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고사성어

권력을 등에 업은 권위 민주주의의 수치

호가호위(狐假虎威) 여우 호, 거짓 가, 범 호, 위엄 위

등록 : 2016-09-29 14:02 수정 : 2016-09-30 11:43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다른 짐승들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가지고 위세를 부리는 일을 말한다. 가호위호(假虎威狐)라고도 한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여우가 목숨을 건 기지를 발휘한다. “나는 상제의 명령으로 산짐승들의 왕이 된 몸이다! 나를 해치면 너도 상제의 벌을 받아 죽을 것이다!” 호랑이가 코웃음 치자 여우가 재차 말한다. “정 믿지 못하겠거든 내 뒤를 따라오며 뭇 짐승들이 어쩌는지 잘 보라!” 호랑이가 여우 뒤를 따라가며 살펴보니 과연 다른 짐승들이 여우를 보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난다. 짐승들은 호랑이를 보고 놀란 것인데, 정작 호랑이는 여우가 진짜 상제의 명으로 산짐승의 왕이 된 것으로 착각한다.

이 우화를 정적을 모해하기 위해 써먹은 자가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 나온다. 기원전4세기 초나라 선왕 때 강을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당시 명재상이던 소해휼과 대립하는 사이였다. 어느 날 왕이 대신들에게 “다른 나라들이 모두 우리 소재상이라면 벌벌 떠는데, 재상이 그토록 위엄이 있는가?”하고 묻자 강을이 나서서 대답한다.

“그럴 리가요. 북방의 강국들이 어찌 일개 재상 따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전하께서는 혹 ‘호가호위’란 말을 알고 계시옵니까?” 하고 앞의 우화를 들려준 뒤, 왕에게 아첨하기 위해 소해휼을 깎아내린다.


“여우 뒤의 호랑이를 보고 놀라는 것처럼, 지금 여러 나라가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뒤에 있는 전하의 백만 대군이 아니겠습니까?”

소해휼이 임금의 위엄을 업고 위세를 부리고 있으며, 임금은 소해휼에게 이용당하고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이간계였다. 이 고사가 알려진 이후 남의 위세를 빌려서 행세를 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거나 이권을 쟁취하려고 하는 행위를 호가호위라 일컫게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을 기화로 재단을 만드는 일에 기업들의 돈을 뜯어낸 의혹이 정치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다. 높은분 ‘빽’을 과시하며 뻔뻔하게 손을 벌리는 모습이나, 호가호위임을 뻔히 알면서도 역린(용의 목에 거꾸로 붙은 비늘)을 건드릴까 두려워 알아서돈을 갖다바치는 모습이나, 명색이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한심스러운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이인우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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