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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관리소 만드니 동네 깨끗해지고 쓰레기 다툼 사라졌어요”

서대문 천연충현 도시재생 사업, 실내 쓰레기배출 거점공간 시범운영
‘문앞·지정 요일’에서 ‘거점·매일’로, 가구 83%가 카드 발급받아 이용

등록 : 2022-10-13 14:39
골목관리소는 재활용·일반·음식물 쓰레기를 한곳에 버릴 수 있는 실내 쓰레기배출 거점 공간이다. 서대문구 천연동·충현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저층 주거지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한다. 운영 10개월째인 영천 골목관리소는 대상 가구의 83%가 카드를 발급받아 이용하고 만족도도 높다. 옥천과 천연 골목관리소도 개소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일 오전 영천 골목관리소에서 김영재씨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고, 최성녀씨는 페트병·캔 자동수거 기기에 투명페트병을 넣고 있다. 골목관리사 김재근씨가 이용을 돕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영천에 이어 옥천·천연도 개소 준비…주민 주도로 지속 운영 목표

운영 10개월, 주민 만족도 9점 이상

관리사 4명 교대 근무해 관리·계도

“구, 운영성과 살펴 확대 여부 검토”


주차와 쓰레기 문제는 서울의 저층 주거지 주민들의 대표적인 골칫거리다. 많은 주민이 아파트 단지처럼 쓰레기 처리가 잘돼 동네가 깨끗해지길 바란다. 이런 주민들의 바람을 모아 실제 쓰레기 문제를 풀어가는 실험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서대문구 천연동·충현동 도시재생 사업으로 진행하는 영천 골목관리소다.

지난해 12월 영천 골목관리소가 운영에 들어갔다. 실내 쓰레기배출 거점 공간으로 재활용, 일반, 음식물 쓰레기를 한곳에서 버릴 수 있다. 운영시간은 매일 오전 6시~오후11시다. 5층 건물의 1층에 자리 잡았다. 2층엔 임시 마을관리소, 3~5층은 복지시설이 있다. 대상인 140여 가구(실거주 기준) 가운데 약 83%인 116가구가 카드를 발급받아 이용한다.

영천 골목관리소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함.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골목관리소 입구엔 경사로를 설치했고 보행보조기구 사용 어르신이 이용할 수 있게 공간 간격이 넉넉하다. 출입문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는 투명유리문이다. 주민들은 카드를 찍고 들어가면 재활용 분리배출 공간, 종량제 쓰레기 수거통,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차례로 이용할 수 있다. 처리기는 100리터 용량 두 대가 번갈아 가며 작동한다. 현재 카드 발급 때 받은 생분해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어 그대로 버리면 된다. 옥상에 대형 필터 환풍기를 설치해 냄새를 제거한다.

지난 6일 오전 최성녀(57)씨가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골목관리소를 찾았다. 최씨는 “매일 생활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골목관리소가 생기면서 무엇보다 동네가 깨끗해졌다”며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왜 버리냐’며 이웃 간 다투는 모습도 사라졌다”고 했다. 골목관리소까지 걸어 5분 거리에 있는 주택에서 30여 년째 산 그가 동네 변화를 전했다. 집에서 재활용품 분리를 미리 하다 보니 이전보다 종량제 봉투 사용량도 줄었다. 최씨는 “처음엔 (쓰레기를 들고 걸어가야 하는게) 조금 귀찮기도 했지만 습관이 되면서 이제는 불편 없이 이용한다”고 했다.

100리터 용량의 음식물 처리기 2대. 열건조 뒤 아래 통으로 폐기물이 나온다. 처리기로 폐기물량이 85% 줄어든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1인 가구 김영재(39)씨는 골목관리소가 생기면서 처음 재활용 분리배출을 했다. “이전엔 다 섞어 문 앞에 뒀는데 골목관리사 안내에 따라 분리배출을 해본 뒤 집에서도 하고 있다”고 했다. 시범사업 대상이 아닌 다른 골목에는 여전히 쓰레기가 쌓인 것을 지적하며, 그는 “골목관리소가 곳곳에 만들어지고 모든 주민이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종이상자를 버리러 온 또 다른 60대 주민은 “카드만 대면 이용할 수 있어 너무 편하고 언제든 (쓰레기를) 버릴 수 있어 집 안도 골목도 깨끗해졌다”며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자주 자랑한다”고 했다. 골목관리소 바로 앞 주택에 사는 그는 “처음에 관리가 잘 안 돼 쓰레기가 쌓이고 냄새날까봐 걱정했는데 이제는 수시로 이용하고 있다”며 “지금처럼 잘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용 주민들의 높은 만족도는 최근 천연충현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약 50가구가 참여한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모든 항목에서 10점 만점에 9점 이상을 줬다. ‘쓰레기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이사 안 가고 싶다’ ‘골목길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보지 않아 너무 기쁘다’ 등의 의견을 직접 적기도 했다.

천연충현 도시재생지원센터 직원들이 페트병·캔 자동수거 기기를 이용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특히 △매일 배출 △생분해 음식물 쓰레기 봉투 사용 △골목관리소 관리 등의 항목에는 9.7점 이상으로 매우 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골목 청결은 9.3점, 분리배출은 9.4점을 줬다. ‘음식물 봉투 크기가 더 컸으면 좋겠다’거나 ‘사용 가능 시간을 더 늘려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이충현 천연충현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쓰레기로 인한 이웃 간 갈등이 사라지고 주거환경 개선과 공동체 문화 확산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골목관리소 관리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데는 골목관리사의 역할이 컸다. 현재 4명의 골목관리사가 교대로 근무하며 시설을 관리하고 분리배출 방법 안내 등을 한다. 골목관리사 김재근(63)씨는 “단순한 분리배출보다 자원을 재활용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의미가 있다”며 “환경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했다. 김씨는 “(재활용 쓰레기를) 한 봉지에 섞어 담아 오면 일일이 분리배출 방법을 알려주는데 때론 잔소리처럼 느끼며 언짢아하는 주민도 있어 조심스럽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다행스럽게도 분리배출 안내를 잘 따라주는 주민이 늘고 있단다.

영천 골목관리소 바깥 모습.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골목관리소는 환경위기 시대에 필요한 시설로서도 역할을 한다. 투명페트병, 캔류 등의 재활용률을 높이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는 열건조를 해 폐기물량을 85% 정도 줄였다.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해 전기를 공급받아 사용한다. 이 센터장은 “주민의 인식을 바꾸고 실천으로 옮기게 해 환경문제 해결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 참여를 높이는 데는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올해 초 골목관리사들이 집집이 방문해 거점 공간을 알리고 이용방법을 안내하면서 가구 참여율이 50%로 올라섰다. 지난 6월 서대문구가 거점배출을 권고하는 고시를 공고하면서 80%를 넘어섰다. 이 센터장은 “(거점배출 변경에 대한) 민원이 생길 것을 우려해 4개월 정도 운영한 결과를 보고 구청이 고시를 추진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골목관리소는 천연동·충현동 도시재생 뉴딜사업에서 주민협의체가 워크숍 등을 통해 만든 계획안 가운데 하나다. 도시재생 사업은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으로 2019년부터 사업계획을 세워 올해 말까지 국·시비 250억원을 지원받아 추진한다. 계획안에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내 배출거점 공간 5곳 설립을 목표로 잡았다. 2곳은 모아 타운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빠지고 3곳(영천, 옥천, 천연)에서 진행됐다. 염봉선 서대문구 도시재생국장은 “옥천은 10월에 준공해 11월부터 시범 운영할 계획이고 천연은 설계를 마친 상태다”라며 “땅 소유주 가운데 연락 안 되는 사람이 있어 지연됐지만 천연도 내년 6월쯤에는 건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천연충현 마을협동조합은 2019년부터 재활용품 분리배출 활성화를 위해 캠페인을 펼쳐오고 있다. 천연충현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애초 골목관리소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속해서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협의체 참여 주민들을 중심으로 천연충현 마을협동조합(2019년)에 이어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2021년 11월, 국토부 인가)을 만들어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마을협동조합은 3년 넘게 분리배출 캠페인 사업(#살림)을 이어왔고,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마관협)은 주말마다 자원봉사로 골목관리소 운영에 참여했다.

박인권 천연충현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대표는 “행정의 담당 공무원들은 인사 발령으로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며 “골목관리소의 운영 주체가 주민이 돼야 지역주민의 지속적인 호응과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은 향후 마을기업으로 신청해 활동할 계획이다.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 인가를 받은 천연충현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주말마다 자원봉사로 음식물 쓰레기와 폐기물 처리 등 영천 골목관리소의 운영을 돕는다. 천연충현 도시재생지원센터 제공

영천 골목관리소 시범운영 기간에는 서대문구가 기간제 근로자 골목관리사 4명을 채용해 직영하고 있다. 11월부터 민간위탁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지난 9월 말 서대문구 의회에서 ‘천연동 도시재생 마을관리사업사무의 민간위탁 동의안’이 통과됐다. 앞서 일부 구의원이 구청의 직영 의견을 내놔 한차례 보류되기도 했다. 상임위(재정건설위)의원들이 골목관리소를 찾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모습을 본 뒤 동의로 의견이 모였다. 앞으로 공개입찰 과정을 거친다. 지역에서 4년 가까이 활동해온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도 지원한다. 운영기관은 10월 말 확정될 예정이다.

서대문구는 골목관리소 3곳의 운영성과를 살펴 향후 확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현재 문전 요일별 생활쓰레기 수거는 효율성은 높지만 청결 등의 민원 문제가 있다. 염국장은 “골목관리소는 아파트 단지처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재활용률을 높이고 동네 환경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다”며 “주민이 스스로 참여해 일자리 창출, 공동체 활성화로도 이어질 수 있기에 행정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