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수업인데도 서로 연결된 느낌 들어 신기해요”

상호 관계 맺기에 중점 두고, 실시간 쌍방향으로 배움과 소통 이어가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왔다. 경기 후퇴, 활동 위축 등 삶을 짓누르는 변화도 많지만, 그런 과정에서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사례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서울&>에서는 서울 시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런 가능성의 현장을 4회에 걸쳐 살펴본다.

고교자유학년제 학교인 오디세이학교도 코로나19로 온라인 개학을 했다. 생각지 못한 원격수업에 학생, 교사, 학부모도 처음에는 당황하고 불안했다. 오디세이학교는 특히 상호작용과 소통에 중점을 두는 터라, 온라인에서 그 가치를 살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댔다. 서로 연결된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교육과정과 수업 방법을 디자인하기 위해 애썼다.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교육기획부장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말과 글을 나누며 소통하고, 자신과 서로의 존재를 살피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행동을 기획하는 교육 활동의 가능성을 온라인 수업이라는 조건에서 탐색했다”고 했다.

오디세이학교는 서울의 17살 청소년이 교과 지식 중심 교육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을 배우는 기회를 누릴 수 있게 1년의 전환학년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과 민간 대안교육 기관이 손잡고 문을 열었다. 민관협력형 공립 전환학교인 셈이다.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2018년 각종학교로 인정받았다. 해마다 80~100명이 수료한다.

오디세이학교 아이들은 일반고나 자율형 공립고 1학년에 학적을 두고, 오디세이를 다닌 뒤 2학년으로 복교할 수 있다. 등록금도 원적 학교에 낸다. 교과를 최소한으로 배우고, 다양한 선택 프로그램(글쓰기, 문화예술, 과학문화, 프로젝트 등) 활동을 한다. 현재 5개 학급(꿈틀, 민들레, 이룸, 하자, 혁신파크)이 각기 다른 지역에 캠퍼스를 두고 서로 협의해가며 운영한다.

오디세이학교는 반마다 3명의 길잡이 교사와 강사들이 함께한다. 4월16일 온라인 개학 뒤 아이들은 아침 9시30분 화상회의 ‘하루 열기’로 일과를 시작한다. 간단한 스트레칭과 알림, 글이나 시 읽기 등이 이뤄진다. 오후 5시30분 화상회의 ‘하루 닫기’로 일과를 마친다. 그날 수업 활동에 대한 느낌을 온라인에 올리고, 다른 친구들 글에 댓글도 단다. 수업은 과목과 프로그램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화상회의 플랫폼과 메신저, 그리고 구글 클래스룸 등을 활용해 진행한다.

온라인 개학 한 달을 맞은 오디세이학교 혁신파크반을 5월6일 오전에 찾았다. 캠퍼스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안에 있다. 3시간짜리 한국사 온라인 수업이 한창이었다. 여느 교실의 두 배 정도 넓은 공간은 마치 스튜디오 같았다. 세 대의 조명기에 둘러싸인 조인선 교사가 화상 앱 ‘줌’으로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13명 아이와 대화하며 수업하고 있다.

“갑신정변 개화파의 개혁 정강처럼 여러분 나름의 2020년 17살 학생판 개혁안을 만들어봐요.” 조 교사는 온라인 회의실을 연다. 아이들은 서너 명씩 4개 모임으로 나뉘어 온라인 토론에 나섰다. 앞서 온라인 게임으로 모둠을 나누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참조할 수 있게 링크를 걸어줬다.

소모임 토론을 하고 내용을 정리한 뒤 다시 메인 방에 전체가 모였다. 모둠마다 작성한 개혁 정강 피피티(PPT)를 띄워 돌아가며 발표했다. 조 교사는 중간중간 설명을 곁들어 아이들의 이해를 도왔다. 아이들이 다른 모둠의 발표 내용을 귀담아듣게 특징을 묻는 말도 던졌다.

조 교사는 “매주 끙끙거리며 수업을 준비하는데 아이들이 재미있어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들이 온라인에서 말하고 글 쓰는 걸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쉬워한다”며 “수업시간에 정보를 알려주기보다는 아이들이 ‘왜’라는 질문을 갖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길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덧붙인다.

아이들 역시 “온라인 수업이 생각보다 재밌다”고 한다. 김다성군은 “모둠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 생각도 들을 수 있고 내 생각도 말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원희수군은 “온라인 수업에서 집중을 잘하는 저 자신이 신기하다”고 한다.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걱정했는데 선생님,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쉼 없이 얘기하다보니 집중이 잘된다는 것이다. 컴퓨터를 잘 안 썼던 김별하양은 온라인 수업이 부담스러웠는데 막상 해보니 좋단다. 별하양은 선생님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프로그램, 앱 등을 깔아 사용할 수 있었다.

실시간 쌍방향 소통의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기까지는 단계별 준비가 있었다. 혁신파크반 길잡이 교사 세 명은 2월부터 혹시 개학이 늦어질 걸 대비하며 온라인 교육 활동 준비에 나섰다.

“원격수업은 힘들지만 새로운 경험…논의·인프라 확대 기대”

준비과정에서 교사·학생 신뢰 쌓고,

활동 중심으로 참여도·집중도 높아

갈등 풀어가는 사회성 발달엔 한계

마침 김영선 교사가 지난해 구글 교육플랫폼 관련 연수를 받아 영어 수업에 적용해본 경험이 있었다. 길잡이 교사들은 화상회의, 공동 문서 작성 등 관련 도구들을 찾아 사용하며 적합한 툴을 정했다. 윤태호 교사는 “학생 수, 수업 구성과 방식 등 전환기 학교의 특성이 있어 온라인에서 스스로 배우는 힘을 기르고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들도 3월부터 온라인 독후활동을 하며 원격수업에 적응해갔다. 학교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온라인에 글을 썼다. 다른 친구들 글에 의견을 달기도 했다. 선생님들과 화상회의를 하면서 일대일로 화면 공유하는 법, 댓글 쓰는 법, 과제 제출하는 법 등을 익혔다. 전자칠판 ‘잼보드’를 활용해 온라인 수업에서 스스로 세워야 할 약속을 만드는 활동도 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휴대폰 멀리두기’ ‘인정과 공감을 해주기’ 등을 제안해 규칙으로 정했다. 올 한 해 학교생활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영상으로 찍어, 부모님들을 초대해 ‘온라인 출항식’에서 발표도 했다.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에 만족하면서도 등교 수업을 기다린다. 다성군은 “온라인 수업도 좋지만, 얼른 등교해 친구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희수군은 “음악이나 체육 수업은 피드백을 바로 받으며 안전하게 배우고 싶다”고 했다. 별하양은 “집에서 노트북 앞에만 앉아 있으니 체력이 많이 약해지는 것 같아 학교 가서 많이 걷고 움직이고 싶다”고 했다.

길잡이 교사들은 온라인 수업의 가능성을 보면서, 동시에 한계도 느낀다고 한다. 김영선 교사는 “온라인에서 공간 제약이 사라지면서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다발로 활용할 수 있고, 아이들이 자기를 표현하고 친구들의 공감을 받으며, 관계를 쌓아가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하지만 윤태호 교사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갈등을 겪고 풀어가는 과정에 사회성이 길러지는데 온라인에서 이런 과정이 일어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오디세이학교 교사들은 이번 원격수업이 교육 담론 확장에 기여함으로써 우리 교육이 도약 발전하는 기회가 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김 교사는 “원격수업은 새롭고 힘든 경험이지만, 교사들의 노하우와 콘텐츠가 많이 쌓여가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온라인 수업의 가치와 한계에 대한 논의와 필요한 인프라가 계속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친구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온라인 활동은 등교 수업에서도 이어가길 원했다.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신세대가 된 거 같고 자부심도 느껴진다’는 아이들도 있다. “제대로 될까 걱정을 많이 했던 온라인 수업을 해나가면서 아이들이 표현하는 언어들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어 신기하다”고 조 교사가 전했다. 실제 학기 첫 시간에 한 ‘한국인의 뇌 구조 그려보기’ 활동에서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한’의 민족, 빨리빨리, 돈, 입시, 경쟁 등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정’이 있는 민족, 코로나 극복, 자부심 등이 많이 나왔다.

이임순 오디세이학교 교감은 “지난해부터 정시 비중이 느는 등 대입제도에 변화가 생기면서 오디세이 지원자가 줄었는데 코로나 위기 이후 한 주에 한 명 정도 지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아이들의 미래와 교육에 깊이 고민하는 학부모들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교육원정대’를 자처하는 오디세이학교는 자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