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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기·떡메치기…동네 ‘도시농업공원’에서 세시풍속 즐기다

등록 : 2022-06-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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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공간 안에 자리한 향림도시농업체험원은 집 가까이에서 산책하면서 농사도 체험할 수 있고 자연학습도 할 수 있는 도시농업공원이다. 2015년 서울시가 조성해 은평구에 이관하고 이듬해부터 민간단체 ‘에스앤와이’(S&Y)가 위탁운영하고 있다. 향림체험원은 농업이 지닌 공동체 가치를 넓혀 치유의 가치를 더하면서 즐기는 공간이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진은 지난 5월24일 열린 ‘전통 손 모내기와 단오 한마당’ 행사 모습. 텃논에서 행사 참여자들이 모심기를 하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아이들은 논둑에서 구경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은평구 향림근린공원 안 도시농업체험원, 손 모내기와 단오 한마당 열어

아이·어른 200명 참여…텃밭·텃논 활동과 창포물에 머리 감기 등 체험

“우와! 진짜 큰 올챙이다.” 어린이집 7살 반아이가 외쳤다. 예닐곱 명의 아이들은 고인 텃논 물 여기저기에 꼬물꼬물 떠다니는 올챙이들을 신기하게 지켜봤다. 5월24일 오전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향림도시농업체험원(향림체험원)에서 열린 ‘전통 손 모내기와 단오 한마당’에 참여한 아이들이다.

향림체험원은 향림근린공원 안에 있는 도시농업시설로 명칭, 계획 등의 변경 과정을 거쳐 2015년 문을 열었다. 2만4615㎡(약 7500평) 규모로 축구장 3배 크기다. 텃논, 텃밭, 정원, 양봉장 등의 시설을 갖췄다. 서울시가 80여억원을 들여 조성한 뒤 은평구에 이관한 다음해인 2016년부터 ‘에스앤와이(S&Y)도농나눔공동체’가 위탁받아 운영해왔다.

생활공간 안에 자리한 향림체험원은 집가까이에서 산책하면서 농사도 체험하고 자연학습도 할 수 있는 도시농업공원이다. 은평경찰서 뒤편 큰길에서 주택들을 지나 5분정도만 걸으면 순식간에 초록빛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가슴이 뻥 뚫리는 전망이다. 향림체험원을 마주하고 왼쪽엔 아파트와 중학교가, 앞쪽과 오른쪽엔 야트막한 동산이 있다.

그 너머로 북한산의 족두리봉과 향로봉이 보인다. 서주봉 대표는 “해마다 3만 명 정도가 찾는다”며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한다는 뜻에서 단체 이름도 시니어와 젊은이의 영어 앞글자를 따 만들었다”고 했다.

행사 시작 전 징, 북소리와 흥겨운 민요 가락이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무슨 소리예요”라고 곁에 있는 도시농업관리사 김정란씨에게 물었다. 김씨는 “모내기가 잘되고 농작물이 잘 자라라고 잔치하는 거예요. 덩실덩실 춤춰도 돼요”라고 웃으며 어깻짓을 해 보였다.


이날 행사엔 어린이집, 유치원 5곳 아이들 100여 명과 주민, 자원봉사자 ‘멘토’, 도시농업전문가 양성과정 수강생 등 100명이 함께했다. 어른 30여 명이 두 팀으로 나눠 직접 논에 들어가 모를 심었다. 첫 팀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논으로 들어가 못줄 뒤에 일렬로 늘어섰다.

도시농업관리사 오영기씨가 못줄 앞쪽에서 모심는 방법을 안내했다. 주위에 있는 모판에서 모를 5개 정도 떼어내 제대로 심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못줄에 15㎝ 간격으로 빨간 점이 표시돼 있어 참여자들은 그아래에 모를 심으면 된다. 오씨는 “너무 깊게 넣지 말고 살짝 얹는다는 느낌으로 심어야한다”고 알려줬다. 못줄을 넘겨 뒤로 갈 때는 발 디딘 자리를 흙으로 메워줘야 한다. 다음 줄을 심기 전에 허리를 펴고 하늘을 한 번 보도록 했다. 그는 “천천히, 즐기면서 심으라”고 당부했다.

10대 아들과 모내기를 한 박수정(가명)씨는 “모내기를 처음 해본 아이에게 귀중한 경험이 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박씨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과 향림체험원의 배려텃밭에서 3년째 경작하고 있다. 그는 “아이와 이렇게 탁 트인 곳에 와서 흙을 만지고 상추 등을 키우는 게 너무 좋다”며 “도시에 이런 소중한 공간이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풍물패가 북과 징을 치며 모내기행사의 흥을 돋웠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향림체험원의 ‘어린이농부학교’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별도의 상자텃논에 직접 모를 심었다. 수업에서 모판에 볍씨를 심어 키운 모를 가져온 곳들도 있었다. 한 어린이집 교사는 “우리가 키운모가 (다른 모에 견줘) 키도 크고 튼튼해 보인다”며 뿌듯해하기도 했다. 논둑에서 어른들의 모내기를 지켜보는 아이들은 논바닥의 검은 진흙을 보며 사람들 발이 더러워질걸 걱정하기도 하고, ‘귀엽다’며 올챙이를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했다. 풍물패 북재비가 동요 ‘비행기’를 치자 고개를 돌려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내기 참여자가 잠시 허리를 펴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향림체험원 텃논은 약 80평 규모이다. 세구역으로 나눠 품종이나 농법을 달리한다. 모내기 행사 구간은 서울농업기술센터에서 추천한 품종(추청)을 심고 일주일 뒤 우렁이를 푼다. 다른 구간에선 자체 육묘장에서 키운 흑미, 황미 등 토종 벼를 심는다. 나머지 구간은 무경운 모내기를 한다. 무경운은 땅심을 살려 땅을 갈아엎지 않는 농법이다. 서주봉 대표는 “쌀겨를 뿌려 잡초를 덜 나게 하면서 지난해 처음 시도했는데 수확이 괜찮아 올해도 무경운 농법을 이어간다”고 했다.

“도심 속 생태 공간이자 행복 나누는 공동체 터전”

법 개정으로 ‘공원 내 텃밭’ 가능해져

2015년 개장, 7500평에 연 3만 명 찾아

40여명 자원봉사자 ‘멘토’가 큰 역할

어린이집 아이들의 떡메치기 체험.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아이들은 모내기에 곁들여 작은 마당에서 열린 소소한 체험행사도 즐겼다. 떡메치기에서는 인절미를 만드는 과정을 경험한다. 안반(떡칠 때 쓰는 나무판) 위에 찐 찹쌀을 얹고는 떡메를 번쩍 들어 ‘쿵’ 내리치고 좌우로 흔든다. 떡메치기로 만들어진 커다란 떡 덩어리를 적당히 썰어 콩고물을 묻힌다. 여기에 양봉장에서 직접 뜬 꿀을 찍어 먹는 것까지 체험한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각각 줄을 서 차례로 어린이용 떡메를 잡고 내려쳤다. 2살 반 아이들은 떡메를 들기조차 어려웠지만 그래도 빠지지 않고 한 번씩 다 잡았다. 친구가 떡메치는 걸 보고 고사리손으로 박수를 치는 아이도 있었다. 7살 반 아이들은 떡메를 번쩍들어 힘껏 내려친다. 이지환군은 “너무 재밌어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며 다시 줄 끝으로 가 차례를 기다렸다.

유치원 아이들의 창포물에 머리 감기 체험.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단오 세시풍속인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아보는 체험도 인기였다. 줄을 서 기다려 머리카락 끝부분을 창포물에 살짝 담가봤다. 서 대표는 “텃논이나 생태연못 근처에서 자란 창포를 뿌리째로 푹 삶은 물이다”라며 “창포 특유의 향이 나쁜 기운을 씻어내고 머릿결도 좋아지며 부스럼도 생기지 않게 한다는 세시풍습을 아이들이 경험해볼 수 있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동네 주민 윤정원(가명)씨는 자원봉사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행사장을 찾았다. 그는 올해 도시농업전문가 과정에 참여하고 있고, 이날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따끈따끈한 꽈배기 한 박스를 사 와 자원봉사자들에게 나눠줬다. 불광동으로 이사 와 동네 산책을 하다 우연히 향림체험원을 알게 됐다는 윤씨는 “삭막한 도시에 이런 공간이 있어 너무 반가웠다”고 했다.

도시농업관리사 김정란(맨 오른쪽)씨가 논둑에서 텃논 물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벼가 어떻게 자라 쌀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주민 정수호(가명)씨는 산책도 하고 농사도 체험하러 향림체험원을 자주 찾는다. 그는 “아이들에게 산 교육의 장인 것 같아 보기가 좋다”며 “소중한 자연을 잘 지켜갔으면 한다”고 했다. 정씨는 “비싼 땅에 무슨 도시농업이냐며 못마땅해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발 뒤 훗날 자연을 회복시키려면 훨씬 큰 비용이 들 거다”라고 덧붙였다.

향림체험원은 그동안 시민의 욕구에 맞춰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해왔다. 여기에는 자원봉사자 40여 명의 공이 컸다. 도시농업전문가는 텃밭 운영을, 식물보호기사는 공원 수목관리를, 화훼장식기사는 수생·허브정원 관리를 도왔다. 유기농 기사는 나눔텃밭을, 도시농업관리사는 육묘장과 양봉장을, 조경 기능사는 공원 관리에 땀방울을 쏟았다. 서주봉 대표는 “향림체험원은 도심 속 생태 공간이자 행복을 나누는 공동체 터전”이라며 “농업이 지닌 공동체 가치를 넓혀 치유의 가치를 더하면서 즐기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 서울엔 향림체험원을 비롯해 도시농업공원이 5곳(강동, 관악, 양천, 구로항동도시농업체험장) 있다. 2013년 11월 개정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주제공원으로 도시농업공원이 포함되면서, 공원에서 텃밭농사를 짓고 텃밭 교육이 가능한 체험시설도 만들 수 있게 됐다. 기존 공원에 도시농업시설을 추가하면 공원 일부기능을 도시농업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다.

서울도시농업 3.0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접근성이 좋은 공원 등에 도시농업 시설을 갖춰 도심 속 힐링 장소이자 커뮤니티 공간으로 도시농업 가치를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은평구 역시 도시농업공원에 대한 주민 수요를 고려해 향후 여건에 맞춰 확대를 검토해나갈 예정이다. 김은희 도시농업팀장은 “주민 요구와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면서 도시농업 공간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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