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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인 영아 국적 찾아줘 ‘뿌듯’”

무국적 한 살배기를 할아버지와 함께 귀국시킨 서대문구 아동청소년과 박애경 팀장

등록 : 2021-11-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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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7일 서대문구 아동청소년과 사무실에서 박애경 아동보호팀장이 <서울&>과 인터뷰를 마치고 아동보호팀 활동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5월초 요보호 아동 발생 신고받아

사망한 미등록 외국인 미혼모 아기

민관협력으로 국적·여권 만들어줘

“다리 역할 해 다행, 체계 마련되길”

“디에바스와 리투아니아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의 시간이 힘들었지만, 우리를 도와준 좋은 사람들 덕분에 따뜻하게 기억됩니다. 나중에 편지와 디에바스 사진도 보내겠습니다.”

10월27일 오전 서대문구 아동청소년과에서 만난 박애경(58) 팀장이 보여준 전자우편 내용 일부다. 서대문구와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무국적 상태의 한 살배기 손주를 무사히 데리고 간 할아버지의 감사 편지였다. 박 팀장은 지난 5개월 동안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줬다.


디에바스는 리투아니아인 아나스타샤가 낳은 아기다. 미등록 외국인 신분의 아나스타샤는 한국에서 뜻하지 않은 임신을 했다. 지난해 9월 서대문구의 애란위기임신출산지원센터(애란원) 도움으로 출산하고, 2개월 뒤 경북 구미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디에바스는 애란원의 소개로 서대문구의 24시간 보육시설인 무지개어린이집에 맡겨졌다.

서대문구 아동청소년과 직원들.

올해 4월 아나스타샤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구미경찰서가 수소문 끝에 아나스타샤의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손자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구미경찰서는 애란원에 이 사실을 알렸다. 애란원은 지난 5월 초 서대문구에 디에바스의 보호를 요청했다.

박 팀장은 디에바스가 출국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출입국사무소, 외교부, 법무부 등 여러 곳에 연락해봤지만, 무국적 상태에선 어렵다는 답만 들었다. 같은 과의 아동권리 옹호관인 옴부즈퍼슨에게 도움받을 만한 기관들을 추천받았다. 이주민공익지원센터 ‘감사와 동행’(감동)과 국제아동인권센터의 변호사와 함께 방법을 찾아 진행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리투아니아 대사관을 통해 국적 취득과 여권 발급을 하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서류가 오가는 절차는 복잡했다. 리투아니아 정부에서 디에바스의 출생, 아나스타샤의 사망에 대한 공공확인서(수리 증명서)를 요청했다. 출생증명서는 민원여권과의 업무 협조를 구해 서대문구가 일종의 공증서인 ‘아포스티유’를 발급했다.

여권 원본과 사망진단서는 구미시 경찰서와 병원의 협조가 있어야 했다. 아동보호팀은 유품에 있는 여권 이관을 요청하는 공문을 구미경찰서로 보냈다. 사망진단서에 임의로 적힌 주민등록번호 수정을 위해 병원 원무과에 협조를 구해야 했다.

그사이 팀의 아동보호요원들이 디에바스를 돌봤다. 무지개어린이집을 찾아 상황을 설명하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알렸다. 디에바스는 서울시의 요보호아동 일시보호기관으로 최장 2개월 머물 수 있는 서울아동복지센터로 옮겨졌다. 7월부터는 서대문구의 아동양육시설 ‘구세군후생원’에 들어가 지냈다. 박 팀장은 “양육자가 자주 바뀌어 마음이 아팠지만, 해맑은 디에바스를 보니 사랑받으며 잘 자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0월2일 디에바스의 할아버지가 입국했다. 서대문구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영어 통역을 지원해줬다. 원가정 복귀 프로그램을 적용해 첫 만남은 1시간 정도 이뤄졌고, 이후 만남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다. 디에바스는 처음엔 낯설어했지만 두세 번 만나면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안기기도 했다. 9일 출국장에선 할아버지 손을 꼭 잡고 아장아장 걷다가 품에 안겨 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박 팀장은 “다섯 달 동안 공들이고 애쓴 보람이 있었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잘못되면 디에바스가 붕 뜰 수 있어 겁이 나, 처음 요보호 아동 보고를 들었을 때부터 업무일지를 썼다”고 박 팀장은 말했다. 만났거나 통화한 사람들, 연락처, 주고받은 메일 내용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박 팀장과 팀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디에바스를 도우려 한다는 게 절로 느껴졌다”고 이나령 아동청소년과장이 전했다.

디에바스의 사례를 진행하면서 박 팀장은 원가정 복귀 지원의 의미를 찾았다. 민관협력의 중요성도 확인했다. 그는 “(서대문구가) 여러 기관이 원활하게 협력할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한 것”이라며 “국제아동인권센터 등의 역할 없이는 구가 단독으로 하긴 어려웠을 것 같다”고 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아동권리 옴부즈퍼슨이 그동안의 과정을 복기하면서 함께 수행했던 일을 정리해 자료를 만들 계획이란다. 그는 “무국적 아동의 원가정 복귀의 길을 내는 것이라 참 감사하다”며 지원체계가 마련되길 기대했다.

사회복지사인 박 팀장은 30대 중반의 늦깎이 나이에 공무원이 됐다. 20여 년간 어르신·노숙인·미혼모 등 여러 분야 사회복지 업무를 두루 거쳤다. 특히 공공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업무를 많이 맡았다. 2012년 사례관리, 2015년 주거급여 등이다. 지난해 10월 학대아동 보호 업무가 공공 책임으로 옮겨오면서 아동청소년과를 자원했다. 그는 “정년퇴임 뒤에도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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