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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는 없지만 주민 생활 속 뿌리내린 ‘다리 밑 공간’

등록 : 2021-03-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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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유안 기자의 서울시 ‘고가 하부 공간’ 탐방

‘서울 총 183곳, 150만㎡’ 화려한 변신 준비 중

음습하고 어두웠던 ‘서울 다리 밑 기억’을 바꾸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성동구 옥수 고가 하부에 마련한 문화 공간 ‘다락옥수’ 뒤편 광장에서 주민들이 생활 무용을 연습하는 모습.(위 사진) 성북구 종암사거리 고가 하부에 들어선 문화 공간 ‘분절된 광장’은 교통섬에 자리잡아 시민들 보행로와 이어진다.

서울시, 건축가들과 손잡고 ‘다리 밑 공간’ 조성 실험 진행

2018년 ‘다락옥수’ 개관, 첫 변신 경험

이후 이문, 한남, 금천 고가 밑 등 6곳

휴식·문화·체육·교육 공간 순차 개관

“10년 전만 해도 좀 차갑고 으슥했어요. 이 동네에서 20년을 살았는데, 다리 밑 하천이 원래 그렇잖아요. 혼자 다니면 좀 겁나지요. 그런데 고가 아래 저 건물이 들어와선 동네 느낌이 밝아졌어요. 지나갈 때마다 ‘뭔가’ 하고 들여다봅니다.”


지난 9일 오후 1시, 성북구 종암사거리 하천에서 막 달리기를 시작하려던 서종선(65)씨가 말했다. 서씨가 매일 달릴 때 “등대로 삼는 다리 밑 그 건물”은 종암사거리 고가 하부에 조성된 다목적 문화 공간 ‘분절된 광장’(종암동 3-1288 일대)이다.

이는 북부간선도로와 내부순환로 교차지점에 있는 이른바 ‘교통섬’에 자리한 공공건물이다. 10m 위에는 고가도로가 있고, 주변은 15~20m 폭 도로로 둘러싸여 있다. 근처에 간선도로 진입 구간까지 있는 상습 정체구간인 탓에 평소 교통량이 많은 ‘시끄러운’ 도시 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 면적 1455㎡에 이르는 널찍한 땅은 사람들이 24시간 수없이 모였다 떠나는 거점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리긴 아쉬웠다. 이곳에 소음, 매연, 미세먼지 등의 환경적 조건을 극복하면서 시민들이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활용해볼 수는 없을까. 서울시와 건축가들이 힘을 모아 2019년 3월 설계(심플렉스 건축사사무소 주관)에 들어갔다. 그 결과 외부 마감으로 적삼목을, 내부 마감으로 자작나무, 적삼목, 목재데크, 우드 플로링 등을 활용한 ‘나무 냄새 물씬 나는’ 건물을 짓기 시작했고, 지난해 12월 공사를 마쳤다. 철근과 나무를 뼈대 삼은 지상 1층 규모 공간 속에는 앞으로 운동·공연·상영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다락옥수 내부

“널찍한 고가 하부 공간 활용 10%에 불과”

같은 날 오후 4시30분, 3호선 옥수역 7번 출구에서 막 빠져나온 김아무개(38)씨는 고가 아래 조성된 광장을 걸어가다가 광장에서 느긋한 춤사위에 빠진 어르신들을 발견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평화로운 오후라 주말에 아이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죠. 단지에 아이들이 많이 살아서 학원 통학 차량 등으로 어수선한 느낌이 좀 있었는데, 도서관 같은 새 건물이 들어오고 어두웠던 분위기가 밝게 정리됐어요.”

2018년 옥수 고가 하부에 설치된 친환경 실내 문화 공간 ‘문화가 흐르는 고가 하부’(옥수동 332-1 일대)는 지상 1층 규모로 건립된 근린생활시설이다. 전체 면적 196.08㎡인 둥그스름한 땅에는 ‘고가 하부 숲’을 주제로 한 건물인 ‘다락옥수’와 광장이 자리잡았다. 다락옥수 위로는 지붕으로 삼은 듯한 5천 개 거울 판이 어두운 다리 밑을 시시각각 환하게 밝힌다.

다락옥수가 들어서기 전, 땅은 고가 교각으로 둘로 나뉜 상황이었다. 주변의 아파트, 다가구주택 등 다양한 주거지로 둘러싸인데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아 유동인구가 많았다. ‘다리 밑 어두침침한 공간’은 오히려 공동체 커뮤니티 공간 조성을 위한 새로운 실험 대상지로 적당했다. 2017년 겨울 설계(조진만 건축사사무소 주관)에 들어간 대지는 약 4개월 공사 기간을 거쳐 지금의 공공공간으로 ‘분절 속 연결점’을 만들었다.

2018년 성동구 옥수 고가 하부 문화 공간 개방을 시작으로 ‘실험적’으로 착수한 서울시 고가 하부 공간 활용사업이 올해 5년 차를 맞았다.

서울에는 현재 200개 넘는 고가도로와 고가철도가 곳곳에 분포돼 있다. 그 가운데 고가 아래 유휴 면적이 자리한 ‘고가 하부 공간’은 총 183곳이다. 유휴 공간 전체 면적은 단순히 합산해도 약 155만4679㎡에 달하지만, 183곳 가운데 주차장이나 공원, 체육시설, 임시 주거시설 등으로 활용하는 공간은 10%에 그쳤다. 대규모 가용지가 부족한 서울에선 주목할 수밖에 없는 땅이다.

지도에선 볼 수 없는 이런 공간의 탄생 사유는 지난 50년 도시개발 역사로까지 이어진다. 급격한 도시 팽창과 인구 과밀화 속에서 무분별하게 설계한 도시 기반시설(고가, 철도, 지하공간 등)이 쏟아졌고, 2000년대 들어서 서울 곳곳의 고가도로·고가철도는 고가의 노후화 정도, 주변 경관, 필요의 당위성에 따라 순차적으로 철거가 진행됐다. 여기 1990년대 후반부터 ‘입체도시 계획' 연구를 시작으로, 고가도로를 단순 철거 대상이 아닌 도시경관과 도시재생을 위한 공간으로 보는 시각이 덧입혀졌다. 그동안 방치된 고가 하부 공간의 다양한 활용 방안에 대한 종합적 검토도 이뤄졌다.

서울시 고가 하부 공간 활용사업 역시 다리 밑에 버려진 공간의 다양한 활용을 위해 시와 건축가들이 손잡고 개선해온 경우다. 2018년 옥수 고가 하부를 시작으로 △이문 고가 하부 △한남1 고가 하부 △금천 고가 하부 △종암사거리 고가 하부 △노원역 고가 하부에 휴식·문화·체육·교육을 주제로 지은 공공건물이 순차 개관 중이다.

고가 확장 방향에 ‘선’적인 요소가 있으면 산책로나 보행로 등의 ‘길’로, ‘면’적인 요소가 강할 경우 광장 등 넓은 가용 공간 등으로 활용된다. 시는 “틀에 박히지 않은 실험으로 음습하고 황량한 기억으로 자리한 고가 하부를 다시 시민 품으로 돌리겠다”고 설명했다.

옥수, 이문, 한남1, 금천, 종암사거리, 노원역 고가 하부의 지난 변화 과정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열린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고가 하부(고가 하부를 즐기는 6가지 방법)’에서 설계 모형과 영상 등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

‘고가 하부를 즐기는 6가지 방법’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지하 3층 갤러리3에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고가 하부(고가하부를 즐기는 6가지 방법)’라는 주제로 지난 2월16일부터 오는 4월25일까지 이와 같은 6개 고가 하부 공공 공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공간 기획, 설계 과정, 조성 및 운영 성과, 건축가 설명 영상 등 지난 5년 동안 사업 과정을 기록하고 정리했다.

3월 중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누리집(www.seoulhour.kr)에서 온라인 전시 관람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장 관람의 경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방역지침으로 1일 3번 입장할 수 있다.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시스템(yeyak.seoul.go.kr)에서 예약이 필요하다.

김태형 도시공간개선단장은 “이번 전시는 도시공간개선단에서 다양한 기반시설 중 지난 5년 동안 고가차도를 활용해 시민생활환경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성과”라며 “앞으로 고가 하부 공간 활용사업이 시 전역으로 확산해 시민들을 위한 더 많은 공공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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