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대한민국 발전 이끌 나비효과를 만든다

김성환 노원구청장 “변화와 혁신은 간절함에서 비롯해…공존, 든든한 이웃, 마을공동체 꿈꿔”

등록 : 2016-09-22 15:21 수정 : 2016-09-22 15:25
많은 책과 함께 천장에 매단 지구 모형이 눈길을 끄는 김성환 노원구청장 집무실. 김 구청장은 푸른 별 지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서 공존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국가가 하지 않으니 자치구가 하는 겁니다.”

김성환(52) 노원구청장이 구의회에서 한 말이다. 자살예방사업, 마을공동체 복원을 위한 행복발전소, 마을이 학교다, 금연수당, 청년수당…. 2010년부터 김 구청장이 이끌어온 사업 대부분은 복지와 환경, 미래와 관련돼 있다. 국가도 선뜻 나서지 않는 일을 해내는 김 구청장을 만나기 위해 노원구 청사를 찾았다. 전등 절반이 꺼져 있는 집무실에서 셔츠의 소매를 대충 걷은 채 카메라 셔터 소리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는 김 구청장의 신발은 먼지가 내려앉은 운동화였다.

“4년의 임기와 재선을 염두에 둔다면 제대로 일할 수 없습니다.” 김 구청장은 “4년 임기라는 족쇄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건설공화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재선을 위해 미래를 망칠 수 없다고 말했다. 크게 내세울 토목공사 없이 사람과 사람의 공존으로 출발해 사람과 자연, 사람과 우주로 공존의 대상을 확대하며 공동체 복원에 힘을 실어온 김 구청장을 노원구민들은 ‘똘똘이 스머프’라는 별명과 함께 재선으로 신뢰를 보냈다.

최초의 에너지제로 주택단지 유치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노원을 말하는 김 구청장에게 행복을 물었다. 김 구청장은 답 대신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마을에서>라는 제목 아래 ‘공존, 든든한 이웃, 마을공동체 우리의 미래를 위한 김성환 노원구청장의 도전과 희망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책 면지에 ‘공존의 시대를 위하여…’라는 글귀와 함께 서명을 마친 뒤, 김 구청장은 천장을 보았다. 거기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모형이 매달려 있었다.

“이 푸른 별 지구를 아름답게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게 없을 텐데…대한민국은 여전히 석탄과 원자력 중심으로 가려고 하니…이 흐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숙제예요.” 혼잣말처럼 읊조리다 기자를 보며 말을 맺는다. 서울에서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은 노원구가 왜 가장 앞서서 녹색도시를 선언하고 태양열 발전에 공을 들이고 심지어 이엠(EM, 친환경 유용 미생물)까지 만들어 주민들에게 보급하는지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전체 에너지의 ⅓을 주택과 건물에서 사용해요. 주택에서 화석연료를 적게 쓰는 방식을 고민했지요. 단독주택 모델에 가까운 2층짜리 노원에코센터를 지었어요. 에코센터에서는 에너지가 남아요. 에너지제로 주택을 넘어 에너지플러스 주택이 된 셈이죠.”

노원에코센터가 씨앗이 돼 노원구에 우리나라 최초로 에너지제로 주택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2014년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제로에너지 주택 실증 단지’ 공모 사업에서 노원구는 대구시, 세종시와 경합했다. 노원에코센터를 짓고 운영해 본 경험 덕에 노원구는 공모전에서 승자가 될 수 있었다. 121세대 규모의 에너지제로 주택단지에 내년 하반기부터 입주가 시작된다. “이 주택단지가 대한민국 건축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봐요.”

빈 곳간을 핑계 삼지 않고 ‘노발대발’(노원을 발전시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겠다)이라는 구호를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변화와 혁신은 풍요에서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절박함에서 오는 것이죠. 다행히 우리 사회가 부유해서 무언가 하려고 하면 중앙정부나 서울시에서 재원을 끌어올 수 있어요.” 목표가 있다면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어떻게든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살예방사업 펼쳐 자살률 감소

‘죽임’을 무기로 “가만히 있으라” 위협하던 독재권력에 맞서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며 싸우던 1980년대. 이른바 명문대생이었던 김 구청장 역시 사법시험 대비용 책들을 모두의 행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구하기 위한 사회과학 서적으로 바꿨다고 했다.

아스팔트에 당당히 서서 독재와 맞섰던 당시의 청춘들 가운데 상당수는 부귀와 영화에 굴복했다. 변절은 옳고 그름을 넘어 원칙의 문제이고, 원칙은 오늘의 평안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내일로 이끄는 기준이라 했다. 1995년 노원 구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김 구청장은 시의원을 거쳐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행정관과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일했다.

다시 물었다. 김 구청장의 행복은 어떤 모습이냐고. 공동체의 복원이란 답이 돌아왔다. “복지제도가 북유럽보다 좋지 않은 남유럽이 자살률이 낮아요. 가톨릭 공동체 전통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 구청장은 메모장에 도표를 그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2010년 취임할 당시 노원구 자살률은 25개 자치구에서 7위였어요. 10만 명당 29.3명인데, 1년에 180명이에요. 이틀에 한 명꼴로 자살자가 발생하는 셈이었지요. 자살예방사업 목표는 2018년까지 오이시디(OECD,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12명까지 낮추자는 건데… 쉽지가 않네요.”

자살예방사업은 사실 노원구 사업 중에서도 모범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김 구청장은 24명으로 자살자 수를 낮춘 성과를 자랑하기보다 정책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이유를 먼저 설명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사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지역사회 공동체 모델로 할 수 있는 수준이 그 정도인 거 같아요”.

초기에 가팔랐던 노원구의 자살률 하강 곡선은 비록 완만해지긴 했지만,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제도와 사회환경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핑계 대지 않고 자치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온 덕분이다. 40~50세 장년층까지 대상 확대, 자살 징후가 있는 주민을 찾아내기 위해 병원과 연계, 전문상담사 고용 등 노원구는 자살예방사업을 더 확대하고 강화했다. 그 결과 올해 노원구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1~22명까지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구청장은 노원구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노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행복의 기준은 다양해서 한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공동체가 복원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이러저러한 이유는 최소화할 수 있다. 스스로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을 위해 공립형 대안학교를 만들고, 이웃이 이웃의 아이를 가르치고 보듬는 ‘마을이 학교다’ 사업을 펼치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미래의 불행을 줄이는 사업이다.

느리지만 쉬지 않는 걸음으로

이웃 간에 알고 지내자는 ‘안녕하세요’로 첫걸음을 뗀 공동체 복원 사업은 ‘나누면 행복해집니다’ ‘마을이 학교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녹색이 미래다’를 지나 ‘노원아 놀자! 운동하자’로 여섯 걸음째를 떼고 있다. 세 번째 걸음 ‘마을이 학교다’는 지난 7월을 기준으로 458개 학교가 열렸고, 2919명의 아이들과 지역주민이 함께했다. ‘꿈 있는 마을, 책 읽는 마을, 즐거운 마을, 건강한 마을, 안전한 마을’ 5개 마을 31개 사업은 서울 전역으로 번지며 서울형 혁신교육사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 구청장이 건넨 책 제목 아래에는 ‘나비효과 2’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노원에서 시작된 변화가 서울을 바꾸면 대한민국 또한 바뀔 것이라는 바람을 담고 있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