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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드림’에 와서 꿈꾸던 능력 갖췄어요”

금천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 다니는 이규헌씨, 서울시 청년상 받아

등록 : 2022-06-1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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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 다니는 이규헌씨가 8일 자신이 그린 만화가 실린 학교폭력과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책과 탁상용 달력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이씨는 지난 5월 서울시 청년상 희망성실부문 대상을 받았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대안학교서 9년 동안 독립심 키운 뒤

꿈드림에서 중·고 과정 검정고시 합격

‘학교폭력 예방 웹툰’ 등 제작에도 참여

“인턴 생활하면서 사회에 나설 준비 중”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꿈드림’에 오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금천구 시흥2동 금천구청소년지원센터에서 만난 이규헌(21)씨는 8일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데 혼자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꿈드림에서 멘토링 등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아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10년부터 2018년까지 9년 동안 경기도 광명에 있는 대안학교 ‘볍씨학교’를 다녔다. 이씨는 이곳에서 중2 과정까지 마친 뒤 볍씨학교 분교가 있는 제주도에서 고등학교 3학년 과정까지 마쳤다. 볍씨학교는 생명 중심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생태 생활, 자유와 자치 교육을 표방하며 2001년 국내 최초로 초등과정 대안학교를 만든 곳이다. 이후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청소년 교육과정까지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볍씨학교는 비인가 대안학교여서 이곳을 졸업한 학생은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해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씨는 2020년 2월부터 금천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해 중·고등학교 학력을 인정받았다.


금천구청소년지원센터 꿈드림은 교육 지원을 비롯해 상담, 자격증 취득과 자기계발, 직업 체험과 취업 지원 등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는 기관이다. 9~24살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데, 2015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100여 명의 청소년이 도움을 받았다.

이씨는 꿈드림에서 검정고시 준비뿐만 아니라 사진, 만화, 성문화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도 한다. 성문화 동아리 ‘웅성웅성'은 강의, 토론 등을 통해 건강한 성문화를 만들고 성폭력 예방과 평등한 성문화 확산을 위한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만화 동아리에서 자신의 그림 소질을 발견한 이씨는 지난해 말 금천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발행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웹툰 <괜찮아, 금천아>의 그림을 맡았다. 총 5화로 이뤄진 <괜찮아, 금천아>는 사이버폭력 피해를 경험한 주인공 ‘금천’이 공포 속에서 위축된 생활을 하다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씨는 “6개월 동안 그렸는데 학교폭력이나 사이버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제가 아는 것을 다른 친구들한테 알려주면 더 좋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됐죠.”

이씨는 꿈드림에서 성폭력과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해 탁상용 캘린더도 만들었다. 캘린더 앞면에는 달력, 뒷면에는 성폭력과 사이버폭력의 원인, 예방을 위한 행동 수칙 등을 담은 글과 그림이 있는데, 이씨는 그림을 맡았다. 꿈드림은 이 캘린더를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자료로도 활용한다. 이씨는 “오빠가 그림 그리는 것을 옆에서 보고 따라 그리다 보니 흥미를 느꼈다”며 “동아리에서 선생님이 몇 번 가르쳐주신 것 말고는 그림을 따로 배우거나 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씨는 이런 활동 외에도 꿈드림에서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서울시 학교 밖 청소년 직업역량 강화 프로그램 가온나래와 학교 밖 청소년 인턴십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덕분에 지난해 의류 스타트업에서 디자인 관련 인턴과정도 경험했다. 올해는 금천구청소년지원센터에서 업무보조일을 맡아 한다. “제가 그동안 할 수 있는 게 식당 아르바이트 정도였는데 처음으로 회사에서 일해보고 사회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많이 알게 됐죠.” 이씨는 “의류 스타트업 인턴을 하면서 엑셀이 필요한 것 같아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도 땄다”고 했다. 이런 활동으로 이씨는 지난 5월 서울시 청년상 희망성실부문 대상, 지난해 5월에는 금천구 모범청년상도 받았다. 이씨는 “볍씨학교에서 끈기와 책임감을 많이 배웠다”며 “꿈드림에 와서도 계속 열심히 한 결과물인 것 같아 무척 뿌듯하다”고 했다.

“전학한 학교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안 부모님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게 인생에 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신 거죠.” 이씨는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다녀 학교에 적응하는 게 힘들어 대안학교에 가게 됐다.

“볍씨학교는 주체성과 독립심을 키우는 프로그램이 많죠. 농사짓기, 집짓기 등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씨는 제주도에서 빨래는 물론이고 학생들이 식사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직접 밥을 지어 먹었다. “주변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군대도 이 정도는 안 한다는 말을 많이 하죠.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서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씨는 “무척 힘든 생활이었지만 자립심을 키울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이씨는 동아리 활동, 인턴 외에도 용돈 벌이로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도 한다. “스무 살이 넘었다고 집에서 용돈을 안 줘요.” 요즘에는 취업준비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 이씨는 “지금껏 쌓아온 재능이 도움될 만한 곳에 취업하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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