는 “시장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고 뿌듯해한다. “무엇보다 데면데면했던 상인들이 마음을 모아 다 같이 시장을 바꿔나가는 게 재밌고 즐겁다”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동아리 활동을 하며 행사도 함께 열면서, 교류가 활발해지고 유대관계가 좋아진 점이 제일 좋다”고 했다.

연서시장은 올해 은평구에서는 처음으로 중소벤처기업부의 특성화사업 가운데 하나인 특성화첫걸음시장(기반 조성)에 선정됐다. 내년 2월까지 5대(결제 편리, 고객 신뢰, 위생 청결, 상인 조직 강화, 안전 관리) 과제를 중심으로 2억7천만원의 국·시·구비를 지원받는다. 은평구청은 지난여름 시장 환경 개선을 위한 시스템 냉난방기 16대, 에어커튼 9대를 설치해줬다. 전통시장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지역 상인회 임원들과 대구 칠성시장 등 선진 지역 탐방을 다녀올 정도로 관심이 많고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위생안전 개선을 위해 해충방제·식품위생 전문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시장 전체적으로 매달 정기적으로 관리한다. 이전에 개별적으로 할 때보다 효과가 훨씬 좋다고 한다. 미생물을 활용한 음식물 친환경 처리를 위해 분해 소멸기를 한 대 마련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위한 상인들의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한 ‘2019년 전국우수시장박람회’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선 연서시장은 70년대 정식으로 시장 등록을 해 50년 넘게 운영됐다. 북한산 등산객 등 하루 수만 명이 지나다니는 곳으로 외환위기 때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장사가 꽤 되던 곳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설 노후로 천장에 물이 새기도 하고, 위생과 안전에도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대형 마트가 들어서고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늘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이 점점 줄었다.

상인회가 2011년 만들어지고, 은평구청과 함께 2015년 시설 현대화 사업을 하면서 연서시장의 변화는 시작됐다. 상인회의 박치덕 사무국장은 “위기를 느끼면서 변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있었다”고 전한다. 공사를 위해 3개월간 시장 전체가 문을 닫아야 해 일부 상인은 강하게 반대했다. 최상복 부회장은 “상인들 의견이 모이지 않으면 지원 사업을 반납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었다”며 “상인들 각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늘려 어렵사리 추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연서시장 상인들은 특성화첫걸음시장 사업을 통해 교육과 동아리 활동(바리스타, 녹색환경(시장정원사), 난타, 하모니카 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상인들 스스로 시장이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이전에 상인들은 하는 일이나 파는 물건으로 서로를 불렀다. ‘수선아’ ‘순대야’ 같은 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로의 이름으로 부른다. 시장 전체 행사에도 역할을 나눠 상인들이 직접 참여한다. 3년째 이어오고 있는 서울시 지원사업인 우리동네시장나들이 행사에 상인들이 아이언맨, 백설공주 등으로 변신해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다양한 깜짝 이벤트를 한다. 변 회장은 “이전엔 ‘나 몰라라’ 하던 상인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가 늘고 있다”고 전한다. 매출에도 도움되는 걸 경험하면서 번거롭더라도 시간을 내 참여하고, 시장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느끼는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현재 연서시장에는 빈 가게가 없다. 상인회 가입률과 회비 납부율도 거의 100%에 이른다. 상인회는 (특성화첫걸음시장)육성사업단과 함께 내년 2월 희망사업 프로젝트(문화관광형)에 지원할 계획이다. 이인선 육성사업단장은 “상인들의 결속력을 통해 특성화첫걸음 사업을 할 수 있었다”며 “상인들 호응과 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인들이 마음을 모으면 시장이 더 좋아진다”는 믿음으로 연서시장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곳, 문화와 관광이 있는 시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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