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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성 청소노동자들, 코로나에 맞서다

등록 : 2020-03-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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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한겨레 서울&,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 새벽 4시 탑승기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새벽 청소 등 지속…문고리 한 번이라도 더 닦아”

버스는 새벽보다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2월28일 새벽 4시 정각, 구로역과 신도림역 사이에 있는 구로구 거리공원 정류장에서 6411번 시내버스가 서서히 출발했다. 하루를 여는 첫 버스였다. 버스는 그곳을 출발한 뒤 1시간30분가량 달려 강남까지 간다.

가로등 빛과 몇몇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가는 불빛만이 세상을 밝히는 한밤중.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의 실내등은 이 수송수단을 세상을 비추는 하나의 랜턴처럼 느껴지게 한다. 어둠을 뚫고 달리는 그 랜턴 같은 버스 안은 그러나 채 몇 정거장도 안 지나서 금세 승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승객 대부분은 50~70대 여성. 강남 쪽으로 청소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이들이 많다.

지난 2월28일 새벽 4시 구로구 거리공원 정류장에서 출발한 6411번 시내버스에서 황복연 노회찬정치학교 1기 졸업생 대표가 버스에 오르는 여성 승객에게 장미 한 송이와 마스크가 들어 있는 에코백을 나눠주고 있다. 노회찬재단에서는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코로나19 사태로 여성 청소노동자 등 우리 사회 취약계층이 더욱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이날 장미꽃 전달 행사를 열었다. 윤승걸 사진작가 ysg1119@naver.com

“아침 일찍 수고하십니다. 장미 한 송이 받으세요.”


황복연 노회찬정치학교 1기 졸업생 대표가 마스크를 한 채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에게 6411번 버스 그림이 새겨진 에코백을 일일이 건넸다. 에코백 속에는 장미 한 송이와 코로나19 방지를 위한 마스크가 들어 있었다.

노회찬정치학교는 노회찬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다. 고 노회찬 의원의 정치철학을 계승할 제2, 제3의 노회찬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이 학교는 지난해 10월26일 1기 교육을 시작했다. 모두 15주 과정을 마친 현재 1기 수료생은 21명이다. 19살 고3 학생부터 57살 어린이집 원장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노회찬 정신’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다고 한다.

뜻밖의 장미 선물을 받은 대부분의 여성 승객들은 의아해하다가도 “노회찬재단에서 나왔다”는 한마디에 장미와 마스크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챘다.

‘노회찬’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아~” 하며 잠시 끊었다가, “그분 참 고생만 하다 가셨는데…”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노회찬재단 관계자들의 이날 6411번 시내버스 첫차 탑승은 3월8일 세계여성의날을 재단 차원에서 기념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6411번 버스가 노회찬 의원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인연은 청소, 여성, 노동자, 저임금, 사회적 소외라는 말들과 관련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애틋한 시선으로 보듬어야 할 이 단어들에 노회찬 의원은 남보다 앞서 따뜻한 눈길을 보냈다.

노회찬 의원이 6411번 버스를 처음 언급한 것은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연설 때였다. 노 대표는 당시 연설에서 6411번 버스를 언급하며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이라며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 대표는 이 첫차를 타고 청소를 하기 위해 강남의 빌딩까지 가는 여성노동자들을 ‘투명인간’이라 칭했다. 새벽 첫차를 타기 위해 9시 뉴스도 보지 못한 채 잠드는 이 여성노동자들을 진보정당조차도 투명인간을 대하듯 제대로 손 내밀지 못했다는 자책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은 이미 17대 국회의원이던 2005년부터 여성의 날을 맞아 국회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여성노동자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해오고 있었다. 노 의원이 건네는 장미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고 상징하는 증표였다. 6411번 버스를 타고 가는 50~70대 여성 청소노동자들도 상당수가 노회찬 의원의 그런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6411번 시내버스

거리공원에서 출발한 버스는 서울미래초등학교, 신도림역, 영림중학교, 구로구청 등 구로구 곳곳을 꼼꼼히 돈 뒤 출발한 지 25분이 지나서야 구로구를 벗어나 영등포구 대림동에 들어섰다. 그 꼬불꼬불한 코스는 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을 태우기 위한 배려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미 모든 자리는 여성 청소노동자들로 거의 꽉 찬 상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한 탓인지 첫차를 탄 청소노동자들은 이미 적지 않은 피로감을 갖고 있었다.

“가끔은 섬뜩한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올해로 13년째 새벽 첫 버스를 탄다는 60대 초반의 여성 청소노동자 정아무개씨가 장미꽃을 받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는 논현동의 큰 빌딩에서 청소 노동을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 쓴 마스크를 아무 곳에나 훌렁 벗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것들을 하나하나 집어서 처리할 때 정말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정씨가 청소하는 과정에서의 무서움을 호소하자 60대 중반의 여성 청소노동자 유아무개씨가 자신도 그렇다며 말을 받았다.

“맞아. 화장실이건 사무실이건 제멋대로 버린 마스크들을 치울 때는 꽤 신경이 많이 쓰여.”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있는 두 사람은 청소 노동을 오래 했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뿌린 공포는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부터 이렇게 사람들 마음속에 파고들고 있었다. 이날 버스 안에서는 정씨와 유씨뿐 아니라 모든 승객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유씨는 이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노동강도 강화 문제를 호소했다.


“아무렇게나 버린 마스크 치울 땐 섬뜩한 느낌이 들어”

코로나 사태, 사회적 약자에 더 큰 고통

“그래도 함께 헤쳐나가야” 다짐하기도

노회찬 의원 얘기엔 “고생만 하시다…”

“사회적으로 위생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청소 노동도 일이 많아졌어. 문고리 하나를 닦아도 코로나19 전염 우려 때문에 한 번 더 닦는다니까. 그리고 요즘 마스크를 꼭 쓰고 청소해야 하는데, 그러면 평소보다 더 숨도 차고 힘이 들어.”

이런 하소연에 대해 20년이 넘게 청소 노동을 해오고 있다는 70대의 김아무개씨는 “어떻게든 현 상황을 함께 이겨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이건 천재지변에 가까운 거니까.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든 상황이지. 우리 건물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장사가 안된다고 힘들어해. 모두가 다 조금씩 힘을 더 내야지. 우리도 힘내야지. 우리 같은 청소노동자가 없으면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안 되지.”

이강준 노회찬재단 사업기획실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청소 등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더욱 힘든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며 “노회찬재단에서는 코로나 국면과 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더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오늘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사실 코로나19 사태도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다. 공포는 모두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재택근무를 하거나 자기 스스로 집 문을 닫고 밖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려운 상황인데도 일을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6411번 첫 버스를 탄 사람들도 코로나19의 공포를 누구보다 더욱 많이 몸으로 느끼면서도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더욱이 이들은 대부분 50~70대다. 중국질병통제예방센터(CCDC) 연구팀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자의 치사율은 80대 이상 14.8%, 70대 8%, 60대 3.6%, 50대 1.5%다. 반면 40대 이하는 0.2~0.4% 정도이다. 중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코로나19가 나이가 많은 이에게 매우 치명적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50~70대에 주로 분포한 여성 청소노동자가 느끼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심은 우리 사회 평균 이상일 것이다.

지난 2월28일 새벽 중년 여성들이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정류장에서 6411번 버스 등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윤승걸 사진작가 ysg1119@naver.com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6411번 새벽 버스를 타는 사람들 이외에도 새벽 청소 노동을 변함없이 하는 여성 청소노동자가 많이 있다. 노회찬재단에 따르면, 2018년의 경우 서울시 정규편성 버스 650여 개 노선 중 278개 노선이 새벽 4~5시 사이에 운행을 시작한다. 이들 노선 승객 상당수는 지하철이 움직이기 전에 직장에 갈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때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열악한 노동조건을 보여준다.

이 278개의 새벽 4~5시 운행 노선 중 6411번 버스는 146번 버스에 뒤이어 이용 승객 수가 둘째로 많은 버스다. 상계에서 강남까지 운행하는 146번 버스와 6411번 버스 등 승객 수 상위 10개 노선의 경우, 출발지는 대부분 구로를 비롯해 노원, 중랑, 관악, 금천 등 서울 외곽에 있는 자치구다. 반면 도착지는 종로, 여의도, 강남 등 도심이다. 노회찬재단은 이들 중 상당수가 여성 청소노동자들이라 본다.

6411번 첫 버스는 이날도 마스크를 한 여성노동자들을 가득 태우고 한 시간 이상을 달린 뒤, 큰 빌딩들이 몰려 있는 강남 중심에 도착해 그들을 내려놓았다.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도, 50~70대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오늘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들은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 없이 새벽 일찍 일터에 도착해,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한 번 더 걸레질을 한다.

그 새벽,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코로나19와 싸우기 시작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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