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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불편한 환자 ‘발 편지’ 받고 울컥했죠”

백한승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통합치과진료센터장

등록 : 2020-02-0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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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개업의가 재단으로 이직해

‘중증 장애인 치아 상태 심각’ 깨닫고

이동치과 차량 후원받아서 방문 진료

“장애인 진료 정부의 정책·후원 필요”

백한승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통합치과진료센터장이 1월30일 센터 앞에서 밝게 웃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병원에 찾아오는 장애인도 있지만, 병원에 올 엄두도 못 내는 장애인도 많죠. 치료도 어렵지만 이동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백한승(42)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통합치과진료센터장은 1월30일 “거동이 힘든 중증 장애인들의 치과 치료를 위해 4년 전 효성 쪽에 이동치과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고맙게도 이동치과 차량을 구입할 수 있도록 후원해줬다”고 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효성의 지원을 받아 2017년부터 이동치과 차량을 이용해 ‘찾아가는 이동치과 사업’을 펼치고 있다. 거동이 힘든 중증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해서다. 이동치과는 지난해까지 총 24차례, 20개 기관에서 483명을 진료했다. 시작 초기에는 마포구 내를 주로 다니다가 강서구까지 영역을 넓혔다. 백 센터장은 “마포구의 도움을 받고 있어 이동치과 차량은 되도록 마포구 관내에서 진료해왔지만, 요즘은 조금씩 범위를 넓혀 일산 지역으로도 가고 있다”고 했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국내 유일의 어린이재활병원이다. 마포구가 상암동에 병원 터 1천 평을 제공하고 정부와 시민, 기업의 후원금 430억원을 모아 2016년 4월 개원했다. 서울시도 운영비와 기자재를 지원하고 있다.

이동치과 차량은 치과유닛체어 등 검사와 치료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구강 검진, 스케일링, 불소도포, 구강관리 교육 등을 한다. 마포구, 강서구 등 지역 사회 내 장애인 이용시설과 거주시설을 매월 한 차례씩 방문해 진료하는데, 평균 35~40명 정도 진료한다. 이동치과는 통합치의학과 전문의, 치위생사, 의료사회복지사, 차량운행자, 자원봉사를 나온 협력 대학 치위생과 학생 등 10여 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장애인들은 보통 자신의 치아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모르죠.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 하니까. 그사이 농이 생기면서 뼈가 녹기도 하는데 심각성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은 장애로 인해 구강 위생 관리가 어려운데다 치과 방문이나 진료가 쉽지 않아 제때 치료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질환이 방치되거나 증상이 심각해지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백 센터장은 “이동치과를 통해 만난 장애인 네 명 중 한 명은 적극적인 치료가 요구되지만, 치료 기회조차 갖지 못해 방치되고 있다. 찾아가는 진료로 더 많은 분에게 치과 치료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의 치과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게 전신마취치료실이다.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은 2016년 4월, 장애인을 위한 전신마취치료실 한 개를 갖춘 치과를 열었다. 하지만 전신마취가 필요한 환자가 늘어나면서 진료를 위해 1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지난해 5월 전신마취치료실 한 개를 추가로 만들어, 기존 치과를 통합치과진료센터로 확대했다.

“전신마취치료실이 한 개만 있을 때는 대기 기간이 1년6개월가량 걸렸습니다. 아프다고 왔는데 ‘1년6개월 뒤에 오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죠. 이제는 시간이 단축돼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백 센터장은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2000년 공과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3년 동안 외국계 컨설팅 회사를 다니다, 개인 사업을 2년 정도 했다. 사회생활에 지쳐갈 무렵, 의사인 사촌 형의 권유로 치과대학에 입학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치대를 졸업한 2009년 의사로 첫발을 내디딘 뒤, 2013년 개인 병원을 열었다.

“푸르메재단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후배가 권유하길래 딱 1주일 고민한 뒤 왔죠.”

백 센터장은 “병원 개업해서 돈 버는 건 좋았는데, 환자를 손님으로 인식하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즐겁지 않았다”고 이직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남정 박노수 화백의 사위인데, 박 화백은 종로에 있던 집과 작품을 사회에 기부하기도 했다. 백 센터장은 “그런 집안 분위기 때문에 아내도 ‘밥만 먹으면 되지’라며 이직을 말리지 않았다”고 했다.

“입안은 안 보이는 부분이라 상대적으로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이 한번 아프면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백 센터장은 장애인 치과 치료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그는 “일반인들이 ‘나도 임플란트 못했는데 장애인 임플란트 하라고 기부해야 하냐’라는 인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며,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치과 치료는 인생이 변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치료”라고 했다.

“치료를 받은 뒤 명필로 편지를 써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팔이 불편한 사람이었죠.”

백 센터장은 팔이 불편한 환자가 발로 ‘치료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는 글귀의 감사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정말 행복했고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치과는 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이 별로 없습니다. 임플란트는 65살 이상 2개까지 가능하죠. 우린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데 비용이 높은 편입니다. 장애인 보험료 가산점이 좀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통합치과진료센터는 일반병원에서 하기 힘든 치료를 하는 곳이다. 중증 장애인의 치과 치료는 일반인에 비해 평균 3.7배 인력과 4배의 시간이 들어간다. 백 센터장은 장애인들에게 치료 비용을 절감할 혜택이 많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 정책이 바뀌면 좋겠다고 했다.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싶어서 장애인 치과를 선택했습니다. 이분들을 진료하고 나면 제가 행복해지거든요. 그 마음가짐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죠.”

백 센터장은 내가 행복하고 장애인이 더 건강해질 수 있는, 장애인을 위한 치과병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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