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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독립운동가 후손과 실향민, 자서전 냈다

등록 : 2020-01-16 14:32 수정 : 2020-01-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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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중구청, 자서전 교실 통해 ‘내 인생 돌아보기’ 출간

10명의 개인사 엮어…기술장인, 야쿠르트 아줌마, 시장상인 등 다양

독립운동가 후손 김성식씨(왼쪽)와 실향민 안경춘씨가 7일 자신들의 자서전이 실려 있는 <내 인생 돌아보기>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구청은 지난해 ‘자서전 교실’을 열어 어르신 10명의 자서전을 만드는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볼 기회를 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구청의 도움으로 자서전을 발간한 안경춘(85)씨는 7일 “세상에 나를 알릴 기회가 주어져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중구와 함께 어르신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발간하는 ‘자서전 교실’을 통해 열 명의 이야기를 엮은 <내 인생 돌아보기>를 지난해 12월12일 출간했다. 지난해 4월30일부터 11월까지 7개월간 진행된 자서전 쓰기에는 중구에 거주하는 65살 이상 어르신 10명이 참여했다. 처음에는 13명이 시작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거나 생업으로 바쁜 3명이 중간에 그만뒀다. 자서전 쓰기는 중구 세종대로 124 프레스센터 12층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의실에서 진행됐다.

자서전 쓰기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시장 상인, 기술 장인, 북파공작원, 야쿠르트 아줌마, 상이군경, 실향민 등으로 아픈 현대사만큼 가슴 시린 개인들의 역사를 풀어냈다. 자서전에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에 겪었던 수난과 고초, 그리고 아버지, 아들, 어머니, 며느리로 살아온 다양한 인생 역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7개월 동안 매주 에이포(A4) 용지 석 장에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적어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 갔죠.”


실향민인 안씨는 “자서전 교실에 나오기 전부터 자서전을 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며 “그동안 틈틈이 모아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써갔다”고 했다.

안씨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 황해도 송화군 초도에서 태어났다. 해방 이후 북한에 속했던 초도는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군 해병대가 주둔한 지역이다. 콜레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8살 되던 1953년 백령도로 피란했다가 전남 목포를 거쳐 1954년 진도군 의신면 피란민 수용소에서 생활했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호구지책으로 나무 장사를 하기도 하고 동생과 함께 국화빵을 구워 팔기도 했다.

안씨는 22살 되던 해인 1957년 서울에 있는 식당 서래관에 취직했지만 1966년 사업 부진으로 10년 일한 퇴직금도 받지 못한 채 서래관을 나왔다. 1968년 목재합판 가게에 영업부장으로 들어갔다가 2년 뒤인 1970년 을지로5가에 대일합판 상사를 만들어 사장이 됐고, 1972년 인천 태인목재 대표이사가 됐다. 1993년 중국 푸신시에 합자기업 공장을 지어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1996년 을지로5가 목재 상가 화재에 이은 부도로 폐업의 아픔을 겪었다.

자서전 교실에 참가한 김성식(84)씨도 파란만장한 일생을 자서전에 담았다. 특히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애비 덕을 보려고 하거나 이름을 팔거나 하지 말고 나라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해라.”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하고 해방 이후 2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정로 선생은 아들 김성식씨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훈계의 말을 마다하지 않았다. 김정로 선생은 김정두라고도 불렸다. 김씨는 “아버지의 호적 이름은 김정규였으나 백범 선생이 임시정부 시절에 지어준 이름이 김정로, 또한 손일민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 김정두”라고 했다.

김씨는 1936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넉넉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꾸준히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8년 새마을 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1979년부터는 을지로 방범대장으로 방범과 화재 예방 활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1980년부터는 방산시장과 중부시장 건널목에서 교통질서 봉사를 활발히 펼쳐 ‘인간 신호등’으로 불렸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씨는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등 경로봉사도 열심히 해오고 있다. 김씨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인정받아 199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김씨는 ‘독립운동했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뜻을 기려 아직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독립유공자 신청을 할 계획이다. 그는 “아버지의 업적을 알려 후손들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나라에 보탬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르신들은 내 인생 되돌아보기를 주제로 한 자서전 교실에서 자신들이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안경춘씨는 “자서전을 쓰다보니 나 자신이 잘못 산 것도 느꼈다. 살다보면 큰 죄는 아니더라도 후회하는 게 있다”고 했다. 김성식씨는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돼 너무 좋았다. 가족들에게 못해준 게 미안하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거치며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에 가슴 뭉클

실향민 소년 가장이 겪은 성공과 실패

독립투사 아들, 부친 뜻 새겨 ‘봉사왕’

재단 사회공헌 활동…재능 기부 큰 힘

중구 어르신 10명의 자서전이 담긴 <내 인생 돌아보기>. 정용일 기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진행된 자서전 교실은 재단 직원들과 전·현직 언론인, 작가들의 재능 기부가 큰 힘이 됐다.

7개월 동안 진행된 이번 자서전 교실은 초반에는 전·현직 언론인과 작가진이 자서전에 대한 개념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 등 기초 강의를 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상처를 마주하고 치유하기, 자존감 높이기 등의 수업도 병행했다. 자신들의 내면과 마주해 쉽게 이야기를 끌어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박형철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인연수팀장은 “직접 원고를 써오는 분도 있었고, 구술을 하면 받아 적는 경우도 있었다”며 “자서전을 쓰다보면 쓰고 싶지 않고 꺼내고싶지 않은 얘기들이 있는데, 마음을 열기 위한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자서전을 쓴 유진향(70)씨는 1978년 28살때부터 35년 동안 야쿠르트 판매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부끄러워서 주위에 ‘야쿠르트 아줌마’라는 사실을 숨겨왔다. 박 팀장은 유씨가 “야쿠르트 아줌마였다는 사실을 ‘자서전에서 빼고 싶다’고 해 넣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득했다”며 “그러자 유씨가 ‘이것도 내 인생이니 다시 집어넣자’고 해 책에 넣었다”고 했다. 유씨는 자서전에서 “내 인생의 절반을 한 가지 일에 매달려온 것에 크게 자부심을 갖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썼다.

중반에는 어르신들이 이야기를 구술하면 재단 직원들이 기록하고 함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재단 직원 한 명과 어르신 한 명이 일대일로 팀을 이뤄 어르신이 구술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렇게 내용을 정리하고 편집 과정을 거쳐 1인당 20~30쪽 분량의 개인사 10개가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내 인생 돌아보기>에는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끝내 찾지 못한 아픈 사연도 실렸다. 김월순씨는 1969년 쌍문동 정의여중 앞으로 이사한 지 5일만에 8살 된 아들(이동규)을 잃어버렸다. 이후부터 김씨의 삶은 아들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점철됐다. 방송사, 신문사도 찾아가고 용하다는 점집에도 가봤지만 여태껏 찾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주려고 산 책가방을 50년 넘게 보관하고 있다. 박 팀장은 “이 내용이 널리 전파돼 지금이라도 잃어버린 아들을 만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내 인생 돌아보기>는 하나의 자서전마다 만화, 자서전, 사진, 연대기로 구성돼 있다. “어르신 한 명당 에피소드 하나씩을 뽑아서 만화를 그렸는데, 재단 인턴직원과 외부 재능기부 활동이 큰 도움이 됐죠.”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한 재단 직원들은 자서전을 발간하는 동안 힘은 들었지만 어르신들 못지않게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박 팀장은 “자서전 쓰기에 참여한 재단 직원들이 업무를 하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7개월 동안 매주 빠지지 않고 한다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며 “처음에는 직원과 어르신이 소통하는게 쉽지 않았지만 자서전을 받아 보고는 모두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고 했다.

자서전 쓰기는 어르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가져다준다. 자서전을 쓰면서 가족이 함께 사진 등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다보면 세대가 서로 소통하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자서전 말미에 꼭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란다’는 말을 주문처럼 잊지 않았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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