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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방앗간’ 높은 참여 열기…환경 위기감도 함께 느껴져”

등록 : 2021-03-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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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치약짜개 등으로 재활용하는 ‘방앗간’ 청년들

“지난해 6월 시작 뒤 시민참여단 1만명 넘어서…뿌듯하면서도 걱정돼”

지난 4일 중구 퇴계로 플라스틱 방앗간에서 프레셔스 플라스틱 서울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이들이 모여 색깔별로 나눈 분쇄 플라스틱을 만져보고 있다. 이들은 분쇄 플라스틱을 재료로 써 재활용품을 만든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서울환경연합이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플라스틱 자원순환 활동이다. 폐플라스틱 수거 시민참여 캠페인 ‘참새클럽’ 모집에 1만여 명이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왼쪽부터 서울환경연합의 김자연 프로젝트 매니저, 이동이 팀장, 서정아 활동가, 디자인 연구소 ‘프래그랩’의 이건희 대표.

“플라스틱 문제 진정한 해법은 덜 쓰고 덜 버리는 것”

재활용하는 데에도 많은 자원 들어가

기업들, 생산 때 미리 재활용 고민해야

일회용품 문제 알리는 캠페인도 예정

지하철 4호선 충무로역 인근엔 독특한 방앗간이 있다. 쌀을 찧어 떡을 만드는 방앗간처럼 플라스틱 쓰레기를 잘게 부스러뜨려 치약짜개 등을 만드는 ‘플라스틱 방앗간’이다. 재활용되지 않는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가치 있는 소품으로 만드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내는 곳이다.


플라스틱 방앗간은 서울환경연합이 지난해 6월부터 펼치고 있는 플라스틱 자원순환 활동이다. ‘프레셔스 플라스틱(Precious Plastic) 서울’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프레셔스 플라스틱’은 버려진 플라스틱의 재활용에 누구나 쉽게 참여하도록 하는 글로벌 커뮤니티다. 플라스틱 가공 기계 도면을 오픈소스로 제공하고, 커뮤니티에선 재료와 재활용 제품을 거래하며 노하우도 나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데이브 하켄스가 2013년 시작해 현재(2020년 기준) 세계 1천 곳 넘는 공간·단체에서 8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4일 중구 퇴계로 플라스틱 방앗간에서 프레셔스 플라스틱 서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서울환경연합의 이동이(28) 팀장과 김자연(28) 프로젝트 매니저, 디자인 연구소인 프래그랩의 이건희(32) 대표를 만났다. 이팀장과 김 매니저는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동창이자 ‘절친’이다.

이건희 프래그랩 대표가 분쇄기에 스팸 뚜껑을 넣고 있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김자연 매니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는 2018년 스웨덴 유학 중 이집트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를 접했다. 이런 좋은 운동이 서울에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동이 팀장에게 알렸다. 이 팀장이 바로 사업으로 기획해 추진했고 그도 귀국해 지난해부터 서울환경연합에 합류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이 팀장이 지었다. “쌀을 빻아 떡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방앗간이 떠올랐다”며 “처음 들어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이지 않냐?”고 되물으며 웃었다.

이렇게 기획한 사업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나눔과 꿈’ 지원사업으로 선정됐다. ‘프레셔스 플라스틱 서울’ 공간을 조성해 운영하고, 폐플라스틱 수거 시민참여 캠페인(참새클럽)을 한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ppseoul.com)을 만들어 전체 과정을 공개해 누구나 동네에서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업 기간은 3년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사업 실행에서 많은 물량을 작업할 수 있는 기계와 기술이 문제였다. 활동가들이 직접 하기엔 힘들어 전문기관을 찾았다. 이렇게 이어진 사람이 이건희 프래그랩 대표다. 이 대표는 플라스틱 방앗간에 작업 과정을 알려주고 장비를 제공하며 리워드 제품 개발도 함께한다.

그는 대학 때 폐자전거로 가구를 만드는 과제를 하며 프레셔스 플라스틱을 알게 됐다. 졸업 뒤 동창생 2명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메이커 교육을 해왔다. 2016년 세운상가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플라스틱 재활용 작업 기계들을 직접 만들었다. 분쇄기부터 압출기, 사출기를 차례로 제작했다. 실제 폐플라스틱을 모아 창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을 여러 번 경험했다. ‘데스크 팩토리’(desk factory)라는 이동형 기계로 축제 등 행사 현장을 찾아 플라스틱 쓰레기로 조명을 만드는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로 활동이 이어지지 못해 아쉬웠던 참이었는데, 플라스틱 방앗간 운영 소식에 기쁜 마음으로 함께했다”고 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만든 재활용품들

플라스틱 방앗간 캠페인은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7월, 9월 그리고 올해 3월세 차례 모집에 모두 1만여 명이 참새클럽에 참여했다. 이동이 팀장은 “애초 연간 500명을 목표로 했는데 깜짝 놀랐다”며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이 선별장에서 재활용이 안 되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것에 불편한 마음을 느꼈던 시민들이 부담 없이 손쉽게 실천할 수 있어 참여율이 높았던 것 같다”고 했다.

참새클럽 참여자들은 일정 기간(1~2달) 병뚜껑 등 작은 플라스틱을 모아 보낸다. 재활용해 만든 치약짜개나 벽걸이용 훅 등을 리워드로 받는다. 참여자 93%가 여성이다. 연령대는 25~35살(40%)이 가장 많다. 35~45살(20%), 10대가 뒤를 잇는다. 김자연 매니저는 “코로나19 대유행과 기후위기 속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위기감과 책임감을 느끼면서 ‘나 한 명뿐이야’가 ‘나 한 명이라도’로 분위기가 바뀐 영향도 있다”고 했다. 이건희 대표 역시 “실용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리워드를 받고 환경을 위해 뭔가 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입소문도 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참새클럽의 뜨거운 참여 열기가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풀어가야 할 과제도 있고 걱정스러운 점도 있다. 플라스틱은 재질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열하여 녹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의 발생 정도가 가장 낮은 재질이 폴리프로필렌(PP)과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이다. 이런 이유로 플라스틱 방앗간에선 두 가지 재질만 모은다.

현재 신청자 가운데 절반 정도가 폐플라스틱을 모아 보내주고, 수거 폐플라스틱 가운데 40%가량만 재활용된다. 나머지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 대부분의 참새클럽 참여자들은 플라스틱에 다양한 재질이 있다는 것과 재질이 섞이면 재활용을 못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사전 설명에 따라 열심히 분류해보지만 실제 재질이 표시되지 않고 혼합돼 있거나, 통일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모으는 데 애로가 적잖다. 게다가 병뚜껑 고무패킹은 빠지지 않아 재활용이 아예 되지 않는다. 김 매니저는 “참여자들은 단일 재질로 된 플라스틱을 찾기가 힘들었다며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은 이제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이 팀장은 “불필요한 포장을 하지 않는 등 기업들이 생산과정에서 재활용을 미리 고려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매니저는 지역 학교에 수거통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재활용하는 해외 생활용품 기업의 사례를 들며 “기업들이 공공 인프라와 연결되는 재활용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이건희 대표는 “플라스틱을 무조건 나쁘고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성분이나 재질 등을 잘 분석해 재활용 등 순환체계를 만들어가는 실험과 제안이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플라스틱 방앗간이 쓰레기 문제를 푸는 해법처럼 받아들여질까봐 걱정도 한다. 이 팀장은 “재활용하는 데도 물과 전기 등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며 “결국 덜 쓰고 덜 버리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김 매니저는 “재활용이 쉽다고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 빨대를 쓰자는 방식으로는 환경 문제를 풀 수 없다”며 소비문화가 일회용품에서 다회용품 사용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진행할 캠페인에선 일회용품 사용 문제점을 알리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계획이다.

오는 5월부터 플라스틱 방앗간 운영 방식이 바뀐다. 기존 택배에서 방문 예약해 플라스틱 방앗간으로 직접 접수하는 방식이다. 직접 오기 어려운 지역 참여자를 위해서는 수거 공간과 제작 공간을 알려주는 지도를 누리집에 올려 안내한다. 김 매니저는 “엄청난 양의 택배 재활용 쓰레기가 더는 생기지 않고, 지역에 있는 수거 공간과 제작 공간 등을 알리고 활성화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이들은 플라스틱 방앗간의 목표인 마을의 자원순환체계를 만들어가는 더 많은 ‘착한 손’들이 생겨나길 함께 꿈꾼다.

분쇄기에서 갈아져 나온 노란색 플라스틱 가루.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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