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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숭인’ 도시재생, 주민의 주체적 노력 힘입어 날아올랐다

국내 1호 도시재생지역 ‘창신·숭인’의 성공 비결

등록 : 2020-11-05 15:38 수정 : 2020-11-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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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타운 지정 뒤 주민들 스스로 해제

14년 전국 첫 도시재생 선도지역 선정


재생의 힘으로 봉제산업 다시 활기

패션 전공 대학생, 스타트업 업주 모여

‘북적북적’…패션산업 1번지로 떠올라

지역재생기업도 1호 설립…일자리 창출



국내 1호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어딜까.

종로구 창신 숭인동 일대는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이 낯설던 2014년 전국에서 처음 도시재생을 시작했다.

원래 이 일대는 조선시대 수도인 한성의 낙산 자락에 있는 성 밖 마을이었다. 예로부터 물이 맑고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시대 문신의 별장지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평화롭던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한 차례 시련을 맞는다. 서울에 석조건물을 세우려던 일제에 의해 채석장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광복 이후 채석장 사용은 중단됐고,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서울로 상경한 이주민과 피란민이 이곳 채석장 일대로 모여들면서 마을을 이뤘다. 오늘날 창신·숭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게 이 무렵부터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 일대에도 변화의 바람이 인다. 2007년 뉴타운으로 지정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최초로 주민 스스로 뉴타운 지정을 반대한 결과 종국에 뉴타운 지정에서 해제된다. 2014년에도 전국 최초로 도시재생지역으로 지정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지역주민이 지역의 역사·문화와 터전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존하면서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주거 중심 아파트 건립 개발사업을 서둘러 진행하기보다는 지역의 역사·문화자산에 경쟁력을 더해 재생 자원으로 활용하는 데 방점을 뒀다.

구체적으로 창신·숭인 일대는 봉제산업 보존·활성화(산업재생) 역사·문화 자산의 지역 자원화(문화재생) 정주 여건 개선 지역 맞춤형 특화 프로그램 도시재생기업(CRC) 등을 통한 다각적인 도시재생의 변화·발전을 거듭해왔다.

실제로 ‘지역 자산을 활용해 지역 경제 생태계를 일군다’는 도시재생의 애초 목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사례도 발견된다. 오랫동안 지역 경제를 이끌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한 지역 산업을 방치하지 않고 다시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기존 지역 거점 사업 활성화를 위한 맞춤형 산업재생사업이 그것이다. 한 예로 창신·숭인 일대는 1980년대만 해도 3천여 개 봉제사업체가 있던 `국내 봉제산업 1번지’였다. 2000년대 들어 1100여 개로 크게 줄었지만 지난 도시재생사업을 계기로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8년 개관한 문화공간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주민 제안으로 설립된 이곳에서는 창신동 봉제장인과 청년 디자이너, 패션 전공 대학생 등이 함께 참여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돼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 문화공간 덕분에 젊은 디자이너들이 패션 스타트업 창업을 위해 관련 교육을 받으러 창신동을 찾고 있다”며 “현장에서 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들이 찾아와 지역 봉제공장과 협업으로 옷을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전경

전국 1호 도시재생기업이 설립된 곳도 바로 이 일대다. 2017년 창신동과 숭인동 주민이 모여 도시재생기업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조합 운영은 모두 창신동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터줏대감들이 맡았다. 여기서 도시재생기업은, 이름 그대로 일종의 도시재생 관련 마을기업을 말한다. 도시재생사업 과정에서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설립된 ‘법인’(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이 지역 자원을 결합·활용해 지역의 재생 활동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 내 일자리·수익 창출을 독려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류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CRC는 일종의 도시재생 마을기업으로 주민 스스로 지역 자산을 발굴하고 운영·관리하는 지역 자생의 필수요소”라고 설명하고 “공공이 마중물사업 등을 통한 지원을 마치면 주민 스스로가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다시 지역사회에 재투자해 도시재생을 진화·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창신·숭인 일대는 이런 도시재생기업이 중심이 돼 마을 자산을 도시재생에 활용한 결과 내실 있는 성과를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한 거점 시설을 늘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 2015년 주민 의견에 따라 문화공간 ‘창신 소통 공작소’가 준공돼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동별로 조성된 공동이용시설 4곳에서는 외국인 거주 비율이 약 8%인 이 지역 특성을 고려해 다문화 가구 등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내부 모습

이 밖에도 과거 일제강점기 채석장으로 활용됐던 절개지 위에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쉼터 ‘채석장 전망대’가 들어섰다. 전망대 내부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서울 시내를 볼 수 있도록 정면이 통유리창으로 시원하게 나 있어 인근 지역에서도 찾는 이가 많다고 한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가 살던 집터에 세워진 백남준기념관도 알고 보면 지역주민 작품이다. 과거 버려져 있던 이곳을 주민들이 “이 지역의 자랑인 백남준이 살았던 곳”이라며 서울시에 알린 게 시작이다. 이후 서울시가 집터에 있던 한옥을 사들인 뒤 리모델링해 2017년 기념관으로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다.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은 백남준기념관의 마을카페 운영과 도시재생 전문가 교육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내는 중이다. 지역주민이 직접 ‘도슨트’(박물관 등에서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로 활동하는 식으로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한다.

백남준기념관

‘도시재생 초기 투자는 행정이 담당하지만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주민 몫’이라는 말처럼 자생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창신·숭인 일대 도시재생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데에는 적극적인 주민 참여가 있었다.

단순히 도시재생의 긍정적인 성과 이외에도 지역사회에 귀감이 되는 훈훈한 일도 많다.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뉴타운 재개발을 막아낸 주민들은 어려운 시기마다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선다.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에서는 지난 3월 직접 제작한 마스크 400장을 종로구에 전달했다. 주민조합원 중 봉제업에 종사하는 봉제장인들이 돌봄 이웃, 구매가 어려운 어르신 등을 위해 면 마스크를 손수 만들어 기부 의사를 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류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이처럼 도시재생의 핵심적인 성과는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자신이 사는 마을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기여하는 과정 그 자체”라며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주민공간임과 동시에 도시재생기업은 지역 자생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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