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위기 대응 긴급임시주택 늘려야”

지역 단위 홈리스 예방책으로 SH공사-자치구 협력 모델 추진

등록 : 2020-08-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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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6명과 거리로 나앉을 뻔한 김씨

6개월 머물며 살 집 찾도록 지원받아

SH가 매입임대주택을 구에 제공하고

구는 ‘임대료 부담·이주 지원’하는 모델

“노숙인 예방 위한 촘촘 안전망 역할”

긴급임시주택은 갑작스럽게 퇴거 위기에 처한 가구를 위한 임시 주거시설로 지역 단위의 촘촘한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진은 금천주거복지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긴급임시주택을 지역 봉사단이 수리하는 모습.

성북구 장위동에 사는 김태일(50)씨는 지난해 아이들과 길바닥에 나앉을 상황에 처했던 것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시울이 절로 붉어진다. 아내의 친척 집 바깥채에 얹혀살았는데 더는 버틸 수 없게 됐다. 2년 전 아내가 가출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다. 생명의 전화가 떠올라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김씨는 여섯 자녀를 둔 한부모 가장이다. 홀로 초등생 다섯째와 유치원 막내를 돌보면서 달걀 장사를 이어왔다. 지난가을 성북 주거복지센터에서 연결해준 방 2칸짜리 긴급임시주택으로 이사했다. 6개월 정도 아이들과 살 집이 생겼다. 김씨는 “정말 막막했는데, 이삿날 눈물이 절로 났어요.”


긴급임시주택에 사는 동안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매입임대주택(58㎡)을 신청해 선정됐다. 보증금을 마련하는 데도 여러 기관이 도움을 줬다. 대출도 받아 올해 3월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사했다. 그는 “코로나로 장사가 안되고 대출이자도 걱정이지만,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하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서울의 일부 자치구와 지역 주거복지센터에서는 김씨처럼 갑작스럽게 퇴거 위기에 처한 가구를 위해 임시 주거시설을 제공한다. 긴급지원주택, 임시거처, 디딤돌주택 등으로도 불린다. 긴급복지지원법, 재해구호법 등 법률에 따라 제공하는 임시거처도 있지만, 고시텔과 같이 아이들과 지내기 어려운 곳이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소득 등 요건을 갖춰야 한다. 가족 단위로 지낼 수 있는 시설은 찾기 어렵다.

송아영 가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코로나 위기로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면 주거 불안정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아동 등 다인 가구의 주거 상실에 대한 하나의 대응책으로 긴급임시주택이 지역에 적절한 수준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지난 5월에 낸 긴급임시주택 관련 연구보고서에서 현재 운영 중인 긴급임시주택의 주거환경이 부적절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2016년부터 지역 주거복지지원센터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무상으로 받은 장기미임대주택은 대부분 반지하에 습기 등의 문제로 수리비, 유지보수비가 적지 않게 들고 있다.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이 들기도 한다. 지역 주거복지지원센터에서는 재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LH공사는 법적 근거가 없어 수리비 지급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울에는 약 40호의 긴급임시주택이 있다. 송 교수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자치구 8곳에 대개 한두 호가 있다. 예외적으로 관악구와 마포구엔 13호가 있다. 관악구는 지역 특성을 반영해 구와 관악주거복지지원센터가 협업해 운영한다. 마포구는 유동균 구청장의 공약사업 ‘MH마포하우징’의 하나로 13호를 직접 운영한다. LH의 장기미임대주택 4호를 무상으로 받아 수리했고, SH의 도시형 원룸주택 9호는 유상으로 빌렸다.

최근 SH공사 주거복지본부는 자치구와 협력해 긴급임시주택을 늘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퇴거위기 가구가 느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SH공사가 적정한 수준의 매입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자치구가 임대료(시세 30% 수준)를 내며 운영하는 방식을 협의하고 있다.

구로구, 서대문구 등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구로구는 9월 중순 SH공사와 협약을 맺고 연내 5~10호를 공급받아 추진할 예정이다. 구는 기존 임시거처 4~5호를 운영하는데 추가적인 주택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서대문구는 임대료 관련 예산을 확보해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주거복지 현장에서는 SH공사의 제안이 제대로 된 긴급임시주택을 마련하는 기반이 되길 기대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김선미 성북 주거복지센터장은 “긴급임시주택의 취지를 살리려면 대상자 선정, 거주 기간 등에 대한 열린 접근이 중요하다”고 했다. 위기 가구가 공공임대주택과 같은 안정적인 주거로 옮겨갈 수 있도록 하는 집중적 서비스 제공도 강조했다.

SH공사 매입임대주택으로 조성된 긴급임시주택의 대상자 선정, 거주 기간 등은 자치구가 자율적으로 정한다. 거주 기간은 6개월을 기본으로, 1회 연장해 최장 1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종균 SH공사 주거복지처장은 “긴급임시주택은 아동이 있는 가구에 우선으로 제공하며, 소득제한은 둘 수 있겠지만 엄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SH공사는 매입임대주택으로 자치구별 긴급임시주택 5~10호 제공을 목표로 한다. 자치구들의 긴급복지서비스 대상자를 파악해보니 긴급임시주택에 대해 그만큼 수요가 있는 걸 확인했다. 다만 매입임대주택의 재고 물량이 적은 도심권은 어려워 보인다. 서종균 주거복지처장은 “지역 단위의 노숙인 예방 대책으로 촘촘한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어, 위기 가구에 대한 행정의 대응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긴급임시주택 사업이 서울시 정책으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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