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동구는 지난해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만들어 관심을 모았다.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역에 관한 조례’는 상권이 발달하면서 기존 상인들이 밀려나는 둥지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이 조례는 이번 달에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 구청은 성수동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을 지속가능발전구역으로 지정해 대형 프랜차이즈 등의 입점을 제한할 예정이다. 하지만 성동구청 둥지내몰림 방지 업무 담당자는 요즘 고민이 많다. 이해관계자와 다툼이 생길 여지가 있는데, 조례만으로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2 서울시에는 내 집, 내 점포 앞 눈을 스스로 치워야 한다는 조례가 있다. 집이나 점포 앞의 눈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 사고가 잦자, 주민들이 눈 치우기에 참여하도록 2006년에 제정 공포했다. 그런데도 제설, 제빙 작업 참여자는 늘지 않았다. 조례에 주민들의 의무를 명시했지만, 제재 조항은 없었기 때문이다. 과태료 부과 등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상위법에 관련 조항이 없어 어렵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손발을 묶어놓은 것”
조례는 지방자치법 66조에 근거한 자치법규다. 지방자치 본격화 이후 조례 제정 건수는 민선1기에 284건에서 5기에는 742건으로 늘었다. 조례 제정의 영역도 지역개발에서 환경, 복지, 문화, 관광 등으로 다양해졌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 등 지역의 특성과 여건을 반영하고, 시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로 넓어지고 있다. 출산장려 조례, 공중화장실 조례 등 지방정부의 조례가 법률 제정을 끌어낸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 장벽은 여전하다. 헌법-법률-명령(시행령시행규칙)-조례 순으로 돼 있는 법체계에서 조례의 권한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헌법(117조)과 지방자치법(22조)에서는 ‘법령(법률+명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규정해놓았다. 이 규정은 ‘법령의 위임 하에서’ 또는 ‘법령에 근거하여’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자치입법권의 범위는 그만큼 좁을 수밖에 없다.
조례의 약한 실행력 또한 문제다. 조례로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기 위한 사항이나 벌칙을 정할 때는 반드시 법률의 구체적인 위임이 있어야 한다(지방자치법 22조). 이 때문에 지방정부가 지역 문제를 풀기 위해 조례를 제정한다고 해도 법률에서 ‘할 수 있다’고 정하지 않은 한 강제조항이나 벌칙을 정할 수 없다. 조례가 사실상 실행력을 가지는 정책 수단이 되지 못하기 십상이라는 이야기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지방분권개헌 국민운동 공동대표)는 “중앙정부가 법령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획일적으로 적용하고 있어, 지방정부가 권한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다”며 “사실상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손발을 묶어놓은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국지방자치학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일본이나 프랑스처럼 조례제정권의 범위와 집행력을 높이는 등 자치입법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본의 경우 지자체는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한’ 조례를 만들 수 있다. 일본의 지방자치법 14조는 지자체가 조례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0만 엔 이하의 벌금, 구류 등의 벌칙을 정할 수 있도록 해 지방정부의 권한을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의 광역지자체인 지역정부의 조례는 법률 집행을 위한 직접적인 이행 절차를 제정할 수 있는 법규 제정권 효력을 갖는다. 2003년 개정한 헌법에 지역정부의 ‘법규 제정권’을 인정해 법적으로 지방정부의 입법권 범위를 넓혀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자치입법권에 대한 정책 방향은 일본·프랑스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도 2014년 12월 자치입법권 강화 내용을 담은 지방자치발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1년간 논의와 국무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내놓은 계획안에는 자치입법권 강화로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입법권이 없는 한시적인(2018년) 자문기구라 추진력이 약하고, 실행 방안 마련도 순탄하지 않아 현재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헌법에 지방정부 권한 명시해야
지난해 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헌법에 입법권을 포함한 자치권 보장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방분권에 관심 있는 학자, 국회의원, 광역 지자체장, 기초 지자체장 등은 헌법을 개정해 분권과 자치를 헌법 전문에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서울&>과 한 인터뷰에서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 부활 이전인 1987년에 만들어져 자치분권 조항이 없다. 자치와 분권을 법률에 위임해 놓을 게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 헌법에서처럼 헌법 본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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