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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착한 결제’, 나비처럼 날아서 전국으로 퍼졌다

코로나발 발견 ④ 지자체의 재발견

등록 : 2020-06-04 15:04 수정 : 2021-01-2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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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의 발빠른 정책 전국화 현상 눈길

양천구, ‘단골 가게에 선결제’ 모델 최초 제시…중소벤처기업부 등 받아

양천구 신정3동에 사는 이수미(왼쪽)씨가 5월28일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집 근처 단골 미용실 제이씨(JC)헤어에서 선결제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서울시가 주도한 ‘잠시 멈춤’, ‘사회적 거리두기’의 원형 돼

‘주민 가까이에서 발빠르게 움직이는’

지방정부의 특성 코로나 시대에 빛나

중앙-지방 협력 통해 위기 대응력 높여

“가게 하는 분들이 너무 어렵다고 하는데 도와주고 힘을 보태야죠. 어차피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이잖아요.”


양천구 신정3동에 사는 이수미(48)씨는 5월28일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집 근처 단골 미용실 제이씨(JC)헤어에서 선결제했다. 이씨는 “나와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미용실에 오는데, 10만원을 다 쓰고 나면 또 선결제를 하겠다”고 했다.

이씨가 선결제한 곳은 제이씨헤어뿐만이 아니다. 이씨는 자주 가는 동네 단골 식당 두 곳에 각각 20만원과 5만원, 세탁소 15만원, 서점 20만원 등 총 60만원을 선결제한 뒤 이용하고 있다.

“동네 가게가 문 닫게 되면 주민들이 불편해지죠. 가게가 운영돼야 주민들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잖아요.”

이씨는 동네 가게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양천구청이 시작한 착한 소비 운동에 동참하게 됐다. 그는 “제가 하는 선결제가 마중물이 돼 다른 사람들도 ‘나도 재난지원금으로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서 선결제가 널리 확산되면 좋겠다”고 했다.

제이씨헤어 주인 김윤화(46)씨는 최근 선결제 손님이 늘어나고 있다며 즐거워했다. 김씨는 “그동안 손님도 줄어들어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착한 소비 캠페인을 시작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5월 들어 매출이 회복세를 보인다고 했다. 김씨는 “3월과 4월 매출이 30%가량 줄어 너무 힘들었는데 점차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아 좋고, 선결제가 지역 경제 회복에 디딤돌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양천구 신정동에 사는 고춘화(오른쪽)씨가 5월28일 동네 ‘사러가마트’에서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생활용품을 사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신정동에 사는 고춘화(44)씨는 이날 동네의 ‘사러가마트’에서 생활용품을 샀다. 달걀 두 판, 방울토마토 세 팩, 튀김컵우동 두 상자, 김 네 팩, 커피믹스 두 팩을 산 뒤, 총 8만7800원을 카드로 결제했다. 곧바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했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왔다.

고씨는 양천구가 5월 중순부터 새롭게 진행하는 ‘긴급재난지원금 1+1’ 행사에 동참하고 있는데,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평소 필요한 생활용품을 하나 더 사서 이웃과 나누는 행사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고씨는 좀 전에 산 물건을 절반으로 나눈 뒤, 곧바로 같은 동네에 사는 조손가정을 방문했다. 고씨는 매달 한 차례씩 조손가정을 방문해 어르신 말벗도 되어주고 초등학생 손녀와 놀아주기도 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봉사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긴급재난지원금 1+1’ 행사에 참여를 겸해서 석 달 만에 다시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고씨는 “어떻게 보면 국가한테서 공짜로 ‘용돈’ 받은 건데, 이를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코로나19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지만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소비가 늘어나야 저희도 계속 장사할 수 있는데, 구청에서 이런 ‘1+1’ 행사를 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되죠.”

동네 마트 주인도 고씨 같은 손님이 반갑다. 사러가마트 주인 유재한(46)씨는 코로나19가 확산될 때는 매출이 많이 떨어졌지만 지금은 회복 추세에 있다고 했다. 유씨는 “2월 20%, 3월 30% 가까이 매출이 떨어졌다가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린 뒤로는 이전 매출 규모를 회복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정책자금 소비가 끝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조금 불안하다”고 했다.

양천구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돕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착한 소비 운동’을 시작했다.

착한 결제(선결제) 하기, 방문 포장 구매시 10% 가격 할인받기, 코로나 스트레스 착한 쇼핑(1+1 구매 뒤 나눔)으로 풀기 등 크게 세 가지로 이뤄졌다.

착한 결제는 평소 자주 찾는 동네 음식점 등 단골집에서 미리 일정 금액 이상을 결제하고,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미리 선불을 내고 나중에 이용하는 ‘선결제 후이용’인 셈이다. 최소 결제 금액은 3만원 이상 권장하고 있다. ‘착한 쇼핑’은 평소 사용하는 제품을 하나 더 사서 이웃과 나눠 사용하는 것이다. 양천구는 여기에 더해 5월 중순부터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1+1 행사를 하는 ‘마음 더하기 마음’ 착한 소비 운동도 시작했다.


양천구는 1차 착한 소비 참여 인증 행사에 이어, 6월 구민 대상으로 2차 참여 인증 행사를 시작했다. 착한 소비에 참여한 뒤 동주민센터를 방문해 3만원 이상 사용한 영수증을 제출하면 ‘코로나 블루(우울증)’ 극복을 위한 식물 키우기(에코팟) 용품을 준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전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다.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협력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고있다. 중앙정부에서 만든 정책을 지방정부가 이어받아 일방적으로 집행하던 관계를 벗어나, 이제는 지방정부가 만든 좋은 정책과 실험을 중앙정부가 이어받아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지방정부는 주민과 가까이 있어 그들이 뭘 원하는지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중앙정부보다 조직이 작아 쉽게 지역 상황에 맞는 새로운 정책을 실험할 수 있다. 또한 발 빠르게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는 이런 지방정부의 선제 조처 사례나 현장 목소리를 중앙정부가 빨리 받아들여 전국화하는 게 중요해졌다.

양천구의 ‘착한 소비’(선결제)는 이와 관련한 좋은 사례다. 양천구에서 시작한 착한 소비 운동은 중앙정부를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4월부터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중소·벤처기업 단체 등 경제단체들과 ‘착한 소비 선결제·선구매 대국민 운동(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중기부의 착한 소비(선결제)는 평소 자주 이용하는 동네 가게, 음식점, 카페 등에서 선결제하고 재방문을 약속하는 자발적 운동으로, 양천구의 ‘착한 소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속속 착한 소비에 참여하고 일반 기업들로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다.

지자체로는 경남, 경기, 인천, 대구 등에서 착한 소비를 시작했다. 정부 부처로는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국토교통부가 항공권 선결제로 착한 소비에 동참하고 있다. 일반기업으로는 이마트, 케이비(KB)금융 등이 착한 소비 운동에 동참했다. 대단한 ‘나비효과’인 셈이다.

지자체에서 시작한 정책을 중앙정부가 받아서 전국으로 확산한 사례는 또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1일부터 시범실시하는 전자출입명부는 성동구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모바일 전자명부’가 원조다. 성동구는 5월15일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이 높은 노래방·피시(PC)방 등 밀집 장소에서 본인인증을 위해 모바일 전자명부를 도입했다.

모바일 전자명부는 비접촉 방문관리 시스템으로 출입자가 업소를 방문할 때 근거리무선통신(NFC) 태그나 큐아르(QR)코드를 스캔해 정확하고 간편하게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태그나 스캔을 하면 스마트폰에 본인 이름과 이동전화번호 입력화면이 뜨고, 인증 뒤에는 발열상태, 호흡기질환 여부, 해외여행 경험, 증상 유무 등 확인을 거친다.

서울시가 제안한 정책이 전국으로 확산된 사례도 있다. 서울시의 ‘잠시 멈춤’ 캠페인이 ‘사회적 거리 두기’로 정부 정책에 반영된 게 대표적이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3월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최대한 외부 접촉을 줄이고, 기업들은 재택·유연근무를 하는 등 대외활동을 억제하는 생활방식을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를 접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월22일부터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했다.

‘착한 소비’의 원조인 양천구의 김수영 구청장은 “양천구에서 시작한 캠페인이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착한 소비’ 캠페인으로 확대됐다”며 “모두가 힘든 시간이지만다 함께 힘을 모은다면 위기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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