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조선 궁마을’ 유래 따라 걷는 2.6㎞ 길

강남구 수서동 ‘궁마을 역사탐방로’

등록 : 2022-10-06 15:32
사진 강남구 제공

강남구 수서역 서쪽에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궁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대모산 자락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주택들이 모인 조용한 동네이다. 세종대왕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1425~1444년)의 외아들 영순군이 1470년 사망하자, 이곳 수서동 광수산에 묘소를 정했다. 이후 그의 아들 삼형제 남천군, 청안군, 회원군이 근방에 집을 지어 정착하면서 ‘3궁’이라 일컫고 이때부터 궁마을, 궁촌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 마을에 어울리는 고즈넉한 역사탐방로가 9월4일 문을 열었다. 수서역~궁마을~가마터 유적지~봉헌사 절터~광평대군 묘역을 잇는 약 2.6㎞, 도보 40분가량 소요되는 탐방로에서는 대모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광평대군 묘역 등 역사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수서역 6번 출구에서 조금만 직진하면 궁마을 입구와 먹자골목이 나온다. 늘어선 맛집들을 지나면 금세 궁마을 공원 앞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공원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탐방로를 만난다.

먼저 조선시대 ‘수서동 유적’을 만날 수 있다. 대모산 북동쪽 사면부에 위치한 이곳은 과거 ‘수서동 절골사지’라 불렸던 곳인데, 2012년 수서동 540번지 일대 아파트 부지를 개발하다가 발굴됐다. 발굴된 유적은 조선시대 봉헌사로 추정되는 절터와 기와 가마터 4기다. 강남구는 2016년 10월 이 유적지를 아파트 부근인 현재 위치로 이전 복원해 향토유적 관람 시설로 조성했다.

수서동 유적지에 서서 남쪽을 내려다보면 도시와 자연이 공존한다는 의미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푸른 숲, 파란 하늘, 아파트가 균형 있게 자리잡은 아름다운 도심 풍경 속에 사찰 유적지를 짐작할 수 있게 세워둔 나무 구조물이 어우러지면서 잠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가마터 4기는 대모산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능선의 북서사면에 있었다. 이곳으로 이전 복원하면서 관람시설로 조성됐다. 가마터 상부를 절개해 가마터 내부를 볼 수 있게 했고, 가마터에서 일하는 사람을 재현한 모형을 연출해 관람객이 이곳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마터 옆은 원래 무단 경작지였는데 이번에 정비 공사를 하면서 ‘궁마을 비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궁마을의 숨겨진 아름다운 비밀 정원이라는 콘셉트로 백일홍·복자기 등 우리나라 고유 수목과 초화류 1만3천 본을 심고 데크쉼터를 조성했다. 이곳은 봄꽃과 가을 낙엽 등 사계절 자연을 느끼면서 휴식과 사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사진 강남구 제공

아파트를 끼고 크게 돌아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궁마을 공원을 만난다. 지난 7월, 주민 130여 명이 장미 2724주를 심어 만든 장미 화단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길을 다 내려와서 건널목을 건너 태화복지관을 오른쪽에 끼고 250m 정도 걸어가면 드디어 탐방로의 종착지인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을 만난다. 총면적 41만2627㎡(약 12만5천 평)의 산에 광평대군 내외의 묘와 아들인 영순군의 묘를 비롯해 광평대군의 양아버지인 무안대군 방번(태조의 일곱째 아들) 내외의 묘 등 왕실가 후손의 무덤 700여 기가 있는 공동묘역이다. 묘역에는 신도비를 비롯해 묘비와 석조물들이 잘 보존돼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강남에는 ‘원조’ 역사탐방 산책로가 하나 더 있다. 강남구 삼성동의 ‘봉은사 명상길’이다. 산책로에는 반송과 백송, 금송, 산사나무 등 조경나무 21종, 1030주를 심었고, 예스러운 풍류를 더해주는 대나무 구간을 조성했다. 특히 봉은사의 명물인 홍매화와 수국이 피는 계절에 방문하면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꽃길을 걸을 수 있다.

역사탐방로를 걷는 일은 아름다운 산책로를 걷는 일일 뿐만 아니라 시간 속에 스러진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기도 하다. 지친 일상 속에서 이렇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산책로야말로 현대인의 ‘소확행’ 아닐까. 길 위에서 성찰과 사색을 하며 내 삶의 이야기에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역사탐방로를 걸어보길 추천한다.

김나현 강남구 정책홍보실 언론팀 주무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