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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장 식재료 알면 음식 더 맛있어져”

‘오는 날이 장날입니다’ 펴낸 김진영 식품 전문 엠디

등록 : 2021-12-02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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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5일장 식재료·음식 이야기 담아

같은 재료라도 산지·철 따라 맛이 달라

육고기, 가을과 겨울 사이 가장 맛있어

“사라지는 5일장 기록으로 남기고파

김진영 식품 전문 엠디(MD)가 11월12일 5일장이 선 경기 화성시 사강시장에서 좌판을 벌린 할머니한테서 미나리를 산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재료와 레시피가 항상 똑같지만 음식 맛이 다른 경우가 많죠. 산지가 다르고 철이 다르면 재료 맛이 바뀝니다. 식재료를 아는 만큼 음식이 맛있어지죠.”

김진영 식품 전문 엠디(MD)는 똑같은 식재료라도 산지와 계절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11월12일 5일장이 열린 경기도 화성시 사강시장에서 만난 김 엠디는 “육고기는 가을과 겨울 사이 가장 맛있고 여름에는 맛이 없다”며 “여름에 사람이 지치는 것처럼 동물도 더위에 지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날이 추워지면 농작물이 얼어 죽지 않으려고 체액 속에 포도당을 저장합니다. 당도가 높아지면 물보다 어는 온도가 낮아져 얼지 않죠. 농작물이 살아남으려고 방어기제를 작동한 건데, 그게 맛있는 식재료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선물이 되죠.”


김 엠디는 양배추가 겨울(11월부터 3월)에 맛있고 여름에는 맛이 없는 이유를 채소의 ‘생존 본능’에서 찾았다. 그는 “시금치 중의 시금치라고 하는 ‘포항초’도 12월과 2월 사이 달달하니 가장 맛있다”며 “채소는 날씨가 약간 쌀쌀해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김 엠디가 최근 출간한 <오는 날이 장날입니다>(상상출판 펴냄)는 식재료 전문가인 김 엠디가 사계절 전국 5일장을 누비며 만난 제철 식재료와 음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9년부터 <경향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내용을 모아 지난 10월 책으로 펴냈다. 이번에 출간한 1권에는 5일장 33곳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고, 2권도 12월 출간할 예정이다. 김 엠디는 “보통 5일장을 사람 이야기나 인문학 관점에서 다룬 책은 있어도 식재료를 다룬 책은 드물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김 엠디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초록마을, 2014년까지 쿠팡에서 식품 전문 엠디로 근무했다. 2015년부터 에스엔에스(SNS)에서 여행과 음식 콘텐츠 ‘여행자의 식탁’을 운영하고 있고, 2016년 말부터는 제철 음식 쇼핑몰, 컨설팅, 식재료 관련 교육 등의 일도 하고 있다.

김 엠디는 가장 맛있는 식재료를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5일장에서 제철 식재료에 눈길이 간다고 했다. 그는 “계절에 따라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가 무척 다양하다”며 “식재료가 가장 맛있는 철에 맞춰서 해당 지역을 찾아간다”고 한다.

김 엠디는 가장 기억에 남는 5일장으로 봄에는 강원도 양양장, 여름에는 강원도 진부장, 가을에는 충남 예산장, 겨울에는 제주 대정장을 꼽았다. 양양장은 두릅, 진부장은 배추와 양배추, 예산장은 할머니가 직접 만든 팥고물 쑥떡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엠디는 “팥고물 쑥떡은 떡 조직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씹는 맛이 있다”며 “씹다보면 밥알의 질감이 살아 있고 단맛이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맛이 기계로 만든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시장에서 흥정으로 가격만 치는 게 아니라 흥도 나고 정도 나야 장터죠.” 김 엠디는 3년 동안 65곳의 5일장을 돌아다녔다. 다양한 지역색만큼이나 시장 분위기도 다양하다고 했다. 그중 제주도 대정장은 옛날 장터처럼 흥이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엠디는 “흥정은 하지만, 장사하겠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가는 말에 정이 묻어 있고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하는 장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에 가면 사람들이 물건값을 깎으려고만 해요. 제값 주고 사는 게 더 이득입니다.” 김 엠디는 시장에서 물건 사는 요령도 알려줬다. 김 엠디는 “물건값을 깎으면 덤을 안 주지만, 제값을 주면 덤을 준다”며 “만원어치 물건을 사면서 천원 깎아 9천원에 사는 것보다, 만원을 주고 덤으로 2천원어치를 더 받으면 그게 더 이익”이라고 했다.

“어떤 음식이 몸에 좋다는 말 무조건 믿지 마세요. 음식을 먹어서 효과를 보려면 꾸준히 10년은 먹어야 합니다.”

김 엠디는 신문이나 방송 등 미디어에서 유행처럼 몸에 좋다고 소개하는 음식에 너무 혹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물론 몸에 좋지만 한두 번 먹었다고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서, 꾸준히 먹을 자신이 없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5일장은 그냥 삶이죠. 그 지역 사람들이 심심하니 장터에 나와서 서로 이야기 나누는 만남의 장입니다.” 김 엠디는 “도시 사람들은 이것저것 할 것이 많지만 소도시로 가면 사람들이 할 게 별로 없다”며 “이런 지역 사람들에게 5일장은 흥정도 하고 이웃과 정도 나누는 아주 소중한 장소”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5일장이 계속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워했다. “대도시 주변 장은 괜찮지만, 시골장은 점점 쇠퇴하고 있습니다. 옛 면 단위 장도 컸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그나마 읍장에 사람들이 오죠.” 김 엠디는 “요즘 장은 대부분 상설시장에 5일장이 열리는 형태인데, 상설시장도 5일장이 열려야 조금 활기를 띤다”며 “상설시장과 5일장이 모두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서로 윈윈하면 좋겠다”고 했다.

김 엠디는 앞으로 전국에 있는 150여 곳 5일장을 기록으로 남길 계획이다. 그는 “경기도권을 빼고 아직 못 가본 곳이 60여 곳 된다”며 “앞으로 3년 정도 더 다니면 사람 냄새, 음식 냄새 나는 전국 5일장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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