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예술학교는 우리소리도서관에서 어린이들이 국악기와 탈춤을 배우는 종로문화재단의 방학 프로그램이다. 5회째인 올해 프로그램은 지난달 8일부터 12일까지 5일 동안 열렸다. 탈춤놀이, 렉쳐 국악콘서트, 해금, 가야금 등 4개 강좌에 매회 15~20명이 참여해 국악과 가까워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사진은 9일 강좌에 참여한 아이들의 활동 모습. 양희주 해금 강사가 알려주는 연주방법을 아이들이 귀 기울여 듣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호기심과 재미로 90분 ‘순삭’…우리 문화에 자부심도 느껴
악기·춤·노래 배우고 직접 해보면서
옛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진행
강좌별 강사 2명, 개별 지도 곁들여
“덩 딱기 덩 딱 얼쑤~”
지난 8월9일 종로구 국악 특화 공간 ‘우리소리도서관’ 4층 프로그램실에 아이 10여 명이 둥글게 둘러앉아 타령 장단을 입과 손으로 배우고 있었다. 최아영 강사가 장구를 치자 아이들의 어깨와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최 강사가 일어나 까치걸음 동작을 알려주니 전날 수업을 들었던 이예지(초5)양과 장윤서(초3)양이 친구들 입장단에 맞춰 춤사위를 따라 한다. 다리를 무릎 높이만큼 들고 한 장단에 두 걸음씩 걷는다. 손과 발을 모두 움직여야 하는 동작 탓에 천천히 움직여도 마스크를 쓴 두 아이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도 하나둘 일어나 팔다리를 움직였다. 이날 아이들은 봉산탈춤 기본 춤동작 6가지를 차례로 배웠다. 처음 참석한 김시원(초3)군과 박성빈(초4)군이 머뭇거리다가 권단 강사가 곁에 가서 도와주니 이내 동작을 따라 하며 재밌어했다.
무릎을 굽혔다 펴며 윗몸과 고개를 숙였다가 젖히고, 팔을 크게 돌려 숫자 3 모양으로 그려주기를 했다. 한쪽 다리를 수직으로 굽혀 들었다가 내리고 다른 쪽 다리로 반복했다. 오른발을 왼쪽 다리의 오금에 붙였다 뗀 뒤 반대쪽도 똑같이 했다. 수업시간이 끝나간다는 말을 들은 이우진(초5)군은 “탈춤이 너무 재밌다”며 “더 했으면 좋겠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방학을 맞은 초등생(3~6학년)이 국악기와 탈춤을 배우고 전통놀이를 즐기는 ‘국악예술학교’가 종로구에서 올해로 5회째 열렸다. 종로문화재단이 서울형 혁신교육지구사업으로 지난 8월8~12일 오후 1시~6시30분 우리소리도서관에서 무료로 진행했다. 강좌(90분)마다 20명씩 신청을 받았다. 5일동안 연인원 280여 명이 참여했다.
아이들이 손에 한삼을 끼고 최아영 탈춤 강사의 봉산탈춤 목중춤 동작을 따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올해 국악예술학교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경험에 중점을 뒀다. 탈춤놀이, 렉쳐 국악콘서트, 해금·가야금 배우기 등의 4개 강좌가 진행됐다. 박지영 종로문화재단 문화기획팀 주임은 “초기엔 전통 음악에 대한 기본 이론과 실습으로 구성했는데, 아이들이 직접 해보며 더 흥미를 느껴 체험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탈춤놀이 시간엔 봉산탈춤 목중춤 동작을 배워 춰보고, 타령 장단도 직접 만들어보며, 탈 꾸미기도 해봤다. 마지막엔 두 팀으로 나눠 정식 공연처럼 손엔 한삼을 끼고 얼굴엔 탈을 쓰고 장구와 징 장단에 맞춰 춤을췄다. 최아영 강사는 “아이들은 마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어 공연하는 것처럼 느낀다”며 “이런 과정에서 전통예술에 호기심이 생기고 좋은 기억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강사는 “전통 그대로 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쉽게 재밌게 흥미를 갖게 다가가 옛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강의와 연주를 결합한 렉쳐 국악콘서트 시간엔 전통 가락을 배워 부르고, 실뜨기와 고누(말판놀이) 등 전래놀이를 했다. 전날엔 민요를 배웠고, 다음 날부터는 정악과 민속악, 창작 국악 등의 연주를 듣고 추임새를 넣는 경험을 한단다. 류혜민 강사는 “지난해엔 보여주고 들려주기에서 올해는 알려줘 직접해볼 수 있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한 팀이 되어 호박고누를 한 김시원군과 박성빈군은 “(A4용지 크기의) 작은 게임판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게 신기하다”며 “집에가서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박군은 “엄마가 신청해서 왔는데 오기를 잘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국악예술학교의 렉쳐 국악콘서트 시간에 김시원(초3)군과 박성빈(초4)군이 한 팀이 되어 전래놀이 ‘고누’(말판놀이)를 하는 모습. 둘 다 처음 해보는 고누가 생각보다 재밌고 신기하다고 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해금과 가야금 배우기 시간엔 참석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 20명 정원을 거의 채워 진행됐다. 해금 배우기 시간엔 양희주 강사가 악기 소개와 연주법, 악보 보는 법을 설명하고 아이들이 직접 소리를 내보게 했다. 해금음색과 친해지도록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 <알라딘>의 주제곡도 들려줬다. 해금 소리로 동물 소리 맞히기 활동도 했다.
해금을 하나씩 가진 아이들은 동요 ‘작은별’을 자기 나름대로 연주했다. 해금을 처음 만져본 이건(초4)군은 “(줄을 잡기 위해) 힘주는 게 어렵지만 재밌다”고 했다. 장윤서(초3)양은 “손가락이 많이 아프지만, (해금 소리가) 시끄럽지 않고 낮아 듣기가 좋다”며 “두줄로 여러 가지 소리를 내 신기하다”고 했다.
사실 해금은 연주하기 까다로운 국악기다. 몸에 닿는 면적도 적고 음정도 까다롭다. 양반다리를 하고 한쪽 무릎에 올려놓고 연주해 자세 자체도 힘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90분 수업에 해금으로 동요 한곡을 연주해냈다.
양 강사는 “다루기 어려운 악기인데 아이들이 짧은 시간에 연주해내는 게 너무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그는 “국악기를 직접 연주해보거나 들어본 친구들은 (국악을 대하는)눈빛이 다르다”며 “만져보고 연주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국악을 경험하면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도 느끼게 된다”고 덧붙였다.
가야금 배우기 시간에는 동요 ‘송아지’ 연주를 했다. 아이들은 줄을 튕기느라 손가락이 아픈데도 쉬는 시간에도 열심히 연습했다. 처음 가야금을 배운 장예원(초4)양은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 아프지만, 소리 내는 게 재밌다”며 “울림이 크고 느낌이 좋다”고 했다.
아이들이 가야금으로 동요 ‘송아지’를 연주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학부모들은 ‘가야금을 90분 배워 곡을 바로 연주할 수 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이수진 강사는 “동요 연주는 금세 배워할 수 있으니 부담 갖지 않고 시도해봤으면 한다”고 권했다. 그는 “아이들이 전통 음악을 알게 되면 글로벌 시대에 해외에도 알릴 수 있고 자존감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만큼이나 학부모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장예원양의 엄마 권숙희씨는 “아이가 판소리, 국악기 등을 배우고 싶어 했는데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니 믿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권씨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적성도 알아볼 수 있고 전문 강사로부터 조언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는 “국악예술학교는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어서 수업료를 내고라도 계속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서유건(초4)·유찬(초6)군의 엄마 유이정씨는 “참가 신청을 했을 땐 아이들이 더워서 가기 귀찮다고 했는데, 어제 첫날 수업하고는 유건이가 재밌다고 했다”고 전했다. 유씨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해서인지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국악을 들으면 마음이 울린다”며 “아이들에게 국악의 울림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어릴 때 듣고 만져봐야 좋은 걸 알고, 가까이해야 내 것이 된다”며 “아이들이 우리 국악의 멋을 계속 알아갔으면 한다”고 했다.
국악예술학교는 최대한 많은 아이가 경험해볼 수 있게 강좌마다 신청자를 받아 운영하다보니 아쉬운 점도 있다. 강사들은 “처음 듣는 아이들과 몇 번 들었던 아이들이 섞여 있어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권숙희씨는 다른 기관 프로그램 운영 사례를 말하며 “기본반, 심화반 등으로 나눠 운영하면 집중도가 높아지지 않을까싶다”고 제안했다.
5년차를 맞은 국악예술학교는 종로문화재단과 우리소리도서관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아영 강사는 “학교에서 사물놀이, 민요 등을 배우지만 아이들이 전통예술을 경험할 기회는 여전히 적은것 같다”며 “국악을 두루 경험해보는 이 프로그램에 더 많은 아이가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박지영 주임은 “앞으로도 국악예술학교는 지속사업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갈 계획이다”라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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