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학생 12만여명이 향한 곳, ‘과외·취업’보다 ‘서울동행’”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서울동행’, 코로나19 사태에도 멈추지 않아
‘초·중·고생-대학생-관리교사’가 서로 롤모델이 돼 ‘함께 성장’

등록 : 2022-10-27 14:41 수정 : 2022-10-27 16:06
서울동행에 참여한 대학생 멘토들은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졌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21일 오전 종로구 연지동에 있는 연동지역아동센터에 모인 대학생 멘토 (앞줄 왼쪽부터) 김현진·윤서영·최영식씨와 관리교사인 김수미 연동지역아동센터 센터장(뒷줄)이 인터뷰에 앞서 밝게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자원봉사는 남을 도우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 한목소리

2009년에 시작, 19년 ‘서울동행’ 도약

학생이 준 손편지, 힘들 때 기운 북돋고

멘티 학생이 멘토가 돼 ‘새 경험’ 하기도

“차라리 과외 하지 그래?” “마지막 학년이니 취업 준비에 집중해야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충고에도, ‘서울동행’ 대학생 봉사자들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자원봉사는 그냥 남을 돕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입니다.”

지난 10월21일 오전 종로구 연지동에 위치한 연동지역아동센터에 모인 대학생 3명이 한목소리를 냈다. 김현진(26, 상명대 식품영양학과 4), 윤서영(22, 가톨릭대 국제학부 3), 최영식(27,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4)씨 등 세 사람 모두 직접 경험한 얘기라고 한다.

이들 세 사람은 서울시자원봉사센터(센터장 김의욱)가 진행하는 ‘서울동행’에 참여했거나 하고있다. 서울동행은 대학(원)생이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아동·청소년 동생들과 나누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멘토링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다.

참여 대학생들은 서울 소재 초·중·고, 특수학교, 대안학교, 지역아동센터, 키움센터 등에서 교육봉사(국·영·수 등 교과목학습지도 등), 재능봉사(동아리·독서지도 등), 돌봄봉사(숙제도와주기·신체놀이 등)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동행은 2009년 서울시자원봉사센터가 서울시 및 서울시교육청과 협약을 맺고 출발한 ‘서울동행 프로젝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 봉사 대상 기관은 서울에 있는 초·중·고부터 시작됐다. 교육격차를 해소하고자 ‘동생들을 돕는다’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고 한다. 당시 ‘동행’은 ‘동생행복 도우미’를 줄인 말이었다.

봉사 대상 단체 학생과 대학생 멘토 선생님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손인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제공

하지만 이후 봉사 기관들이 확대되고 대학생 자원봉사 플랫폼 ‘동행 2.0’(www.donghaeng.seoul.kr)으로 도약하면서, 2019년부터는 현재의 서울동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면서 대학생 멘토 봉사자를 위한 인문학 등 교육을 강화하고, 활동기관 관리교사의 멘토 역할이 확대되면서, 멘토와 동생이 함께 ‘성장의 길을 동행’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 간의 교육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습결손은 물론, 혼자 있는 게 익숙해져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게 어려워진 아이들의 사회성과 정서적 결손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동행은 학교와 학원, 국가와 사회가 코로나19로 문을 닫을 때도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며 문을 닫지 않았다. 관리교사들은 “학교와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을 서울동행의 대학생 봉사자들이 일정 부분 대신해주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렇게 서울동행은 2022년 10월 현재까지 12만6081명의 대학생 봉사자가 참여했으며, 59만3484명의 아동·청소년, 9418곳의 활동기관이 함께한 국내 최대 규모의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4학년인 김현진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동행을 통해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실 김씨가 지난해 했던 봉사는 선생님이 되기 위한 ‘필수 봉사시간 확보’가 가장 큰 목표였다. 김씨는 2학년 때부터 교직과목을 들었는데, 교원 자격증 취득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60시간 교육 봉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김씨는 지난해 2~6월 양천구에 있는 ‘옹달샘 지역아동센터’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 3명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김씨는 이 ‘보수 없는 봉사’를 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난해 자원봉사를 마쳤을 때 여학생 두 명과 남학생 한 명이 정성껏 쓴 손편지를 건네줬다. 편지에는 “선생님 수업을 들으면 하루 동안 우울했던 마음이 치유돼요, 선생님이 최고예요. 평소에 표현을 잘 못했는데, 진짜 감사했다고 전해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는 많이 어려웠는데, 수업 듣고 나서 영어가 조금은 만만해졌어요.” 등 학생들이 봉사시간에 차마 못했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경험’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가치’를 느낀 것이다. 김씨는 요즈음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편지를 꺼내 읽으며 다시 힘을 낸다고 한다.

코로나19로 주로 실내에 있어야 했던 아이들이 대학생 멘토와 야외에서 신체놀이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제공

올해 4학년이 되면서 김씨 주변에는 “이제 마지막 학년이니 취업 준비에 집중하라”고 ‘충고’하는 이가 늘었단다. 하지만 김씨는 올해도 2학기부터 수업 사이의 공강시간까지 활용해 ‘종로구2호점 우리동네키움센터’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돌봄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갔다 오면 마음 한편에서 말 못 할 뿌듯함이 올라와요.” 김씨가 오늘도 센터로 향하는 이유다.

윤서영씨는 2020년 1월 대학 입학 통지를 받은 때부터 지금까지 강서구에 위치한 ‘좋은 친구 청소년 지역아동센터’에서 영어와 국어 교육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시간은 10월 현재까지 모두 648시간이나 된다.

하지만 윤씨가 이 센터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씨는 그때부터 중·고등학교 시절을 센터에서 멘티로 함께 했다. 윤씨는 당시 서울동행에 참여한 대학생 멘토들과 학교 캠퍼스 투어 등을 하면서 대학 진학의 뜻을 확고히 하게 됐다.

“당시 대학생 언니와 공부 방법부터 대학생활까지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제가 대학생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것처럼, 저도 대학교에 가면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윤씨는 자신이 멘티로 생활했던 바로 그 공간에서 ‘멘토가 되는 꿈’을 이뤘다. 윤씨는 2020년 당시 중학교 2학년 학생의 멘토가 됐다. 아는 동생이었다. 윤씨가 멘티였을 때 그 동생은 같은 센터에 다니는 초등학생이었다.

윤씨는 동생과 시험 기간이 겹칠 때는 센터 봉사시간이 아닌 때에도 공부를 도와주는 등 정성을 다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올해 여름 동생이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이후까지 이어졌다. 2년이 넘는 그 시간 동안, 공부에 취미가 없었던 동생은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으로 변해 있었다.

윤씨 역시 친구들로부터 “돈 받고 ‘과외’하는 게 낫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단다. 그때마다 김씨는 말한다. “‘봉사’라서 얻는 것이 더 많아.”

윤씨 또한 멘토가 되면서 보다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여러 명의 동생들을 멘토와 멘티의 관계로 만나면서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무서워하던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릴 적 자신이 은사에게 받은 가르침을 나누기 위해 교육봉사에 참여한 최영식씨는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제가 배운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무심코 던지는 질문을 통해 깨닫는 것이 많다며, 자신도 질문을 많이 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는 멘티와 있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선생님, 저는 100조 정도의 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50조는 아픈 사람들에게, 30조는 돈이 없어서 수술을 못 받는 사람에게 기부하고, 남은 20조로 저는 집이랑 차, 생활용품을 살래요.”

최씨는 대부분을 기부해도 남는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쉽게 말하는 것 아닐까 하고, “그럼 열심히 용돈을 모아서 1만원이 생기면 8천원을 기부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 동생은 그 질문에도 “기부할 거예요. 2천원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 무척 많아요. 편의점에서 도시락도 사 먹고, 사탕도 사고, 놀 수 있는 것도 많아요!”라고 대답했다. 초등학생이지만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과 가치관은 오히려 동생에게 배웠던 경험이었다.

관리교사인 이승민 동북고등학교 선생님이 학교에서 학생용 서울동행 안내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띄우며 밝게 웃고 있다. 이 선생님은 2011~2012년 대학생 멘토로 서울동행에 참여했다. 이승민 제공

서울동행은 더 나아가 교직을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현재 강동구에 있는 동북고등학교에서 서울동행 관리교사로 활동하는 이승민(36) 선생님은 2011~2012년 서울동행 대학생 멘토로 활동했다. 이씨는 지하철 포스터를 보고 우연한 기회에 서울동행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경영학과였던 그는 일반 회사에 취직하거나 고시 공부를 하려 했다. 하지만 서울동행을 통해 ‘교사라는 직업이 내게 잘 맞는다’고 느꼈고, 이후 교사라는 꿈을 갖게 됐다.

“교생 실습 기간이 한 달 주어지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지도해볼 기회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서울동행에서는 아이들 앞에 서볼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미리 경험해볼 수 있었고 임용고시 때 수업 시연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또한 이 선생님은 서울동행 관리교사를 옆에서 보고 배우고,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학교와 참된 교사의 역할과 가치를 찾아갈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현재 동북고가 고교학점제 연구학교로 지정되면서, 이 선생님은 최소학업성취수준 미도달 학생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동행 멘토링 봉사활동의 관리교사를 전담하고 있다.

2016년부터 센터에서 관리교사로 활동하는 김수미(53) 센터장은 “대학생 멘토들이 활동을 처음 하면서 갖는 두려움이나 초조함, 사람들을 통해서 얻고 싶어 하는 것 등을 읽어내려 노력하고, 그에 바탕을 두고 함께 호흡하면서 봉사활동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멘토들의 마음을 파악해서 그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관리교사, 대학생 봉사자의 말처럼, 서울동행을 통한 성장은 ‘동생-대학생-관리교사’라는 3자 구도에서 더욱 힘을 받는다. 관리교사는 봉사 대상 기관에서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대학생 멘토의 멘토’ 역할을 한다. ‘동생-대학생-관리교사’ 구도 속에서 대학생은 동생의 롤모델이 되고, 관리교사는 대학생의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대학생 멘토 김현진씨가 멘티 학생들에게 받은 손편지와 서울동행 봉사단증.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이제 우리 사회가 ‘받는 감사’에서 ‘주는 감사’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동행은 이런 ‘주는 감사’를 체계화함으로써, 동생-대학생 멘토-관리교사 모두 따뜻한 나무로 성장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센터장의 말처럼, 동행이 있어 서울은 점점 ‘주는 감사로 가득한 따뜻한 숲’이 돼가는 것 같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