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먼저 사정을 설명하고 손을 내미세요

은퇴한 60대 가장의 명절 증후군 “작은아들네가 몇 해 전부터 오지 않아”

등록 : 2016-09-29 13:51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지난 추석 명절 저는 무척 우울했습니다. 각각 가정을 갖고 있는 두 아들 가운데 둘째가 몇 해 전부터 제 집에 발길을 끊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례상을 올릴 때나 식사를 할 때도 혹시나 하여 집 밖을 내다보았지만 끝내 둘째와 그쪽 식구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골에 있는 작은 땅 처분 문제로 둘째 아들네가 마음이 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큰아들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데다, 자기 사업을 하다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그 땅을 팔아 도와줬는데, 그 이후 작은아들네 가족이 명절조차 찾아오지 않는군요. 사실 작은아들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유학 자금과 생활비를 전부 대 준 적이 있어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답답해서 의견 구합니다. 저는 은퇴한 60대 남자입니다.

A. 추석 뒤에 따라오곤 하는 명절 증후군이군요. 얼마 전 택시를 탔다가 기사에게 슬픈 얘기를 들었습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동생이 아이들이 커서 학교 갈 나이가 되니까 이제는 필요 없어졌다고 어머니를 쫓아냈다는 겁니다. 어머니 수중에 있던 3000만 원까지 가져가서는 그 뒤로는 시침을 뚝 뗀다고 격분했습니다. 마치 오렌지의 맛있는 과즙을 모두 빼낸 뒤, 껍질만 남게 되자 패대기치는 격이라는 것이지요. 그 택시 기사는 동생을 향해 육두문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또 다른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 모임에 혹시 형 나와요? 그러면 저는 안 나가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형과 형수 보고 싶지 않습니다.”

형제간의 갈등을 중재해 주기 위해 자리까지 예약했던 사람은 머쓱해지고 결국 식당 예약비만 날렸다는 전언이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과 급격한 가족해체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런 상황을 자꾸 겪다 보면 ‘과연 이게 가족인가?’ 하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형을 편애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큰 것 같습니다. 형제 갈등의 상당 부분은 편애에 원인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부모가 편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사정이 딱한 큰아들의 자금 지원과 작은아들의 과거 유학 자금이 서로 엇비슷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두 사람에게는 각각의 가정이 있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이지요. 작은아들의 마음속에서는 ‘장자 선호사상’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을 겁니다.

두 번째로 부모 자식 사이의 의사소통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식들의 뜻을 잘 압니다. 그렇듯이 자식들도 부모 심정을 잘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하고 상처가 생기고, 시기와 질투, 심지어 증오로 이어집니다.

형제는 가장 가까운 사이면서 가끔은 가장 무서운 라이벌이기도 합니다. 재벌 가문의 ‘형제의 난’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하는 장면들입니다. 영어의 ‘라이벌’(rival)이란 단어는 ‘강’(river)과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부모라는 같은 강에서 태어나 함께 사랑의 강물을 마시며 자랐지만, 때로는 이처럼 무서운 얼굴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부모의 공평치 못한 처사입니다. 정치와 직장생활, 스포츠, 학교생활에서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공평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입니다. 때문에 리더는 항상 편애를 조심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집안의 리더입니다.

아마도 ‘내가 평생 고생해서 모은 돈을 내가 알아서 쓴다는데 왜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다’고 속상해할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저녁 모임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젊은 회사원들의 입에서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요즘 자~알 지내고 있어.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시고. 나에게 물려줄 돈을 팍팍 쓰면서 말이야. 지금 나에게 증여해 주면 얼마나 좋아? 나 지금 애들 키우느라 돈 많이 들거든! 왜 그러나 몰라, 우리 영감!”

그 회사원은 아버지의 돈을 ‘자기 돈’이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란 사람과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없고 오로지 아버지가 평생 모은 재산의 처분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의 의식 속에서 아버지는 ‘돈 버는 기계’로서만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장년층 사이에서는 ‘내가 번 돈 다 쓰고 죽자’는 의미로 ‘쓰죽회’가 유행이라는 소리도 생겨났습니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다 물려주고 난 뒤 굶어 죽을 바에야 그편이 훨씬 낫다는 말입니다. 약간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 블랙 유머입니다. 오죽하면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그렇다 해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 특이하고 소중한 경험입니다. 세상에 나보다 더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세상 어느 곳에도 갈등과 고민 없는 집안 없습니다. 억울해도, 답답해도 상처를 아물게 해야 합니다. 사연을 주신 분께서 부모 자식 간의 아름다웠던 관계를 복원하길 원한다면 먼저 작은아들에게 손을 내미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소상히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다음 얘기는 그다음에 서서히 하면 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둘째 아들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진솔하게 전하면 좋겠습니다. 쑥스러워도 해야 합니다. 사랑한다면 용기를 내야 합니다. 부모이니까요.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대표이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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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