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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항일, 전 깨끗한 거리 만들죠”

영등포구 신길4동 ‘신4지구촌’ 심연옥 회장

등록 : 2020-03-0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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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조선족 20명이 만든 봉사단체

지역 거리 청소, 코로나19 방역도 도와

구청 지원사업 통해 벽화도 그릴 예정

“동포들 소속감 가질 수 있어 좋아요”

영등포구 신길4동 외국인 여성들이 만든 봉사단체 ‘신4지구촌’의 심연옥 회장이 2월27일 신길4동 주민자치센터 앞 거리에서 인터뷰하며 밝게 웃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부모님들이 일제 치하에서 독립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줬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나도 조국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영등포구 신길4동에 거주하는 외국인 20여 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체 ‘신4지구촌’의 심연옥(56) 회장을 2월27일 신길4동 주민센터에서 만났다. 심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신4지구촌을 만들어 지역 내 쾌적한 거리 만들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골목길 쓰레기 무단 투기를 막기 위한 순찰과 청소를 하고, 영등포구에서 시행하는 ‘거리 입양제’에도 동참하고 있다. ‘신4지구촌’은 신길4동과 지구촌을 합친 말로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신길4동을 상징한다.

신4지구촌은 지난해 10월 신길4동에 사는 조선족 주민들이 모여 만들었다. 신길4동 지역에 외국인과 다문화가정이 늘어나고 특히 중국 출신 주민이 크게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심 회장은 “일부 재중동포와 외국인 주민이 언어 장벽과 생활 방식의 차이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결혼 이민자와 외국인 주민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신4지구촌을 만들었다”고 했다.


“신4지구촌은 50대와 60대가 주축이 된 20여 명의 여성으로 이뤄진 단체로, 대부분 직장에 다녀 평일보다는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을 이용해 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활동을 시작한 신4지구촌은 주 1회 오후와 야간에 쓰레기 무단 투기 지역 20곳을 중심으로 주민들에게 올바른 쓰레기 배출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영등포구에서 시행하는 ‘거리 입양제’는 시민단체가 환경미화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특정 거리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제도다. 신4지구촌은 신길로 172 지역에 있는 약 100m 구간을 맡아 관리하는데, 주 1회씩 회원들과 함께 담당 구역에 나가 청소 등을 하고 있다. 심 회장은 “지금은 코로나19로 잠시 중단하고 있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시 청소도 하고 꽃을 심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신4지구촌은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모임과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대신 주민센터와 협력해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소독과 방역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초에는 지역 내 중국인 인구가 가장 많은 대림동 일대 방역 지원을 나가기도 했다.

심 회장은 “상가나 식당 등을 중심으로 방역 활동을 하고, 일반 가정도 요청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방역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신4지구촌은 영등포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우리 마을 해결 사업’에 골목길 환경 개선 및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을 신청했다. 어두운 골목길을 쾌적한 환경으로 바꾸기 위해 벽화도 그리고 화분도 설치한다. 또한 길거리 금연, 쓰레기 무단 투기 예방 등 기초질서를 지키는 캠페인도 진행할 계획이다. 심 회장은 이를 통해 “주민 스스로 쾌적하고 깨끗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화합하고 공존하는 다문화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심 회장은 신4지구촌을 만들기 전부터 영등포구 자원봉사센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2018년 영등포구 마을지원센터 활동을 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대림동 다문화협회 총무를 맡고 있다. 심 회장은 “신길동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조직이 없어 할 수 없이 대림동에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2월21일부터는 영등포구 인권지킴이 활동도 새롭게 시작했다.

심 회장이 이처럼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게 된 데는 한국에 와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고 가족이 적극적으로 밀어줬기 때문이다. 중국 지린성 연길(옌지)시가 고향인 심 회장은 19년 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왔다. 화장품 판매업을 하는 심 회장은 남편과 함께 열심히 일한 결과,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심 회장은 “처음 지하방에서 시작해 6년 전 내 집 장만을 했다”며 “남편도 여유 있을 때 베풀어주고 열심히 봉사하라며 적극 후원해준다”고 했다.

심 회장은 19년 동안 한국에서 살아도 연변 억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는 “이제는 억양이나 말투 때문에 업신여기지도 않고 이상한 눈길로 보지도 않는다”며 “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만족해했다.

영등포구에는 1월 기준 5만7천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데, 이 중 1800여 명이 신길4동에 살고 있다. 신길4동 주민 20%가 외국인으로 이 중 98%가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이다.

심 회장은 “중국동포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소속감을 가질 수 있어 너무 좋다”며 “지금은 신4지구촌의 규모가 작지만 앞으로 신길동을 빛낼 수 있는 훌륭한 봉사단체로 키워가겠다”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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