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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무라 준을 움직인 장항준 감독의 손편지

등록 : 2016-09-23 11:00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문화방송)의 영화프로젝트 ‘무한상사’에서 특별출연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영화 <곡성>에 나온 일본 배우 구니무라 준은 의외였다. 김혜수, 이제훈은 ‘무한상사’를 집필한 김은희 작가와 드라마 <시그널>(티브이엔)에서 만난 인연이 있지만, 구니무라 준은 연결고리가 없다. 그가 ‘무한상사’의 ‘마키상’이 된 이유는 손편지에 있다.

‘무한상사’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은 다섯 번 거절당한 뒤 직접 장문의 손편지를 썼다. 요약하면 이렇다. “영화 하는 장항준입니다. 이 역할은 당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당신이 안 맡아 주시면 역할은 없어질 것입니다….” 절절함이 마음을 움직였는지 연락이 왔고, 장 감독은 일본으로 날아가 만나서 설명한 뒤 삼고초려 끝에 섭외에 성공했다.

예능프로그램은 섭외와의 전쟁이다. 어떤 초대 손님이 나오느냐에 따라 화제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은 <무한도전>은 그나마 나은 편. 지상파, 케이블, 이젠 모바일까지 예능프로그램만 수백 개인 상황에서 마음에 드는 연예인을 초대하려는 제작진의 구애 작전은 눈물겹다.

기본은 발품이다. 당연히 전화 한 통으로 섭외되는 ‘특급 손님’은 없다. 반복해서 걸고, 그래도 거절하면 찾아서 만나야 한다. 꾸준함이 중요하다. 최소 1년 뒤를 생각하고 정성을 기울인다. 생일, 데뷔일 등 특별한 기념일을 챙기고, 가수들한테는 콘서트 때마다 화환을 보내기도 한다. 취향도 저격한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연예인한테는 제작진이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 선물하고, 가수들한테는 모든 음반 수록곡을 줄줄 외워 얘기한다. 배우가 나온 작품은 작은 장면도 잊지 않고 얘기하면 감동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 전화하라면 반드시 해야 한다. 내일 연락한다 해놓고 안 하면 섭외는 물 건너간다. 오간 한마디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노트를 마련해 몇 번 전화했고, 전화할 때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메모해두는 작가도 있다.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정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전화를 안 받더라도 콜백이 올 수 있게, 일반 전화가 아닌 휴대폰으로 거는 등 작은 것이 큰 차이를 만든다.

물론, 이 모든 행위의 핵심은 ‘정성’이다. 내 노래를 기억한다고, 도시락을 선물 받았다고 어깨 으쓱하는 마음으로 출연하는 연예인은 없다. 진심이 없으면 1년 이상 공들일 의지도 안 생긴다. 장항준의 손편지처럼 진심을 담은 행동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남지은 <한겨레> 문화부 방송담당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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