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기술학교에서 배운 생활기술로 봉사도 하고 사업도 모색”

서울&-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공동기획 ‘이웃이 경제다’ ② 소비 넘어 공동 생산…돌봄서비스 공급자로 첫발

등록 : 2021-01-07 16:54 수정 : 2021-01-0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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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전환기 맞은 중장년층 주민들

도시락 만들기, 집수리·방역 등 배워

실습 겸 봉사, 일 경험하며 보람 느껴

뜻 맞는 동기들과 협동조합 모색도


2019년 자치구 4곳, 지난해 21곳 교육

주거·돌봄 관리, 미디어·홍보 등 분야

사업 목표와 현실 사이에 차이 있어


“주민 참여 이어지게 장기 관점 필요”

주민기술학교는 주민이 기술교육을 받아 사회서비스 사업에 참여하며, 지역의 경제주체로 나아갈 수 있게 서울시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마포구 주민기술학교는 마포구사 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가 2년간 진행해왔다. 사진은 2020년 주민기술학교 교육 모습. 11월 집수리 교육.

“아빠, 집수리 주민기술학교 한번 가 보실래요?”

2019년 늦여름 마포구에 사는 진병웅(57)씨는 딸의 전화에 귀가 솔깃했다. 그는 20년 넘게 중국에서 사업하다 한 해 전 서울로 돌아와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전력공사에서 10여 년 일한 경험은 있지만, 이후 벌인 사업에서는 몸보다 말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귀국 뒤 이런저런 기술을 배우려 알아보던 참이라, 주저 없이 참가신청을 했다.

2020년 2월 희망퇴직한 김윤애(46)씨는 한때 직장 선배였던 이웃과 함께 지난여름 마포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를 찾았다. 20년 넘게 유통업종의 관리 직군에서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일했던 그는 경력이 쌓일수록 업무 부담이 커지면서 잠 못 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간 틈틈이 해외봉사와 헌혈봉사를 해온 그는 제2의 삶은 지역에서 이웃도 도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센터의 나눔 도시락 만들기 주민기술학교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했다.

주민기술학교는 주민이 기술교육을 받아 사회서비스 사업에 참여하며, 지역의 경제 주체로 나아갈 수 있게 서울시가 지원하는 사업이다. 2019년 4개 자치구에서 시작해 지난해엔 21개 자치구, 29곳의 주민기술학교가 열렸다. 분야는 주거 관리(수리, 방역 등), 돌봄 관리(식생활, 정서 등) 등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사회서비스 수요다. 여느 직업 교육이나 강좌와 달리 교육을 마친 뒤, 지역 활동을 하며 지역관리기업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포구 주민기술학교는 마포구사회적경제통합지원센터가 2년간 진행했다. 그간 지역 활동에 관심 있는 주민 100여 명이 참여했다. 첫해 집수리로 시작해, 두 번째 해엔 도시락 만들기와 방역·소독 과정이 추가됐다. 홍진주 센터장은 “주민들이 같이 배워 함께 해볼 수 있는 지역 참여의 장이 되고 있다”며 “10여 년간 해본 여러 주민 대상 사업 가운데 참여자 만족도가 매우 높은 사업이다”라고 했다. “여러 참여자가 ‘나도 지역에서 뭔가 활동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고 어려운 이웃에 보탬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고 했다”고 홍 센터장이 전했다.

지역을 연계한 현장형 교육과 실습을 병행하는 것이 주민기술학교의 특징이다. 집수리 교육 과정에는 마포 지역의 함께주택협동조합이 참여해 공유주택 건립 예정지에서 전기, 방충망, 주방, 욕실, 문 수리 등 현장 기술교육을 했다. 고령자친화무장애협동조합은 노인 안전, 안전판, 손잡이 설치 등을 강의하고 현장 실습을 진행했다.

소독·방역 과정에서도 백의민족, 마포구립장애인직업재활센터, 함께하는행복한돌봄 등 지역의 사회적 경제 기업이 함께했다. 도시락 만들기 1기 과정은 친환경 음식으로 케이터링 서비스를 하는 지역기업 ‘오색오미’가 진행했다.

진병웅씨는 “강사와 같이 지역 현장에 가서 일하며 배워 빨리 감을 익힐 수 있었다”고 했다. 실제 타일, 벽지 등 여러 자재를 직접 다뤄볼 수 있었던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김윤애씨는 “건강한 밥상과 다회용기를 쓰는 친환경 도시락 사업을 하는 곳을 알게 돼 좋은 네트워크가 생긴 것 같다”며 “지역의 사회적 경제 기업이나 단체들과 연계해 교육이 이뤄져, 지역 활동을 이어갈 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들은 실습을 겸한 봉사를 하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진씨는 “저의 작은 도움으로 어려운 이웃의 삶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는 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집수리 교육을 받은 뒤 수료생들과 홀몸노인 집을 10여 곳 찾아 도배하고 장판을 깔아줬다. 때로는 방풍 비닐을 다시 붙이고, 문 새시를 손 봐주는 등 예정에 없던 작업을 더 하기도 했다. 진씨는 “처음 갈 때는 제가 베푼다는 생각이었는데, 어르신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얻은 보람이 더 컸다”고 했다.

김씨는 돌봄SOS센터와 복지관의 도시락을 만드는 자활센터와 단체급식 식당에서 하루씩 실습하며 봉사했다. 제한된 시간에 도시락을 만드는 경험은 현장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됐다. “2시간 동안 100여 개를 만들어야해 긴장하며 집중해야 했는데, 도시락이 어려운 이웃의 식사가 된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번 겨울에 도시락을 만들어 배송하는 봉사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9월 도시락 만들기 교육.

주민기술학교 사업 설계는 교육 참여 주민 가운데 교육 뒤 뜻 맞는 이들이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을 만들어 지역관리기업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으로 그려졌다. 서울시는 3년 정도 지원을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주민들이 활동을 이어가는 데는 과제가 적잖은 상황이다.

진병웅씨의 경우, 지난해부터 집수리 교육 수료생들끼리 협동조합을 해보자고 얘기는 오갔다. 협동조합은 집수리만이 아니라 홈케어, 방역, 도시락 만들기와 배달 등 전반적인 걸 아울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이웃과 나누는 마음이 있는 조합원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현재 한 명과는 마음을 맞췄다. 그는 “첫걸음을 뗐고 하나씩 만들어가며 천천히 진행하려 한다”고 했다.

김윤애씨는 도시락 배달사업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요양, 영업, 행정 등 경험이 다양한 수강생들과 뜻이 맞아 함께하면 시너지가 날 거라 기대한다. 그는 “다양한 경험이 있는 이웃이 여럿 함께하며 리스크는 나누고, 가능성은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자신의 40대 이후의 일과 삶을 동네에서 이웃과 함께 경제활동을 하며 펼쳐갈 수 있을지 살펴보고 있다. “이전에 해외봉사 하면서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요즘 그는 이웃들과 만나고,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즐겁다. 처음으로 동네 시장도 가봤다. “나의 안전망은 이웃과 더불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는 말했다.

홍진주 센터장은 “주민들이 참여하고 이어가는 연속성 있는 사업이 되게 장기적인 관점으로 주민기술학교 사업이 운영됐으면 한다”고 했다. “특히 돌봄서비스는 융합적 사업이므로 지역의 확장 거버넌스를 구축하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올해도 주민기술학교 지원 사업은 이어지는데, 예산에 변화가 있다. 지난해 예산은 본 예산에 추경 예산이 더해졌는데, 올해 예산은 지난해 본예산 수준으로만 잡혔다. 현장에선 주민기술학교를 시작한 자치구 21곳의 사업이 이어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지난 12월31일 <서울&>과 한 통화에서 고광현 서울시 사회적경제담당관은 “지난 2년 동안 만들어진 주민기술학교들이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예산을 적극적으로 확보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11월 방역·소독 교육 실습.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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