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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만의 요가교실, 주인공은 70대 할배들

등록 : 2020-01-30 14:33 수정 : 2020-01-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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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송파실벗뜨락의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 현장을 찾아서

자세 유지 힘들지만, 근력·유연성 강화 등 뜻밖 운동효과

15일 송파실벗뜨락 지엑스룸에서 열린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에서 요가 강사 강성미씨가 참가자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이 요가 교실에는 전체 11명 중 60대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이 70대 장년 남성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오른쪽 발바닥에 (고무) 밴드를 끼고 잡아당기세요. 그런데 손목이 꺾이면 안 돼요. 그러면 다쳐요. 발꿈치를 바닥에서 떨어트리면 안 돼요.”

15일 오후 송파구 송파여성문화회관 5층 지엑스(GX)룸. 요가 강사 강성미(45)씨가 친절한 목소리로 요가 동작을 설명한 뒤 수강생 8명 사이를 돌아다니며 잘못된 자세를 일일이 교정해준다. 요가 교실 하면 여성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들 수강생은 여성이 아니다. 대부분 요가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70대 노년층 남성이다.

그러니까 이제 근력도 유연성도 한참 떨어진 ‘할배’들이다. 머리도 희끗희끗한 분들이 안간힘을 쓰며 여성 강사가 지도하는 대로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15일 송파실벗뜨락 지엑스룸에서 열린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에서 요가 강사 강성미씨가 참가자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이 요가 교실에는 전체 11명 중 60대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이 70대 장년 남성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15일 송파실벗뜨락 지엑스룸에서 열린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에서 요가 강사 강성미씨가 참가자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이 요가 교실에는 전체 11명 중 60대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이 70대 장년 남성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수강생들이 하는 동작은 유연성이 부족하면 꽤 힘든 자세로 보인다. 강사가 “복부에 힘을 주세요” “팔을 다섯 번만 위아래로 오르내릴게요”라고 격려하자 한 수강생이 “땀이 납니다”라고 외친다. 그도 그럴 것이 30분 동안 쉼 없이 공을 이용한 척추협착증 예방 동작, 내전근 강화 동작 등 근력·유연성 강화 운동이 계속된 탓인지 여기저기서 자세가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그러자 강사는 “내가 쓸 수 있는 근육의 범주까지만 하세요”라며 무리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15일 송파실벗뜨락 지엑스룸에서 열린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에서 요가 강사 강성미씨가 참가자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이 요가 교실에는 전체 11명 중 60대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이 70대 장년 남성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50분간에 걸친 요가 강습을 마친 송파구 주민 유종하(77)씨는 지난해 7월 송파구 노인복지관인 ‘송파실벗뜨락’에서 처음 중장년 남성만을 위한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을 개설했을 때부터 참여해 매주 두 차례 6개월째 요가 교실에 다니고 있다. 송파실벗뜨락에서는 중장년 여성을 위한 시니어 여성 요가 교실도 따로 개설돼 있다.

“허리가 안 좋아서 시작했는데 헬스보다 더 운동이 되는 것 같아요. 유연성과 다리·배 등의 근력이 좋아졌어요. 요즘은 호흡 관리를 배우고 있어요. 젊은 사람 같지는 않지만 퇴보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유씨는 집 앞에도 요가 교실이 있지만 남자는 안 받아줘 송파실벗뜨락의 요가 교실에 다닌다고 말했다. “남녀가 같이 하면 아무래도 남자가 못하니까 수업에 방해되고 쑥스럽기도 하니까 남성만 하는 요가 교실을 하자”는 생각에 요청했다고 한다.

정기(79)씨도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의 창립 멤버이다. 아내가 추천해 남성 요가 교실에 다니기 시작해 6개월 동안 결석은 단 한 번에 그칠 정도로 열성이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요가 교실까지 강남구 집에서 걸어서 온다고 한다. “선생님이 수강생 체력에 맞춰서 프로그램을 짜줘서 무엇보다 좋아요. 수업하고 나면 땀도 나고 유연성도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있다보니 허리가 안 좋고 다리도 유연하지 않은데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도 허리가 아프지 않아요.”

15일 송파실벗뜨락 지엑스룸에서 열린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에서 요가 강사 강성미씨가 참가자의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이 요가 교실에는 전체 11명 중 60대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9명이 70대 장년 남성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정씨는 올 1월부터는 65살 이상 노인에게는 12주 수강료 7만원 중 50%를 감면해줘 좋다고 한다. 창립 수강생 중 젊은 축에 속하는 김주일(70)씨는 10년 동안 피트니스센터에서 다진 체력 덕분인지 수업 내내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를 보였다.

“사람들은 요가가 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무겁지 않을 뿐 상당히 운동 효과가 있어요. 특히 자세가 비틀어진 나이 든 남성에게는 좋습니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이 든 사람에게) 요가가 제일 좋다”며 적극 추천한다. 입소문이 났는지, 시니어 남성 요가 교실에 다니는 11명 중 가장 젊은 사람이 62살이고, 9명은 70살이 넘은 노년층이다.


시니어 모델 강좌에서 웰다잉법까지…자치구 이색 강좌 인기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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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택시기사 양성반은 30명 취업

강사 강성미씨는 요가라고 하면 정적인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활동적인 면도 있다고 말한다. “나이 든 어르신에 맞춰 고관절과 유연성 강화에 수업의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아무래도 어르신이다보니 그날그날 컨디션을 살펴보면서 진행해요. 무리하게 따라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본인의 컨디션에 맞춰서 하라고 강조하죠.”

젊은 남성이 요가 수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남성만 참여하는 요가 교실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강씨는 “요가는 여성들 운동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인도에서 요가는 남성들 수행 목적으로 태어난 운동”이라고 강조하고 “수강생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정희 송파실벗뜨락 시설장은 “남성 시니어 요가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다. 남성들만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이 별로 없는데 어르신들이 주인공이 된 느낌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파여성문화회관이 주관하는 시니어 모델 강좌도 이색 강좌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4월 자세·체형 교정, 모델 워킹법 등을 통해 건강 증진뿐 아니라 자신감 향상 프로그램으로 도입된 시니어 모델 강좌는 입소문을 타고 수강생이 크게 늘어 일주일에 두 개 강좌로 늘어났다. 올해도 목요일·금요일 두 차례 모델 교실이 열리고 있다.

송파실벗뜨락은 올해 보건복지부 지원 사업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독거노인이나 돌볼 사람이 없는 부부, 돌봄이 필요한 사람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관내 340가구를 대상으로 4억8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전액 무료로 건강을 보살펴주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실시한다. 대상자로 선정되면 전담 사회복지사 2명과 생활지원사 29명이 방문이나 전화 연락,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사회관계 향상 프로그램, 자조 모임에 참석하도록 유도한다. 또한 신체·정신건강 분야, 이동활동 지원, 가사 지원, 청소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중랑구에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죽음을 잘 대비하자는 취지로 실시한 웰다잉 프로그램의 한 장면. 중랑구 제공

각 구의 웰다잉 프로그램도 눈길을 끄는 중장년 프로그램이다. 동작구 50+센터는 올해 ‘웰다잉을 위한 멋진 인생 재설계’라는 주제로 처음 프로그램을 개설한다. 삶에 대한 성찰과 자서전 쓰기, 버킷리스트 작성과 실천, 화해와 용서, 유언과 상속, 노인 인권과 노인 장기요양보험에 대한 이해 등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제시한다. 지난해 5월 ‘웰다잉 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중랑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보건소를 통해 지역 내 중장년층과 통장을 대상으로 웰다잉 교육을 할 계획이다. 송파구도 4천만원의 예산을 마련해 조만간 웰다잉 프로그램 강의를 시작한다.

구로구의 중장년 취업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구는 2017년부터 상·하반기로 나눠 각 30명씩 택시기사 양성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30명이 택시기사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구로구의 ‘삼시세끼 요리’ 등 중장년을 겨냥한 요리 배우기 프로그램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어 점차 확산 중이다. 이밖에 강북·동작구 등 각 구의 보건소를 중심으로 시행 중인 당뇨·고혈압·치매 관리 프로그램도 미리 챙겨두면 건강 관리에 유용하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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