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빈곤 아동, 원격수업 받을 공간 자체도 없어”

코로나 여름이 유난히 힘든 주거취약 주택 아이들 ❷ 전염병 확산에 주건빈곤 아동 ‘출발선’ 더 뒤로 밀려

등록 : 2020-08-06 16:03 수정 : 2020-08-06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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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빈곤 속 아이들이 각자 ‘좋은 집’에 대한 의견을 보여줬다. “가족들이 함께 행복한 집” 그리고 “조금만 더 넓은 집”. 위생과 안전을 보장받고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공간. 결국 아이들 살고 싶은 집은 ‘기본권을 보장한 집’이었다.

“좋은 집이란 뭘까?” 아이들에게 물었다.

“창문이 10개 있는 집. 바람이 잘 통하는 집.” 30년 된 동작구 주택 반지하에 사는 정애(13)가 고민 끝에 내린 ‘좋은 집’에 대한 정의다. 정애는 여태껏 반지하를 벗어난 적 없다. “발 달린 지네와 왕거미, 쥐가 없는 집.” 10년 동안 서울 지하·반지하 방을 전전하다가 올해 1월 엄마 직장이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집을 옮긴 정재(10)의 말이다.

“내 방이 있는 집.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집.” 반지하 ‘쪼갠 방’에서 태어나 엄마와 4평 이하 단칸방만 전전하다가 5년 전 6평짜리 임대주택에 입주한 지윤(10)의 글이다. “아픈 엄마 대신 로봇이 일해 주는 집.”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만든 집.” 다가구주택 반지하에 사는 서현(12)과 다현(8) 자매도 상상 속에 지은 ‘좋은 집’을 그려 보였다.

또한 모든 아이가 입을 모았다. “가족들이 함께 행복한 집” 그리고 “조금만 더 넓은 집”. 위생과 안전을 보장받고 가족이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공간. 아이들 의견을 종합해보면 ‘좋은 집’이란 ‘인간으로서 응당 받아야 할 기본권을 보장한 집’이었다.


“비좁은 공간 10년, 머리가 멈추더라”

1인당 2.8평. 이는 지난 두 달 동안 서울에서 만난 주거 빈곤 속 아이들이 가진 공간 크기다. 6가구 주거면적 총합(220㎡)에 가구원 수(23명)를 단순히 나눴다. 정부가 정한 1인 가구 최저 주거면적 14㎡(약 4.2평)보다 좁다. 실상은 이보다 못했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가 방역지침인 계절, 아이들은 몸체를 줄이는 요령부터 익히고 있다.


정애 집은 잡다한 물건이 키만큼 쌓였다. 정애 엄마 김아무개(43)씨는 사업 부도를 맞은 남편과 급작스러운 사별 뒤 고1, 중2, 중1 아이 셋과 10평이 채 안 되는 반지하에 살아온 동안을 “머리가 멈춘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언젠가 필요할 거란 불안에 모든 물건을 쌓고 있어요. 전엔 정리와 요리를 잘해 살림꾼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올봄엔 갑자기 파김치와 오이소박이 담그는 법도 생각이 안 나요. 주변 도움으로 병원에 갔더니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란 진단이 나왔어요. 아이들 셋도 나란히 피부질환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그때 깨달았어요. 집이, 단순한 주거 그 이상일 수 있겠구나.”

‘이주’도 쉽지 않다. 6가구 보호자들 말을 종합하면 ‘집을 옮긴다는 건 삶을 뿌리째 옮긴다’는 뜻이다. 생활 반경 안에 ‘겨우’ 형성한 공교육·의료시설, 주민센터, 드림센터, 주거복지센터 등 삶의 거점을 비롯해 그물처럼 형성된 관계를 모두 옮겨야 하는데, 여기에 특정 병력으로 통원치료를 받는 아이들 병원이 포함된 경우 이주는 꿈의 일이 된다. 정애 엄마 김씨의 말이다.

6평 임대주택에서 엄마와 둘이 사는 지윤은 책을 좋아한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다. “ 속 유비가 좋아요. 마음이 넓고 백성을 지켜주며 싸우거든요.”

“심장천공과 자폐3급 진단을 받은 막내를 오랫동안 봐주신 의사 선생님들이 서울에, 가난한 집에서 홀로 노력해 체육특기생(국가대표상비군)으로 선발된 둘째 중학교도 모두 근방에 있어요. 제가 병을 앓아 기초수급에 의지하는 순간부터, 동 주민센터와 동작주거복지센터 담당자분들에겐 가족 이상으로 심리적 의존을 해요. 이 ‘인간적’ 신뢰관계도 너무 중요해요. 이걸 쌓는 데 10년 걸렸어요. 이주는 이 모든 걸 버리고 낯선 곳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건데, 결국 모든 고민 끝에 ‘애들이 성인 될 때까지만 버텨보자’로 결론이 나요.”


좁은 공간이 아이들 정서를 좀먹는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성인은 물론 아동에게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외국에선 거환경과 아이들 건강상태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선행해왔다. 미국 보스턴, 시카고, 샌안토니오 도시 저소득 가정 아동과 청소년 2400명을 대상으로 6년 동안 실시했던 맥아더재단(MacArthur Foundation)의 연구가 한 예다.

재단이 2011년 내놓은 ‘열악한 주거환경이 아동들의 정서적, 행동적 문제에 영향을 끼친다’(Poor Quality Housing is Tied to Children's Emotional and Behavioral Problems)를 보면 아동 건강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거환경의 질’을 꼽는다. 비주택 등 열악한 집에 사는 가정의 경우 부모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을 확률이 높으며, 이는 자녀에게 영향을 끼쳐 우울증, 불안증, 거짓말과 공격성 등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분석이다.

이는 앞서 방문한 6가구 아이들이 겪는 공통적 문제와도 맞닿는다. 아이들 13명 모두 호흡기질환을 앓은 적 있고, 그 가운데 5명이 학교와 자치구·복지단체가 한 정신분석감정에서 ‘우울감’ ‘분리불안’ ‘지적장애’ 같은 증상을 하나 또는 두 개씩 보였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좌절 않도록 사회 모든 역량 집중해야”


피부질환과 우울감 달고 사는 아이들

해비타트 ‘새집 지어주기’ 선발 소식에

얼굴에는 금세 웃음, 빠른 호전세 보여

“사회적 고립 막을 대안공간 논의 필요”


국제비영리단체(INPO) 해비타트에서 2015년 시행한 ‘입주가정 영향 연구’(Homeowner Impact Study)는 1989년부터 2014년 사이 미네소타 해비타트의 도움으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402가구를 연구한 보고서다. 연구에 의하면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아동은 아동·청소년기에 뇌수막염, 천식, 발달장애 등 질병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최대 25%에 달한다. 특히 ‘과밀 주거환경’에서 자란 아동은 65~75살에 질병에 걸릴 확률이 일반 성인보다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최소 주거권을 만족시킨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가구는 보건, 안전, 교육·자신감, 경제, 지역사회 화합, 만족도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입주가정 아동의 50% 이상이 학업 성취도가 상승했고 90%는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해비타트 송신혜 팀장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인간에게 정신적·육체적 부분까지 영향을 끼치는 현장을 수시로 본다”며 “예로 ‘새집 지어주기’ 대상에 선발됐다’는 소식만으로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돌고 우울감 등에서 빠른 호전을 보이는 경우가 그렇다. 인간 기본권 중 하나가 ‘주거’인데, 아이들에게 집이 주는 영향을 다각도로 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창문이 많아 바람이 통하는 집.” 정애가 그렸다.


코로나 이후 ‘아동 주거권’에 대하여

현장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양을 늘리고, 가구별로 다양한 사례에 맞춘 입주 기준 완화가 삶에 구체적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동작구 서현(12) 아빠 박아무개(45)씨는 “부부가 급작스러운 중증질환에 시달리며 일하지 못하게 됐다. 아이 셋 감당이 힘겨워 임대주택 신청을 했는데 여전히 대출 상환 중인 30년 된 낡은 빌라가 ‘자가’란 이유, 또한 고지대에 있는 집에서 아이들 양육에 필수인 1200㏄ 자가용이 ‘월수입’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입주가 힘들다. 좀더 현실적이고 세심한 기준이 절실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긴급돌봄’ 형평성을 고민하고, 돌봄에서 오는 또 다른 차별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박민자 영등포구 선유지역아동센터 원장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구에서 발 빠르게 지원해준 긴급지원비가 가뭄의 단비였다”며 아동 돌봄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촉구했다.

“서울시 긴급돌봄, 키움센터 등 돌봄시스템에 정서상·경제적 이유로 배제된 빈곤 아동들은 자가격리 때 갈 곳이 없어 밥을 굶었어요. 그래서 상반기에 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직접 밥 배달을 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가 비상상황에선 적어도 아이들 돌봄에 차별이 없도록 아동기관에 대한 관심이 절실합니다.”

“책으로 만든 집.” 다현이 그렸다. 주거빈곤 속 아이들 6명이 정의한 ‘좋은 집’은 삶의 ‘기본권’과 맞닿는다.

유다은 이화여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코로나19 등 감염병을 이유로 빈곤 아동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는 대안공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당장 이주를 권유하거나 주거면적을 늘려주는 건 현실적 집행에 한계가 있다. 집과 가정의 의미를 확장해 봐야 한다. 부모 능력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쉴 수 있는 공유·대안공간 면적을 차차 넓혀주는 논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아동기 질병이 남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문제다. 주거는 아동의 정신·육체 건강, 안전, 교육과 소득 등 미래와 장기적 영향을 갖는다.

물론 서울시 등에서는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에선 위기 가구 지원사업의 하나로 아동주거빈곤가구를 대상으로 매입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저소득층과 주거취약가구를 위해 주거비를 비롯해 생계비와 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사업 중 하나다. 각 자치구 주민센터나 주거복지센터에서 상담이 가능하다. 그러나 코로나로 주거빈곤주택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난 이때, 아동 주거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을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최은영 도시연구소장은 “열악한 환경으로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고, 이는 학령기 아동의 잦은 결석으로 이어진다. 건강 문제는 학업 성취나 아동 발달과도 직접 연결된다”며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는데, 단칸방 등 주거빈곤 아동은 원격수업을 받을 수 있는 공간 자체를 확보하지 못한다. 공부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가 제공했던 학습 기회도 빼앗길 위기에 놓인다”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인생을 시작하는 모든 아이가 처음부터 좌절하지 않도록 아이들 주거빈곤 문제 해결에 우리 사회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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