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전염병 방어 위한 서울시 역할과 의무

기고│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

등록 : 2020-05-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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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0일 우리나라에 코로나19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이후, 4월 중순부터는 완연한 진정세로 돌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무증상 감염이 확산될 수 있고, 올가을 다시 유행이 찾아올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진지하게 여겨야 하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5월3일 기준 전국 확진환자 수는 1만801명으로 집계됐다. 비록 대구 신천지 사건으로 2월 말부터 3월까지 폭발적으로 환자가 증가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는 빠른 검사와 추적, 격리를 통해 감염 확산을 차단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지난 100여 일을 돌아보면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31번째 환자가 신천지 관련 첫 환자로 확진됐던 2월18일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신천지 관련 감염 확산이 2020년 초반 한국 유행의 성격과 규모를 결정지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2월 말까지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2월29일 하루 909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해 최대를 기록하는 등 3주에 걸쳐 6천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긴장감은 전국을 휘감았다. 서울 시내의 모든 정치집회가 금지되고, 종교 예배도 온라인으로 대체하도록 권고됐다. 그때 이 말이 나왔다. “서울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립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이 한 말이다. 위기감과 서울시 방역에 대한 책임감이 배어 있는 절박한 호소였다.

며칠 뒤 그 말은 다른 표현으로 응용됐다. 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 시장은 “대구가 안전해야 서울도 안전하다”고 했다. 환자 폭증으로 어려움을 겪던 대구시가 도움을 요청했고, 서울시가 대구 환자를 받아 치료하겠다는 입장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온 말이다. 상황의 절박함에 연대와 협력의 뜻으로 화답한 것이다. 2월 초 서울시가 중국 베이징 등 협력도시에 물품을 보내며 “어려울 때 돕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메르스 때 도와주었던 중국에 대한 보답”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오른다. 연대와 협력이야말로 전세계적 유행을 일컫는 ‘팬데믹’에 대응하는 원칙임을 다시금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지난 4월2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1회 WEA 콘퍼런스 ‘팬데믹과 동아시아‘에 참석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그러나 “서울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린다”는 말은 책임과 연대의 의미 이외에 경고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절반이 서울, 경기, 인천의 수도권에 집중됐고, 밀집된 도시구조를 갖고 있으며, 인천공항·김포공항과 같은 국제공항이 두 개나 있어서 수십만 명의 출입국자를 맞는다. 외국에서 발생한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기 좋은(?) 환경 조건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병원이나 의료인 등 대응할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수도권이 뚫리고 대한민국 전체가 뚫릴 수 있다.

그렇다면 감염병 대응에서 승패의 전장이 될 수도권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서울·경기·인천 3개 광역자치단체가 감염병 대응의 협력을 더욱 긴밀히 하는 것은 기본 전제여야 한다. 그 위에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과 운영, 활용은 물론, 공공의료 인력의 역량을 확대하고 공유하기 위한 세부적 논의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내외 감염병 동향을 감시하고 정보를 교류하는 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며,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맞춰 서울·경기·인천과 두 국제공항이 함께 모의훈련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의료에 종사할 전문의료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공공의과대학 설립’ 논의도 빠뜨려서는 안 될 주제다. 감염병이나 지진, 대형 화재나 붕괴 등 재해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공공의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전문의료인력을 양성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인구 고령화에 대비하고 시민 건강을 지키는 의료행정가도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곧 출범하게 될 21대 국회에서 의과대학 설립과 정원 확대가 논의된다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이 제외돼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는 이와 같은 지자체들의 연대와 협력을 지지하고, 자치단체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지원을 약속해야 한다. 사실 이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2015년에 비해 훨씬 나아진 중앙정부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러나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감염병 대응 역량을 키워내기 위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적극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기억하자. “수도권이 뚫리면 대한민국이 뚫린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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