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애인 ‘평생 마을돌봄’ 이루는 게 꿈”

시간제 장애·비장애 아동 통합돌봄 10년 맞은 ‘나무와열매’ 김경예 대표

등록 : 2022-09-01 16:02

10년 전 장애아동 부모들이 모여 시작한 돌봄 모임이 나무와열매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해 장애·비장애 통합시간제 돌봄 서비스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6월엔 행정안전부의 ‘모두애 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사진은 8월25일 성북구 동소문로 나무와열매 통합돌봄터에서 김경예 대표가 ‘모두애 마을기업’ 현판 옆에 서 있는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12년 장애아 부모모임으로 시작

이듬해 마을기업 만들어 대표 맡아

연인원 1300명 이용, 재방문 100%

“접근성 좋은 안정된 돌봄터 절실”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은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코로나 상황 속에서 가족이 돌봄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참사도 발생했다. 반복되는 비극을 멈추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성북구에서 10년째 장애인의 돌봄이 문턱 없이 이뤄질 수 있게 노력해온 마을기업이 있어 눈길을 끈다. 오롯이 가족에게만 지워진 돌봄의 짐을 서로 나눠보자는 취지로 모인 장애아동 부모 모임이 만든 ‘나무와열매’다. 2013년 마을기업을 만들고 이듬해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한 뒤 우수 마을기업에 선정되고, 사회적기업 인증까지 받으며 성장해왔다. 지난 6월에는 행정안전부의 ‘모두애(愛) 마을기업’으로 뽑혀 전국 대표 마을기업으로 우뚝 섰다.

8월25일 나무와열매 통합돌봄터에서 만난 김경예(46) 대표는 “돌봄터는 장애유형 구분 없이 20살 이하 장애인 누구나 원하는 시간만큼 지낼 수 있는 개방형 공간이다”라고 설명했다. 지하철 4호선 길음역 10번 출구 바로 앞 건물에 있는 돌봄터는 민간이 자체적으로 시간제(상시·일시·긴급) 돌봄을 운영하는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시설에서는 시간과 정원, 대상자를 정해놓고 운영하는 데 견줘 나무와열매 돌봄터에선 장애·비장애 아동 누구든 최소 30분부터 온종일도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복권기금 지원사업으로 야간보호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나무와열매 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은 6명으로, 장애아 부모와 후원자들이다. 부모 조합원 2명이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김 대표로 자녀 셋 중 첫째가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 부부가 모두 지방 출신인 김 대표는 급할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시간제 돌봄을 제공해주는 공간이 절실했다. 부모 돌봄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마을기업을 함께 만들며 대표가 됐다. 그는 “사업가가 되겠다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대표를 맡고 보니 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큰아이를 키우며 딴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복지기관 아르바이트 경험, 대학 전공(경영학)이 도움이 됐다”고 했다.

초기에 나무와열매는 이웃 중심으로 시간제 돌봄 서비스만 했다. 일대일 돌봄은 고비용 구조의 서비스로 마을기업을 이어갈 수 있는 수익을 내기는 어려웠다. 보육사, 사회복지사 같은 전문 인력이 제공하는 서비스로 바꾸며 별도의 수익사업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보건복지부 바우처 사업인 장애인활동지원 사업부터 추진했다. 현재는 찾아오는 서비스(시간제 돌봄, 발달장애 학생 방과후 활동지원, 야간보호 서비스, 성북구청 틈새돌봄)와 찾아가는 서비스(장애인활동지원, 돌봄SOS) 모두 여섯 가지를 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무와열매를 통해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은 장애인은 380명이고, 매출은 112억원에 이른다. 바우처 사업이라 매출은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활동지원 사업은 2년마다 하는 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줄곧 뽑혔다. 시간제 통합돌봄 이용자는 연인원 1300명 정도인데 100% 재방문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 다른 자치구나 경기도에서 오기도 한다.

김 대표는 나무와열매가 이런 성과를 거둔 데는 직원들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지원사 380명이 직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공유 자리를 마련하고, 보수 등 처우를 좀 더 해주려 노력한다”고 했다. 직원이 제대로 대우받아야 이용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근 직원 16명은 전문가 강의 등의 교육과 독서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 이용자의 장애유형이 다양하기에 여러 장애 특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장애인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올해 들어 나무와열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4월 노원구 하계동에 치료(운동과 수기(안마))센터를 열었다. 바우처 기관으로 지정받으면 바우처 사용이나 민간치료 둘 다 할 수 있다. 치료사 양성 같은 사업을 통해 수익성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길음 센터에도 행안부 ‘모두애 마을기업’ 상금 1억원으로 치료 시설과 인력을 갖출 계획이다. 김 대표는 “지역 곳곳에 치료와 돌봄의 공간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고 했다.

시급하게 풀어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현재 돌봄터가 있는 성북구도시관리공단의 건물이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새 보금자리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120평 정도 규모에 접근성도 좋고 생활권 안에 있는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민간 건물주는 장애인 시설 임대를 꺼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김 대표는 “공간이 안정적이어야 지속적인 운영을 할 수 있다”며 “유휴 공간 활용 등 공공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나무와열매는 장애인이 생애 전 주기에 걸쳐 지역에서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평생 마을돌봄’을 꿈꾼다. 김 대표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아이가 지역 안에서 늙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이라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나무와열매가 작은 역할을 이어가며 장애인의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변화가 우리 사회에 생겼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