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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마중물’ 된 강동구 빵집 4곳의 꾸러미 ‘치얼-업’

서울&-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동기획 ‘이웃이 경제다’ ① 각자도생에서 상생으로…동네 빵집들의 공동 빵 구독 서비스

등록 : 2020-12-31 10:42 수정 : 2021-01-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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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과 사회적 경제 협업 “시도하는 경험 자체로 의미 있었다”

강동 등 18곳에서 80개 협업체 꾸려

공동 판매·마케팅·배송·제품개발 등

“협업 돕는 역할, 전문적인 자문 필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불평등, 양극화 현상은 더 심해졌다. ‘기업과 가계가 시장을 통해 생산과 소비 규모를 늘릴수록 경제는 성장하고, 모든 경제 주체에게 돌아가는 이익도 늘어난다’는 기존 시각의 한계를 확인했다. 경제를 보는 시각을보다 넓게 바꿔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지역 안에서 이웃을 주요 경제 단위로 끌어내는 새로운 경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지원하는 실험 현장을 4회 소개하고, 좌담회를 열어 서울의 이웃 경제로 나가는 길을 모색하고 정책 제언을 해본다.

편집자

12월20일 저녁 강동구 성내동 ‘호텔베이커리’ 매장에 동네 빵집 사장 4명이 모여 ‘치얼-업’ 꾸러미 제품을 상자에 담고 있다. 이들은 최근 동네 빵집의 공동 빵 구독 서비스 운영을 위한 협업 프로젝트를 했다. 2주간의 꾸러미 크라우드펀딩에서 목표 달성률 300%를 기록하며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는 소상공인과 사회적 경제 협업사업으로 진행됐다. 왼쪽부터 하에레츠의 구재정, 35커피의 이경실, 호텔베이커리의 이영동, 엘리스 스푼 컵케익의 엄홍근 사장.

지난 12월20일 저녁 강동구 성내동 ‘호텔베이커리’의 세 평 남짓 매장에 빵집 사장 4명이 모였다. 이들은 최근 동네 빵집의 공동 빵 구독 서비스 운영을 위한 테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생도너츠, 피자빵, 앙버터롤, 생크림롤, 호두파이, 치즈 브리오슈, 시폰 케이크, 마카롱 등 각자 자신 있는 제품을 모아세 종류 꾸러미를 만들었다. 식빵류, 케이크류, 디저트류 등 종류를 다양하게 구성했다. 꾸러미 이름은 서로를 응원하는 뜻에서 ‘치얼-업 베이커리’로 지었다. 꾸러미로 2주간 진행한 크라우드펀딩은 목표 달성률 300%를 기록하며 성공했다.


엄홍근(53)씨는 30년 넘게 빵 만드는 일을 해왔다. 암사시장 근처에서 5평의 작은 빵집 ‘엘리스 스푼 컵케익’을 7년째 운영하고있다.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들어서면서 가격을 낮춰 팔 수밖에 없다 보니 온라인 배달 판매는 엄두도 못 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30%가량 줄었단다. 엄씨는 “협업사업을 한다고 해 처음엔 반신반의하다가, 동네 이웃들과 같이하는 거니 참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취지가 좋다는 것만 알고, 이런 일을 처음 해봐서 지금은 따라가는 입장”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경실(35)씨는 2020년 초 남편이 3년째 운영하던 베이커리카페 ‘35커피’를 맡았다. 그는 “크라우드펀딩에서 받은 거로 가겟세를 겨우 냈다”고 말한다. 그의 가게도 코로나19 장기화로 타격을 많이 받았다. 매출이 80%가량 줄었다. 이씨는 “혼자가 아닌 이웃들과 도움을 받으며 할 수 있어 용기를 냈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려운 시기에 공동 구독 서비스 사업이 보탬이 될 것 같아, 우선 해보는 데까지 하려 한다”고 했다.

구재정(49)씨는 20년째 제빵 일을 해오며 현재 암사동에서 ‘하에레츠’ 빵집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빵 가게에 밀리는 가운데 기술 개발, 판로 등에서 혼자 하는 건 한계가 있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웃들과 의논하며 길을 함께 찾아보고 싶어 참여했다. 구씨는 “공동 구독 서비스를 위한 꾸러미는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앞으로 구매자들이 만족하고 재구매할 수 있게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구씨의 빵집은 천연발효종을 쓰는 건강빵이 유명한 빵집이다. 지상파 방송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같이하려는 이유로 그는 “어떤 업종이든 영원히 잘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대형 프랜차이즈에 대항하며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상생할 수밖에 없다. 함께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영동(61)씨는 구씨와 함께 2017년부터 동네 빵집 협동조합을 고민해왔다. 그는 40년 가까이 제빵사로 일했다. 그의 빵집 ‘호텔 베이커리’는 24년째 한자리를 지켜왔다. 동네 빵집 10여 곳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동네 빵집들이 거의 없어지다 보니 이전에 있었던 기술 공유 자리도 사라졌다. 이씨는 “혼자 일하다 보니 교육받으러 가기 어렵다”며 “기술이 자꾸 뒤떨어지고 발전이 안되는 것 같아 힘들다”고 했다. “혼자 해봐야 너무 힘들고 매출은 안 나오고, 서로 힘 모으는 게 살길이라 이웃들과 함께 부딪혀 보려한다”고 덧붙였다.

꾸러미 포장은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려가는 어르신들이 맡았다. 폐지 수거 노인들의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내는 예비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과 협력해 어르신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했다. 강동구 당일 배송은 서울시플랫폼라이더협의회와 연계해 진행했다. 구재정씨는 “우리가 협업해 공동 구독 서비스로 잘 발전해나가면 어려운 어르신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며 “모두에게 그리고 지속해서 도움이 되게 해보고 싶다”고 했다.


12월22일 오후 마포구 연남동 끝자락길 친환경 소품숍 ‘유민얼랏’에서 강유민 사장(왼쪽)이 이웃 꽃가게 ‘플라워에이블’ 설해냄 사장(오른쪽)과 함께 손님에게 공동 홍보물 스탬프 이용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강동구 빵집의 꾸러미 프로젝트는 서울시·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소상공인과 사회적 경제 협업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었다. 소상공인과 사회적 경제 협업사업은 연대와 협력으로 상생하는 골목 경제 기틀 마련을 지원한다. 2020년 하반기에 시작해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 골목상권 소상공인 500여 명이 참여해 약 80개의 협업체를 꾸려 자치구 18곳에서 활동해왔다. 공동 판매·마케팅·배송·제품 개발 등 다양한 협업이 시도됐다. 협업을 지원할 광역지원기관과 13개 지역지원기관이 참여했다. 강동구 지원기관은 사회적협동조합 함께강동이 맡았다.

주택가 골목길의 20~30대 사장들도 협업체를 꾸렸다.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숲길 끝자락(성미산로17길) 골목 가게 사장들은 지난 세밑에 공동 홍보에 나섰다. 꽃집, 친환경 소품숍, 패브릭 공방, 빈티지 소품숍, 베이커리카페, 욕실용 패브릭 전문숍 등 8곳의 가게 정보와 지도를 실은 홍보물에 스탬프 찍기를 넣었다. 협력체 가게들을 이용해 도장을 3번 찍으면 휴대용 친환경 나무 수저 선물을 준다. 이 협업은 마포구고용복지지원센터가 지원한다.

꽃집 ‘플라워에이블’을 2년째 운영하는 설해냄씨는 “워낙 외진 골목이라 여기까지 손님 발길을 끌기가 쉽지 않은데, 게스트하우스 등에 홍보물을 두면 이용자가 좀 늘 것 같다”고 기대했다. 그는 코로나19로 거의 ‘멘붕’에 빠졌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행사, 시상식, 졸업식 등이 줄줄이 취소되고 강좌도 중단돼 매출이 급감했다. 정부 지원금과 대출로 겨우 버텨왔다. “사실 그간 3차 지원금만 기다리고 있어 때론 각설이 신세가 된 느낌마저 들어 무기력해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들어 온라인 꽃 배달과 비대면 강좌가 조금씩 늘어 숨통이 좀 트이고 있다. 여기에 공동 홍보 협업사업도 도움이 될 거라 기대했다.

끝자락길 가게 젊은 사장들이 전에도 협력 사업을 해보자는 얘기는 했지만, 다들 상황이 어렵다 보니 실행은 못 했단다. 친환경 소품숍 ‘유민얼랏’의 강유민씨는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공동의 목표로 모인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온·오프라인 공동 판매도 같이 해봤으면 한다”고 했다.

강씨는 코로나19 1차 유행 뒤 개업했다. 주위의 우려에도 환경 관련한 일이라 지금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거의 모든 소상공인처럼 대출로 버티고 있고, 무기력하게 있을 수 없어 온라인 사업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마무리되면 더 많이 참여해 더 재밌게, 다채롭게 협업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동네 반찬가게들과 한의원이 손잡고 만성질환자를 위한 메뉴를 개발한 협업체도 있다. 성북구 석관동 우리마을한의원은 성북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성북의료사협)이 운영하는 곳이다. 작은 규모라 우리마을 한의원 역시 소상공인이다. 동네 반찬가게 5곳은 한의원, 한살림서울 식생활교육센터의 영양사와 조리사 등과 함께 12종의 건강식 메뉴 개발과 조리법 개선을 했다.

건강 반찬 시제품들은 만성질환을 앓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시범배송이 이뤄졌다. 지난 12월 30명에게 3차례 나눠 배송했다. 배송은 성북구 한천마을 주민배송단이 맡았고, 배송료는 반찬가게 이용 쿠폰으로 줬다. 협업체는 만족도와 구매 의향 조사 결과를 정리해 향후 사업 추진에 반영한다. 정윤주 성북의료사협 사무국장은 “협업의 씨앗을 뿌린 셈이고, 향후 상호 거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750여 명의 조합원이 건강한 반찬을 만드는 가게들을 이용할 수 있게 많이 알리려 한다”고 덧붙였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은 “협업을 시도하는 경험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도움을 주는 코디네이터와 시범 사업비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대부분의 동네 가게 사장들은 마케팅, 홍보, 제품 개발, 배송 등 협업 필요성을 느낀다. 하지만 소상공인 혼자 또는 부부가 운영하다 보니, 시간도 마음도 내기가 쉽지 않다. 마음을 내더라도 협업의 경험이 없다 보니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협업을 지원한 코디네이터들은 공동 판매망·배송망 구축 등 전문적인 자문 필요성을 언급했다.

조주연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이번 협업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골목상권의 지역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살리며, 연대와 협력으로 소상공인이 상생할 수 있는 지원과 뒷받침을 해나갈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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