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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 살아야 점포주도 살죠”…‘착한 임대료’ 확산

등록 : 2020-03-2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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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어려운 소상공인 돕는 운동 공감대 넓어져

중구 삼익패션타운, 관악구 신사시장 점포주 대거 참여

삼익패션타운 상인과 점포주, 관리회사 대표가 20일 시장 앞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 주먹을 부딪치고 있다. 왼쪽부터 박인순 ㈜삼익패션타운 대표이사, 4층 액세서리점 ‘로즈킹’을 운영하는 장정례씨, 신응열 삼익패션타운 점포주대표회 회장.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상인들이 살아야 시장이 살고 그래야 점포주들도 살죠. 상인이 없는데 점포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중구 남대문시장8길에 위치한 삼익패션타운은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들자,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에게 도움을 줄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상가 층별 점포주 대표와 상인 대표가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해결책을 마련했다. 신응열 삼익패션타운 점포주대표회 회장은 20일 “코로나19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상인들에게 3월과 4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면해주기로 했다”며 “임대료와 관리비 모두 2개월 동안 월 50%씩 감면해준다”고 했다.

2월26일 점포주대표회에서 점포주가 직접 운영하는 점포를 제외한 846개 점포의 임대료를 감면해주기로 한 것이다. 층마다 있는 점포주 회장들이 점포주들에게 ‘상인들이 망하면 점포주들도 망한다’며 설득해서 이뤄낸 성과로 한두 곳 빼고 모두 동참했다.

최근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되자 상가와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임대료를 감면해 소상공인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착한 임대료 운동’의 일환이다. 신 회장은 “이곳 임대료는 싼 곳은 30만원, 비싼 곳은 100만원 정도 한다”며 “2개월 동안 전체 임대료 감면액은 4억5천만~5억원가량 된다”고 했다.

상가와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인 ㈜삼익패션타운도 관리비를 3월과 4월 2개월 동안 월 50%씩 감면하기로 했다. 상인들이 감면받는 관리비는 모두 3억원 정도다. 삼익패션타운 임직원들도 지난 9일 한 달 치 급여 중에서 2800만원을 반납해 힘을 보탰다. 박인순 삼익패션타운 대표는 “점포주회·상인회·관리회사가 어려운 시기 모두 힘을 합쳐 고통을 분담하기로 했는데, 힘든 상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의류특화시장인 삼익패션타운은 1986년 만들어진 지하 5층, 지상 10층 건물로 점포 1500여 개, 점포주 1100여 명, 상인 800여 명으로 이뤄져 있다. 국내 최초로 의류·구두·액세서리 등을 함께 파는 토털쇼핑몰의 효시로, 삼익패션타운을 본떠 1990년대 말 동대문상가에 밀리오레와 두타 등이 생겨날 정도로 성업을 이뤘다.

하지만 2, 3년 전부터 상황이 어려워진데다 최근 코로나19로 급격히 나빠졌다. 이날도 삼익패션타운은 손님 발길이 뜸했다. 박인순 대표는 “손님이 거의 없어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있다”고 걱정했다.

삼익패션타운은 현재 비어 있는 점포가 30%가량 된다. 어떻게든 시장을 활성화하려고 비어 있는 점포를 손님과 상인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커피숍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손님이 끊기자 상인들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상인들이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집에 돌아갈 때까지 개시도 못할 정도죠.”

김성필 삼익패션타운 상인연합회 회장은 “그래도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유동인구가 40만~50만 명 정도 됐는데, 코로나19로 모임도 잘 하지 않아 거리를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며 “그러다보니 손님들이 상가 매장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손님이 없다 보니 점포 4~5곳 상인들이 연합해 ‘옆집 가게 봐주기’를 하고 있다. 한 가게 주인이 쉬면 다른 가게 주인들이 대신 물건을 팔아준다. 집합상가라서 한 점포만 문을 닫을 수 없기 때문인데, 이렇게 날짜를 정해 가게 주인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쉰다고 했다. 김 회장은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구경을 못하니까, 아예 문을 닫을 수는 없고 해서 만들어낸 고육지책”이라고 했다.

“지금 상인들 다 나가떨어지고 있어요. 봄에 팔려고 몇천만원씩 물건 해놨는데, 물건이 그대로 있죠. 팔아야 생활비도 하고 할 텐데 그게 제일 힘들죠.”

김 회장은 “시장 건물에 하루에 50명이나 들어올까 모르겠다”며 “한 달 넘게 손님과 얘기를 못해본 가게도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가게에 나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문을 닫아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고민이죠.”

4층 액세서리점 ‘로즈킹’을 운영하는 장정례씨는 “상인들이 지금 죽겠다고 난리”라고 했다. 장씨는 “지자체나 정부에서 자영업자들을 위해서 50조든 100조든 실제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정부 정책이 제대로 집행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번 삼익패션타운의 ‘착한 임대료 운동’ 동참은 중구 관내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 8개 시장·상가의 점포 2010여 곳 임대료를 한시적으로 인하한 데 이은 또 다른 사례다. 이러한 시장 상인과 점포주, 관리회사의 상생 노력에 서양호 중구청장은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 요즘, 삼익패션타운 사례는 좋은 본보기로 구에서도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상인들 “하루 종일 개시도 못하는 가게 많아요” 하소연

한 달 새 매출 절반 이상이나 줄어들자

임대료 절반 감면해주는 임대인 늘어나

자치구의 강한 의지가 확산에 큰 도움

건물주인 최병하씨(왼쪽)와 임영업 신사시장상인회장이 19일 관악구 신사동 신사시장 입구에 나란히 섰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이 잘돼야 동네도 활성화되죠. 보기에 딱하고 해서 임대료를 감면하기로 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관악구 신사동 신사시장 내 한 건물 주인 최병하씨의 말이다. 최씨는 월 110만원씩인 휴대전화 가게와 분식점 임대료를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매월 20만원씩 내려 받기로 했다. 최씨는 신사시장에서 제일 먼저 임대료를 내려주겠다고 약속한 점포주로, 이곳에서 30년 동안 장사해왔던 터라 상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관악구도 신사시장을 비롯해 ‘착한 임대료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신사시장은 300여m 구간에 양옆으로 100여 개 점포가 있는 ‘동네 시장’이다. 건물주는 30여 명으로 이중에서 18명이 임대료 감면에 동참했다. 점포주들은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을 위해 임대료를 최고 월 100만원까지 감면해주기로 약속했다. 임영업 신사시장상인회장은 “건물주가 직접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감면해주겠다고 약속해 상인들 60%가 혜택을 보게 됐다”고 했다.

“전체 시장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코로나19로 빈 가게가 생기다보면 시장이 죽고 그러면 건물주도 피해를 보기 때문에 같이 상생하자는 것이죠.”

임 회장은 코로나19로 시장을 찾는 시민들 발길이 끊겨 상인들이 어려움을 겪자 임대인들을 일일이 만나 상인들 사정을 설명했다. 임대인들도 상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하고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임 회장은 “지금 한 명 두 명 동참하겠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임 회장은 시장에 있는 전광판에 임대료를 삭감해준 건물주 이름을 올려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임대료 삭감에 동참해줘서 고맙다’는 펼침막도 2개나 내걸었다.

임 회장은 박준희 관악구청장의 ‘착한 임대료 운동’에 대한 강한 의지가 점포주들을 설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임 회장은 “임차인 간에 할 임대료 얘기를 상인회장이 나서서 하면 오해받을 소지도 있고 한데, 구청이 분위기를 잘 조성해줘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었다”며 “앞으로 점포주 80~90% 이상 참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중구와 관악구 외에도 서울의 자치구에서 ‘착한 임대료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동작구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중심으로 건물주와 상인들 사이에 ‘착한 임대료 운동’을 펼치고 있다. 18일 기준으로 임대인 463명이 참여해, 1134개 점포 상인이 임대료 감면 혜택을 받게 됐다. 구는 임대료를 감면 해준 임대인에게 정부에서 감면액의 절반을 세제 혜택으로 보전하는 것과 별도로, 구 차원의 지원도 함께 할 예정이다.

영등포구에서는 꽃·의류·이불 등을 판매하는 영신상가(영등포로 225)가 3월부터 3개월 동안 48개 점포의 임대료를 20% 감면하기로 결정했다. 삼구시장, 로터리상가, 동남상가, 남서울상가 등도 임대료를 한시적으로 20%씩 낮춘다.

금천구는 독산동 ‘맛나는거리’ 상점가 한 건물주가 3개 점포 임대료를 3개월간 매달 60만원씩, 또 다른 건물주는 6개 점포의 임대료를 20만~30만원씩 한 달간 감면하기로 했다. 현대시장 내 건물주 2명도 점포 3개의 임대료를 매달 20만원씩 두 달 동안 감면한다.

코로나19가 두 달 가까이 지속하는 가운데 우울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상인과 점포주들은 코로나19가 더는 확산하지 않고 진정되기만을 바라고 있지만 아직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극단적인 표현으로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우며 상생의 길을 가자고 호소했다. “이런 상황이 몇 달 더 길어지면 정말 죽는 상인도 나올지 몰라요. 그 전에 서로서로 돕는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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