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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호 넘은 사회주택, 이제 ‘정책적 시각’으로 봐야 할 때”

등록 : 2021-09-09 15:19 수정 : 2021-09-09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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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 공동체·도시재생 주임교수(왼쪽부터),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협회 회원 단체인 ‘한지붕협동조합’의 이병 이사장이 지난 9월2일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사회적 주택 ‘한지붕 웨스트밸리’에 모였다. 10월16일 개강하는 ‘사회주택 정책과정’ 프로그램을 최종 논의하기 위해서다.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과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 한국사회주택협회가 함께 마련한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사회주택 관련 프로그램 중 최초로 ‘정책적 시각으로 사회주택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마련됐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한겨레-성공회대-사회주택협회, ‘사회주택 정책과정’ 함께 마련

10월16일 개강…해외 사례부터 현장 방문까지 알찬 주제 담아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이 ‘정책적 시각’을 가지고 사회주택을 바라봐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2일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사회적 주택 ‘한지붕 웨스트밸리’ 앞. 김창진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 공동체·도시재생 주임교수는 오는 10월16일 개강하는‘사회주택 정책과정’의 의의를 이렇게 강조했다. 자리를 함께한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과 협회 회원 단체인 ‘한지붕협동조합’의 이병 이사장도 김 주임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시했다.

170여 가구에 이르는 12층 건물인 ‘한지붕웨스트밸리’는 한지붕협동조합이 사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입주 신청을 받고 있는 사회적 주택이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50% 정도다.


이번 가을에 첫 수강생을 모집하는 ‘사회주택 정책과정’은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원장 이상훈)과 한국사회주택협회, 그리고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원장 이봉현)이 힘을 합쳐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10월16일부터 12월3일까지 8주 동안 매주 토요일 오후2~6시에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주거 정의에 대한 철학에서부터 △캐나다·네덜란드·프랑스 등 외국의 사회주택 사례 △한국 사회주택제도의 이상과 현실 △정책기금 운영 그리고 △사회주택 현장 답사 등으로 짜여있다.

사회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10년까지 오랫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주택이다. 다만, ‘한지붕 웨스트밸리’와 같이 취약계층용 사회적주택은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청년·육아 단체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주체’가 공급하고 운영하는 일종의 임대주택 형태인데, 운영 주체들은 입주자들이 주도적으로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운영·지원한다.

주로 지자체가 땅을 장기간 싸게 빌려주면,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그 땅에 건물을 지어 저렴하게 장기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현재 전국에 5천 가구가량 사회주택이 있고, 이 가운데 약 70%가 서울에 있다.

이번에 3개 기관이 함께 만든 프로그램의 핵심 키워드는 ‘정책적 시각’이다. 기존 사회주택 관련 프로그램들이 활동가나 입주자의 사회주택 입주 생활과 관련한 내용 위주로 진행됐다면, 이번 프로그램은 ‘사회주택이 전세계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우리사회에서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전망할 수 있는 시각을 키워주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사회주택을 정책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수료생을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주택 정책과정’이 정책적 시각을 강조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사회주택 보급 호수의 증가다.

이한솔 이사장은 “현재 서울 이외 지역에서도 지자체, 민간주체의 공급 욕구가 확산되고 있고, 국토교통부에서도 2022년까지 해마다 2천 가구 이상 사회주택 활성화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며 “이제 활동가나 이용자뿐만 아니라 학술적·정책적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한 심화교육이 필요한 시기”라고 짚었다. 이 이사장은 30대 초반이지만 대학재학 시절부터 세입자 권익 대변·교육 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에서 활동해온 ‘10년차 활동가’이다.

김 주임교수는 이와 관련해 사회주택 관련자들도 숫자뿐만 아니라 성격 면에서도 크게 변화했다는 점을 꼽았다.

“이제 사회주택과 관련된 사람들이 협회관계자와 입주자들뿐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이나 지방의회 의원 등을 포함해 수천 명에 이르는 상황이 됐습니다. 관련자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관련자의 성격 또한 달라진 상황에서 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이병 이사장은 ‘사회주택 정책과정’이 이렇게 변화해가는 사회주택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겨레에서 연구기획조정실장(현 한겨레 경제사회연구원장)을 지내고 몇 년 전 정년퇴직한 이 이사장은 “3개 기관이 힘을 모아 출범시키는 ‘사회주택 정책과정’은 언론-대학-사회단체가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2009년 한겨레와 성공회대, 그리고 사회적 경제 단체들이 힘을 모아 만든 ‘풀뿌리사회적기업가 학교’를 연상시킨다”며 “당시 ‘풀뿌리학교’가 사회적 기업 생태계를 크게 넓히고 견고하게 하는 데 기여했듯이 이번에 출범하는 ‘사회주택 정책과정’도 사회주택 생태계 확장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이한솔 이사장, 이병 이사장, 김창진 주임교수. 세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사회주택이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다음달 개강하는 ‘사회주택 정책과정’이 사회주택과 관계되는 사람들의 생태계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용일 기자

“우리나라 사회주택 방향에 대한 ‘전망 능력 갖춘 인재 육성’ 초점”

3개 기관 장점 살려 만든 프로그램

“사회주택 생태계 확대에 기여할 것”

지자체 공무원, 의원 등 수강 대상

제1기 사회주택 정책과정’을 함께 준비하는 3개 기관은 프로그램 중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사회주택에 대한 철학’을 우선 꼽는다.

김 주임교수는 “우리는 현재 코로나 사태, 북미의 산불, 유럽의 홍수, 기후재앙 등이 빈번한 상황에 살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연대경제의 철학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런 사회연대경제의 철학에 기초해 사회주택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사회주택이 우리나라 주택 문제 해결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짚을 것”이라고 했다.

사회주택이 활성화된 외국 사례도 주요하게 다뤄진다. 이병 이사장은 “캐나다나 유럽 선진국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사회주택이 활성화돼 있다”며 “네덜란드는 전체 주택의34%가 사회주택”이라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네덜란드의 이런 높은 사회주택 비율은 1901년 국민 주거관리를 보장하는 주택법이 생겨 공공이 지원해 주택을 공급해온 데 따른 것”이라며 “이런 높은 사회주택 비율은 서민 주거 안정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의 사회주택 개념은 우리나라의 사회주택과 임대주택 개념을 합한 것이다.

김 주임교수는 “캐나다도 사회주택의 중요성을 인식해 재정지원제도를 잘해나가고 있는 나라”라며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경우 밴쿠버에서 진행되는 사회주택 건립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유지를 단돈 1달러에 제공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그램 중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주택협동조합연합회 솜 암스트롱 회장과 화상으로 연결해 직접 캐나다의 사회주택 현황을 들어보는 시간도 계획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한솔 이사장은 프로그램 중에는 한국의 대표적 사회주택의 하나인 경기도 남양주 ‘위스테이 별내’와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아이부키 장안생활’을 방문해 사회주택의 현황과 장단점 등을 살펴보는 시간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위스테이 별내는 국내 최초로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지어진 곳이다. 이 단지는 입주자 스스로가 설립한 사회적 협동조합이 주체가 돼 꾸려가는 대규모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다. 아파트 안의 커뮤니티 시설 인테리어부터 프로그램까지 전반에 걸쳐 의견을 반영하고 꾸려가고 있다.

‘아이부키 장안생활’은 창작자와 작가를 위한 사회주택으로 1인 라이프스타일의 원룸과 함께 작업하는 공유창작실을 갖추고있다.

김창진 주임교수는 이런 변화의 시기에 시작되는 ‘사회주택 정책과정’이 우리나라 사회주택 정책에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낼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회주택의 핵심 의의는 주거 정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주거 측면에서 공정을 실현하는 중요 방법이죠. 주민공동체 활동이 활성화된 사회주택에서의 삶은 서로 접촉이 거의 없는 남남으로 살아가는 일반 아파트의 삶에 비해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이에 따라 사회주택이 많아지면 사회주택의 담장을 넘어 지역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사회주택 정책과정은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김 주임교수는 “이에 따라 앞으로 ‘사회주택 정책과정’ 수료생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 교류협력을 하면서 정보 교환이나 정책 제안 등을 해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할 것” 이라며 “향후 ‘사회주택 정책과정’의 운영과 사회주택의 수요를 고려해 정식 대학원 학위과정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각각의 전문성을 가진 3개 기관이 함께 만드는 ‘사회주택 정책과정’이라는 새 교육프로그램이 앞으로 사회주택 생태계가 확대되는 데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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