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에 ‘공동체와 책 문화’를 더해 마을을 만들다

등록 : 2021-06-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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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동 책 테마 서울1호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 3월 준공

7개동에 38가구, 공유·공동체·근생 시설 갖춰 입주 진행 중

중랑구 겸재로에 서울 첫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이 지난 3월 준공됐다. 주택 7채, 38가구에 공용·공동체·근린생활 시설을 갖추고 건물마다 책 테마를 붙였다. 입주민들은 규약을 마련해 공동의 생활 문제를 풀어가며 공동체 활동을 해나간다.

“공동체 활동 모습 떠올리면 벌써 설레요”

2채는 셰어하우스, 나머지는 다세대


마을 연습실·창작소·라운지 등 활용

수익사업도 가능, 자족공동체 꿈꿔

공동체주택은 주거공간과 더불어 독립된 공동체 공간이 있는 주택을 일컫는다. 입주민들은 규약을 마련해 공동의 생활 문제를 풀어가며 공동체 활동을 한다. 이런 공동체주택 7채가 한 번에 들어선 마을형이 서울에 처음 생겼다. 바로 중랑구 겸재로에 있는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이다. 주거에 공동체와 책 문화를 더해 마을을 만들었다. 

 서울시는 2015년 공공임대, 민간임대, 민관협력 등의 방식으로 공동체주택 사업을 시작했다. 이듬해 겸재로 도로 확장 뒤 남은 자투리 필지(1625㎡)를 공동체주택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겸재로는 면목2동사거리에서 중랑천으로 가는 가로길이다. 경의선 중랑역, 상봉역과 지하철 7호선 면목역에서 걸어 15분 거리에 있다. 이 길에 지난 3월 7채의 신축건물이 준공됐다.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외관의 4~5층 건물이 400m 가로길 중간중간에 들어섰다.

 필지에 따라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눈에 공동체주택마을 ‘도서당’ 건물인 걸 알 수 있다. 건물 앞 색색깔의 도로표지판엔 건물명과 층별 안내가 적혀 있다. 도서당 이름 앞엔 건물마다 책의 테마(인문학·문화예술·요리여행·어린이·IT영상·소설에세이·디자인)가 붙었다. ‘책을 통해 배움의 기술과 삶의 기쁨을 누리는 도시 속 서당, 책 읽는 집’이라는 모토가 녹아 있다.

 사업 추진 방식을 정하고 기본계획과 공모지침을 세워, 통합운영주체를 선정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서울 첫 마을형 공동체주택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도난주 서울시 공동체주택 책임관은 “공동체주택 입주자가 많고 근린생활시설도 있어야 지역에 잘 안착하고 파급력도 생길 수 있어 기존 건물 단위에서 마을 단위로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사를 했거나 앞둔 입주민 3명이 5월28일 인터뷰에 앞서 도서당 공용·공동체 공간에 모였다. 입주 2개월째인 뭉흐바야르 오양가씨가 방음시설을 갖춘 마을연습실에서 악보대 앞에 서 있다.

 사업 추진 방식은 민관협력으로 이뤄졌다. 서울시가 시유지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에 현물 출자하고, SH공사는 민간임대업자를 공모로 선정해 토지를 30년, 계약을 연장할 경우 최대 40년간 빌려주는 방식이다. 민간임대업자는 토지 이용료를 내고, 서울시는 대출 알선(보증사, 협약 은행), 대출금에 대한 8년간 이자(연 2% 기준)를 지원해준다.

 토지계약이 끝날 때는 건설원가로 SH가 건물을 매입한다. 통합운영주체로 경간도시디자인건축사사무소와 유석연 서울시립대 교수팀이 선정돼 2019년 건축허가와 공동체주택 예비인증 통과를 거쳤다. 2019년 8월 착공해 약 20개월 걸려 완공했다. 통합운영주체는 설계, 시공, 입주자 모집, 임대, 공간 관리,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맡는다.

지난해 예비입주민으로 신청해 공동체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진주환씨가 마을 파티룸과 연결된 루프트톱 벤치에 앉아 웃고 있다.

 5월28일 디자인 도서당의 1층 카페에서 3명의 입주민을 만났다. 모두 20~30대의 1인 가구다. 강수종(27)씨는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이다. 그는 4월 이사할 집을 찾다 SH공사 누리집에서 공동체주택을 알게 돼 도서당 입주 신청을 했다. 방 하나에 거실 겸 부엌이 있는 독채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강씨는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살다 조금 나은 환경에 주거비 부담도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도서당이 새 건물에 주거환경도 괜찮고, 전공을 살려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해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원했다. 그는 “방에 넓은 창문도 있고, 근처에 중랑천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며 “여러 분야의 전문가나 관심 있는 입주민들이 모여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점도 끌렸다”고 덧붙였다.

 진주환(35)씨는 마케팅 분야에서 7년 정도 일한 기획자이자 여행 프리랜서다. 입주계약을 끝내고 이사 날짜를 조율하는 중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 청년주택 관련 지원 사업을 찾아보다가 공동체주택을 알게 됐다. 1인 가구로 오래 살아, 이웃과 교류하며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국독립운동사 전공을 살려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강수종씨가 인문학 라운지에서 책을 펼쳐보고 있다.

 진씨는 30년 넘은 소형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는데 단열이 잘되지 않아 겨울철 계량기 동파로 여러 차례 고생한 경험이 있어 무엇보다 신축건물인 점에 끌렸다. 지난해 예비입주자 인터뷰를 거쳐 입주자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면서 변화를 느낀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이전과 달리 다양한 사람을 알게 되고 동네 활동도 하면서 생활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뭉흐바야르 오양가(25)씨는 도시설계를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이다. 몽골 유학생인 그는 친구 2명과 함께 4월부터 소설·에세이 도서당 셰어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입주해 두 달을 산 오양가씨는 “주거비 부담은 줄고 삶의 질은 올라갔다”고 웃으며 말했다. 월세가 이전보다 10만원 정도 줄었고 주거환경은 좋아졌단다. 그는 “이전엔 원룸이라 음식을 하면 온 집에 냄새가 배어 지내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할 수 있어 냄새 걱정을 더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지내 덜 외롭고, 중랑천을 따라 산책로로 학교에 갈 수 있어 생활에 활력도 생겼다.

 도서당 입주 신청자격은 만 20살 이상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다. 공동체주택 규약에 동의하고 도서당 테마별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가구마다 연 2회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입주신청서를 내면 서류심사로 적격 여부를 판정한 뒤, 통합운영주체와 SH공사 공동체주택 코디네이터가 화상으로 인터뷰한다. 주로 지원 동기와 입주 뒤 활동 계획을 묻는다. 

 세 사람은 “인터뷰한다고 해 긴장은 좀 됐지만, 막상 해보니 편안하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인터뷰에서 나눈 얘기를 전했다. 진씨는 그간의 일 경험을 살려 이웃들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단다. 주변의 산, 공원, 하천 등을 활용해 마을탐방 코스를 운영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강씨는 이웃들과 독서모임을 하거나 한국 독립운동 관련 영화를 함께 보고 얘기도 나누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단다. 역사 왜곡에 대한 주민이나 청소년의 이해를 돕는 일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오양가씨는 한글을 배운 경험을 살려, 어르신 대상 한글과 글쓰기 강좌를 열어볼 계획이다. 그는 “입주 인터뷰를 하면서 공동체 프로그램과 활동에 대한 방법을 함께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세 사람은 “모든 가구의 입주가 끝나고 집단면역이 생겨, 공동체 활동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벌써 설렌다”고 웃으며 말했다.

 도서당 주택 7채 가운데 2채는 셰어하우스이고 나머지는 다세대주택이다. 다세대주택 대부분은 1~2인 가구용이고, 이 가운데 전용면적 30~50㎡ 이하가 22호 있다. 호수는 통합운영주체와 상호 협의해 정한다. 주택 보증금과 월세는 주변 시세의 90% 수준이다. 준공 시점 감정평가 금액 기준이다. 입주자는 신청자격에 따라 대출과 이자 등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초 계약 기간은 2년, 재계약 요건을 유지하면 최장 20년 살 수 있다.

 공동체 공간으로는 마을 빨래방이 2곳 있고, 4명이 앉을 수 있는 인문학 라운지, 루프트톱과 연결된 마을 파티룸, 전신 거울과 방음방이 있는 마을 연습실, 유튜브 촬영을 할 수 있는 마을 창작소 등이 있다. 공간 활용계획은 통합운영주체가 입주자들과 협의해 정한다. 비영리 근린생활시설 2호도 들어선다. 임대료가 없는 근린생활시설을 활용해 입주자들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다. 통합운영주체인 유석연 교수는 “공간을 활용해 입주자 간 교류와 수익활동으로 자족공동체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는 “대관 등으로 적정한 수입이 생기면 입주민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도 찾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겸재로엔 공동체주택에 관심 있는 시민이나 사업자들이 상담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공동체주택 지원허브 ‘집집마당’이 있다. 집집마당은 올해 1월 운영을 시작했다. 교육, 홍보, 상담, 커뮤니티 프로그램 지원 등의 업무를 한다. 김영길 집집마당 센터장은 “앞으로 공동체주택 사업 활성화를 위해 더 많이 알리고, 커뮤니티 공간이 잘 운영되도록 지원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도서당은 5월부터 입주자를 상시 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예비입주자 모집에서 약 60명이 입주신청서를 내고 인터뷰했는데, 성악가, 작가, 요리사 등 경력이 다양했다. 하지만 사업 추진 일정이 늦어지면서 대부분 입주로 이어지지 못했다. 유 교수는 “도서당 취지에 맞는 예비입주자들이 함께 못해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공동체살이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입주 모집 공고는 카카오톡플러스채널(@doseodang), 서울시 공동체주택 플랫폼(soco.seoul.go.kr) 등에서 볼 수 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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