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옆 송현동 터, 숲공원으로 만들자

기고│조경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등록 : 2020-04-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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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모든 사람의 일상이 바뀌었다. 나의 하루도 예외는 아니다. 주로 집 주변에서 시간을 지내다 보니, 동네 공원이나 산을 자주 찾게 된다. 야외에서 햇볕을 쐬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위안은 무척 크다. 공원은 답답한 실내에서 벗어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중요한 생활 인프라다. 집이나 직장 가까운 곳에 녹지가 많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서울은 자연환경 여건이 좋은 도시이다. 주변에 산도 많고 하천도 가깝게 분포해 있다. 지난 30여 년간 새로운 공원도 많이 만들어, 세계 어느 도시에 비교해도 풍부한 자연을 가진 도시이다. 그런데 산은 많으나 시민들이 충분히 향유할 공원녹지는 여전히 부족하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계 주요 도시들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선언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도시들은 아직 이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 실정이다. 많은 도시가 도심에 차량을 억제하고 도로를 줄여 녹지를 확보하면서 ‘그린 라이프’ 스타일로 전환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도 도심을 숨 쉬게 하자는 취지 아래, 에펠탑 주변, 시청, 역광장 등 주요 도심 공간에 도시 숲을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서울의 한복판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3만7143㎡의 땅이 있다. 인사동 사거리에서 경복궁 방면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높은 가설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누구나 궁금해할 이곳은 현재 대한항공이 소유한 땅이다. 조선시대에는 소나무 숲과 권문세도가의 저택이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자본인 조선식산은행의 사택이 들어섰고, 광복 뒤에는 미군 숙소와 주한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활용됐다.

그동안 한옥 호텔 등 다양한 개발 구상이 있었다. 그러나 민간 주도 개발은 인근 역사 경관을 해칠 위험이 있다. 이 터는 조심스럽고 지혜롭게 활용해야 하는 땅이다. 인근 빌딩에 올라가 송현동 부지를 내려다보면,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초지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다행히 서울시가 이곳을 매입해 공원화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옛 원형에 가깝게 소나무 숲으로 복원하겠다고 하니 적극 환영할 일이다.

18세기 중엽의 ‘도성대지도’. 조선 후기 한성부의 도성 안과 숭례문·돈의문 밖을 상세하게 그린 지도로 도성 곳곳에 소나무 숲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8세기 중엽의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를 보면 도심 곳곳에 소나무 숲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송현(松峴)은 소나무 언덕이라는 뜻이다. 현재도 어느 정도 언덕 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도심에 소나무 숲을 복원한다는 구상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이다. 숲은 서구의 공원이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 민족이 자연을 즐기는 터전이었다. 숲과 계곡을 찾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일상적인 여가문화였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광장 공간보다 숲과 언덕은 우리 정서에 잘 맞는 편안한 장소이다.

송현동 부지가 숲 공원이 되면 인근 주민과 직장인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원이자, 인사동, 북촌, 광화문광장, 서울공예박물관(2020년 안 완공 예정)을 잇는 도심 관광의 거점이 된다. 향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 의정부 터 복원 등과 함께 소나무 숲은 역사 경관 복원의 한 축을 이룰 것이다. 나아가 시민들과 즐기는 상징적인 공공 프로젝트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 일이 잘 진행되기 위해서는 토지를 소유한 기업과 협의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토지 소유주는 송현동 터가 지니는 공공적 가치를 고려해 합리적 수준에서 매각하기 바란다. 서울시도 토지 수용에 있어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할 것이다. 공원으로 개발한다고 하고 나중에 과도한 시설을 끼워 넣는 것도 피해야 할 것이다. 온전한 숲 공원화를 약속하고 이를 반드시 지키기를 바란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로 한 그루의 나무, 한 뼘의 공원녹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송현동 부지를 공원화하는 것은 절실한 시대적 요청이다. 송현동 소나무 숲에서 시민들이 함께 누릴 봄날을 고대한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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