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사 단풍나무 연리지에 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도봉사에서 본 서로 얽혀 자란 연리지
어깨동무한 듯, 서로서로 잡아끄는 듯
구불대는 줄기 얽어 굳게 부둥켜안고
쉬어가는 사람에게 인연을 설법한다
서울창포원의 나무들이 잘 자라서 이제 제법 숲답다. 창포원 입구 건물 2층에서 그 숲을 보고 숲속을 걸었다. 창포원 북쪽 평화문화진지 전망대에 오르면 서울창포원 숲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북한산 기슭 숲길을 걷다가 잠시 쉬었던
도봉사에서 말없이 인연을 설법하는 듯 서 있는 연리지를 만났다. 햇빛 부서지는 시냇물 위로 하얀 새 한 마리 날아가는 무수골 마을 어느 집 담장 위로 자란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빙하 타고 쌍문동에 내려온 둘리와 그 만화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쌍문근린공원이다. 쌍문근린공원은 둘리의 숲이다.
평화문화진지 전망대에서 서울창포원 숲을 굽어보다
이제는 나무들이 커서 제법 숲 같다. 2009년 도봉산역 옆에 문을 연 서울창포원, 10년 넘는 세월 동안 나무가 잘 자라 숲을 만들었다. 소나무언덕, 습지원, 억새원이 창포원 중심부에서 숲을 이루었다.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 둥그렇게 자란 커다란 나무들, 소나무, 억새밭이 어울린 그곳에 이리저리 길이 났다. 그 풍경을 창포원 입구 건물 2층에서 보고, 그 숲으로 들어갔다.
코스모스, 분홍바늘꽃, 미국쑥부쟁이꽃이 핀 길을 지나 습지원으로 향했다. 연못 위에 놓인 데크길로 걸었다. 먼저 온 사람도 늦게 온 사람도 데크길 위에서 멈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연못의 오리들, 물에 비친 하늘과 하얀 구름, 물에 닿을 듯 가지를 늘어뜨린 수양버들, 물에 뜬 잎이 만든 추상의 무늬들이 걸음을 멈추게 하고 상념을 지운다.
그렇게 동화된 걸음으로 습지원을 나와 흙먼지 날리던 시골길 같은 길을 걸었다. 이내 작은 소나무숲이 나왔다. ‘책을 읽는 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나무숲이다.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형상의 조형물이 보인다. 사람들은 숲에서 책을 읽는다.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몸이 불편한 젊은 남자의 손을 잡고 숲으로 들어오는 하얀 머리 아줌마는 그 남자의 엄마 같았다. 겨우 걷는 남자의 걸음에 맞춰 아줌마가 걷는다. 그들은 그렇게 숲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들이 앉은 의자 바로 뒤 나뭇가지로 까치가 날아왔다. 사람도 새도 함께 모이는 숲, 새소리가 숲에 울린다. 숲이 고즈넉하다. 젊은 남자와 머리 하얀 아줌마는 숲에 있는 내내 손을 놓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숲으로 들어올 때처럼 그들은 숲을 나섰다.
‘책을 읽는 언덕’ 숲에서 나와 창포원 바로 위, 북쪽에 있는 평화문화진지로 걸었다.1950년 한국전쟁 개전 초기에 남하하는 북한군의 탱크 앞에 속수무책으로 밀린 것을 생각해서 만든 게 대전차 방호시설이다. 그곳이 2017년에 평화문화진지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베를린시에서 기증받은,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 3점을 보고 평화문화진지 전망대로 올라갔다. 서울창포원 숲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푸른 숲이 평화롭게 보였다.
북한산 기슭 계곡길, 숲길, 냇물 흐르는 마을길을 걷다
조선시대에는 평화문화진지 부근에 ‘다락원’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관리들이 나랏일로 지방을 다닐 때 묵던 공공여관을 ‘원’이라 했다. ‘다락원’도 그중 하나였다. ‘다락원’이 있던 곳은 조선 후기 서울과 경기도 북부, 함경도까지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로 서울로 들어오는 어물을 독점하면서 큰 시장이 섰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도봉산과 수락산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창포원에서 서울둘레길 1코스 수락산 방향과 8코스 북한산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서울둘레길 북한산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지하철 도봉산역을 지나 도봉로를 건너 북한산국립공원 상가지구로 들어선다. 어느정도 걷다보면 길 왼쪽에 데크로 만든 쉼터가 보인다. 쉼터 앞에 도봉천이 흐른다. 도봉천 옆길로 걷는다. 물가 숲 그늘에서 쉬는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그 풍경에 발걸음이 느려진다. 북한산국립공원을 알리는 비석 앞에서 길이 갈라진다. 북한산 둘레길 이정표 ‘방학동(연산군묘)’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은 북한산둘레길 도봉옛길과 겹치는 구간이다.
숲이 만든 그늘과 넓은 흙길을 걷는다. 길 옆에 벚나무, 굴참나무, 생강나무, 물봉선, 쪽동백나무, 오리나무가 자란다. 길 밖은 우거진 숲이다. 그런 길을 걸어 도봉사에 도착했다. 도봉사에는 나무 두 그루가 서로 얽히며 자라는 연리지가 많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단풍나무 연리지를 보았다. 부둥켜안은 두 사람의 형상이 얼핏 비친다. 바로 옆 또 다른 단풍나무 연리지는 벌써 단풍이 들어 붉게 물들었다. 구불거리며 자란 소나무 줄기를 다른 나무줄기가 감고 자란 풍경을 지나 대웅전 앞 계단 아래 마당에 도착했다. 그곳에도 연리지가 있었다. 어깨동무한 듯 혹은 두 사람이 힘줄 굵은 팔뚝을 서로 잡고 있는 듯 보였다. 도봉사 연리지들은 둘레길을 걷다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인연을 설법하듯 그곳에 있었다.
도봉옛길을 걸어서 무수골 마을에 도착했다. 암반바위 위를 흐르는 시냇물 위로 하얀 새 한 마리 난다. 새를 쫓아 냇물로 내려가 걸었다. 물결마다 햇볕이 부서져 반짝였다. 어느 집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주렁주렁 달렸다.
둘리의 숲을 거닐다
해거름이라 쌍문근린공원 숲길은 내일 걷기로 하고 숲 기슭에 있는 둘리뮤지엄을 돌아봤다. 월간 만화책 <보물섬>에 1983년 부터 1993년까지 연재된 <아기공룡 둘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박물관이다. 주인공인 둘리와 고길동, 박희동, 도우너, 마이콜, 또치 조형물이 박물관 초입부터 박물관 마당, 전시실, 옥상에서 사람들을 반긴다.둘리뮤지엄을 돌아보는 내내 둘리와 함께 만화의 세상을 여행했다.
둘리뮤지엄이 이곳에 생긴 이유는 만화에 나오는 고길동의 집이 쌍문동에 있었고, 둘리가 빙하를 타고 쌍문동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둘리뮤지엄을 품고 있는 숲이 쌍문근린공원이다.
다음날 둘리뮤지엄을 찾았다. 박물관 뒤 놀이터에서 시작하는 숲길로 걸었다. 숲길에서 처음 만난 건 만화에 나오는 마이콜이었다. 옆으로 누워 다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발 사이에 커다란 빗자루를 낀 이상한 자세였다. 잘 보니 브레이크댄스에 푹 빠진 모습 같았다. 마이콜 조형물 바로 위에는 코뿔소 입에 들어가 앉아 있는 둘리와 그것을 보고 놀라는 원주민들의 조형물이 있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 있어 만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둘리뮤지엄 초입에 있는 조형물. 마법사와 광대 복장을 한 둘리와 희동이.
하늘유아숲체험장과 정상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랐다. 숲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산 둘레를 도는 오솔길을 만난다.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산 아래 마을이 보인다. 산으로 드나드는 입구가 산 둘레 동네마다 있는 듯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숲으로 오르고 숲을 벗어난다. 산 둘레 오솔길을 걷다가 능선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만났다. 능선 삼거리 이정표에 세심천 입구, 꽃동네, 하늘유아숲이라고 적혔다. 하늘유아숲 쪽으로 걸었다. 쌍문근린공원은 숲속 놀이터와 나무 그늘 아래 정자 쉼터가 많다. 그곳마다 어김없이 아이들 노는 소리가 숲에 울렸고, 어른들의 쉬는 모습이 여유로웠다.
도로로 나뉜 숲을 잇는 다리 쪽으로 걸었다. 다리 양쪽 끝에 홍살문을 세웠다. 옛 날에 쌍문동에 살았던 효자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효자문 두 개를 세운 데서 쌍문동이 유래했다고 한다. 두 개의 홍살문은 그 뜻을 담은 것이다.
다리를 건너 둘리유아숲체험장 쪽으로 걸었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에 나오는 톰과 허클베리 핀이 뛰어놀 것 같은 2층 통나무집이 숲속에 보인다. 둘리와 그 친구들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둘리유아숲체험장 놀이터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이들 노는 소리,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숲길을 걷다 만난 뜻밖의 풍경이 반가웠다.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엄마 공룡과 아기 공룡 둘리가 그곳에서 숲을 나서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숲으로 드는 사람들을 마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쌍문근린공원은 둘리의 숲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