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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 국가공원답게

용산기지 완전이전까지 1년…5대 쟁점 대해부

등록 : 2016-10-06 14:00 수정 : 2016-10-06 15:36
1904년 일본에 군용지로 강제 수용됐다가 1945년 성조기가 꽂혔던 용산 땅이 110여 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 2003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군기지 이전이 합의되고 2008년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이대로라면 미군과 우리 정부의 잔류시설, 새로 들어설 시설 등으로 국가공원의 모습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온전하게 시민의 품에 돌아올 수 있도록 특별법을 개정하고, 공원 조성 계획을 전면 수정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사진은 용산구 삼각지 쪽에서 바라본 미군기지 모습이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는 역사의 상처가 옹이로 박혀 있다. 그곳은 110년이 넘도록 외국군의 주둔지로 사용돼온 ‘금단의 땅’이다. 제국주의와 냉전의 시대가 한자리에 공존하는,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공간이기도 하다. 내년 말까지 미군기지가 예정대로 경기도 평택으로 옮겨가면 그 땅이 ‘용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품에 돌아온다.

그런데 용산공원의 미래를 놓고 사회적 긴장이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주도하는 공원 조성에 대해 서울시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다. 공원의 규모와 성격은 물론이고 진행 과정과 주체에 이르기까지 갈등 영역은 전방위적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실 용산공원은 그 중요성에 견줘 사회적 공론장에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정부가 짜놓은 시간표에 맞춰 일방통행식으로 사업이 추진돼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러다 지난 5월 주한미군이 본격적으로 옮겨가기 시작하고, 이전 완료 시점이 1년여 앞으로 닥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국가공원의 위상을 지닌 용산공원을 제대로 조성하기 위해 주요 쟁점들에 대한 정치·사회적 합의가 시급한 상황이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인포그래픽 이성훈 기자 lsh@hani.co.kr

서울시 “현행대로 하면 남북 단절된 흉한 몰골 될 것”

“358만㎡ 온전히 회복하고 일제가 세운 기지 108만 평 모두 공원화해야”

쟁점1 공원 내 잔류시설


지난 8월31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공원과 관련해 기자설명회를 열었다. 정부의 공원 조성 계획과 진행 과정에 문제가 많다며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서다. 박 시장은 “용산공원은 국민적 과정을 통해 국가적 가치를 반영한 미래 서울의 심장 형태로 358만㎡로 온전히 회복돼야 한다”며 용산공원조성특별법 개정 추진 일정 전면 수정 등을 요구했다.

“정부안은 반쪽 누더기 공원 계획”

이날 회견에서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358만㎡의 온전한 회복’이다. 애초 일제가 기지를 세운 108만 평을 모두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현 서울시 용산공원전략팀장은 “2027년까지 용산공원을 조성한다는 국토교통부 계획대로라면 애초 면적의 68%에도 못 미치는 반쪽짜리 공원, 누더기 공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의 용산공원 종합기본계획을 보면, 국방부와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정부 시설의 터 93만㎡가 용산공원에서 빠져 있다. 미국 요청으로 2027년 이후에도 남게 되는 드래곤힐 호텔, 미 대사관 등의 터도 30만㎡에 이른다. 일제 용산기지의 32%에 해당하는 규모다. 여기에다 전시작전권이 반환될 때까지 한미연합군사령부(이하 한미연합사)가 추가로 남기로 결정돼, 상당 기간 공원 터가 더 줄어든 형태가 될 가능성마저 있다. 이렇게 되면 용산공원은 남북이 단절된 흉한 몰골을 피하기 어렵다.(그래픽 참조) 남게 되는 한미연합사 부지의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시민사회에서는 용산공원이 상흔의 공간으로 지속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학)는 “정부의 국방 시설과 주한미군 시설이 남아 시민이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 계속 존재한다면 정의의 회복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한미연합사까지 잔류하는 용산공원은 공교롭게도 분단으로 허리가 잘린 한반도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허리만 잘록한 형태로 단절돼, 여전히 국가 권력과 외국 세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비운의 국가공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 “새 협상 고려하지 않아”

서울시와 시민사회는 공원 경계의 온전한 회복이라는 방향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특별법 개정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법 제1조(목적)에 있는 “이 법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미합중국 군대의 서울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 및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에 근거하여 대한민국에 반환되는 미합중국 군대의 용산부지 등을…”의 내용을 손보라는 것이다. 미군 시설의 잔류 근거가 되는 두 협정 관련 내용을 삭제하면 앞으로 미국 쪽과 이 시설의 이전 문제를 협상하는 길이 열린다는 취지다.

그렇지만 현실은 결코 간단치 않다. 용산기지 잔류시설 중에 안보·외교적으로 민감한 시설이 많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서울시 주장대로 하려면 국방부나 주한미군 시설이 옮겨가야 하는데 2008년 제정된 특별법상 잔류가 확정된 시설이어서 이전 계획이 없다”며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국토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용산공원 조성 사업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소파)에 근거해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하고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의 새로운 협상 가능성 등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 시설인 전쟁기념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잔류시설 공원 포함 뒤 장기적 논의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 당장 두 나라의 군 관련 잔류시설을 이전하라는 게 아니라 먼저 공원 조성 부지에 포함시킨 뒤 장기적 관점에서 공원화를 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기념관, 국립중앙박물관 등도 공원 계획과 연계해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서울시는 설명하고 있다. 조명래 교수는 “특별법을 만든 국회가 국가공원의 의미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관련 조항의 개정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민과 냉전의 상흔 동시 증언하는 세계 유일 건축물”

학계·서울시 일제 병영건물 보전 한목소리…기초 실태 정보 태부족

지금은 미군 병원으로 쓰이고 있는 용산기지 안 위수감옥(일본 헌병대 감옥). 기지에 있는 1245동의 건물 중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은 132동에 이른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쟁점2 일제 병영시설 보존

“130동이 넘는 일본군 병영건물이 밀집해 남아 있는 것은 일본에도 유례가 없다. 100년 전 일본의 한반도 대륙 침략의 실체를 보여주는 세계적인 역사문화유산이다.”

2011년 용산기지 안 병영시설을 현장조사한 뒤 김종헌 배제대 교수(건축사)가 내린 평가다. 처음 실시된 이 일제조사 결과, 용산기지 안 건물 1245동 가운데 132동이 1906년 이후 일제강점기에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그때는 건물의 외관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보존 목소리 높지만 유적 정보는 빈약

110년이 넘도록 접근과 개발이 어려웠던 탓에 용산기지는 역설적으로 옛 모습이 남는 ‘축복'을 입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특히나 용산기지의 일제 건물 가운데 일부는 이곳에 주둔한 미군들이 여태껏 사용하고 있다. 위생부대로 쓰이고 있는 ‘위수감옥'(헌병대 감옥)이나 미 합동군사업무단이 자리한 일본군 장교 숙소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가 1935년 만주사변에서 전사한 일본군 제20사단 78연대 병사들을 위해 세운 충혼비는 6·25전쟁 뒤 미8군 전사자들을 기리는 충혼비로 재활용됐다. 신주백 연세대 HK(인문한국)연구교수(한국사)는 “용산기지처럼 식민과 냉전, 거기에 분단의 역사와 현재를 동시에 설명해줄 수 있는 땅과 건축물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시민사회가 용산기지 시설의 보존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가치에 있다. 보존을 넘어 용산공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리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지만 이런 가치가 무색하게 용산기지 안 유적에 대한 정보는 너무 빈약하다. 군사 보안시설이라는 ‘벽’에 막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2011년의 현장조사에서도 일제 병영시설들이 각각 언제 무슨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어떤 재료들이 쓰였는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시설의 ‘이력'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용산기지 안 지하 공간에 대해서는 어떤 조사도 이뤄진 적이 없다.

그런데도 학계 안팎에서는 ‘일제 건물 가운데 80동을 남기기로 했다'는 등의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전기현 서울시 용산공원전략팀장은 “서울시 자체적으로 기지 내부 문화재에 대한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도 뾰족한 대책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6~2010년 전국 미군기지를 대상으로 고분이나 건축문화재 등이 분포해 있는지에 대한 지표조사를 벌였고, 그 이후에는 변동 사항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을 해마다 하고 있다. 하지만 먼발치에서 건물이 그대로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수준이어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국토부 “4~5차례 용역”, 문화재청 “금시초문”

일제 병영시설과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전직 문화재위원 등에게 용역을 줬고, 4~5차례 현장조사가 실시된 것으로 알고 있다. 11월께면 조사를 마무리 짓고 문화재청과 협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토부가 용역을 줘서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듣지 못했다. 현장조사가 미군시설의 내부 등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라면 가치를 평가하는 데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미군이 완전히 이전한 뒤 체계적인 조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시설공원 만들려는 거냐”

쟁점3 정부 시설 수용

지난 4월 국토교통부는 미군이 옮겨가고 나면 용산공원에 모두 8개의 정부 부처 시설을 들이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용산공원 콘텐츠 기획안'이다. 국토부가 제시한 8개 시설은 국립과학문화관(미래창조과학부), 국립어린이아트센터(문화체육관광부), 국립경찰박물관(경찰청) 등이다.(표 참조) 하지만 이런 구상은 발표되자마자 강한 반발에 부닥쳤다. 8개 기관이 용산공원특별법의 취지에 걸맞으냐, 정부 부처 간 나눠먹기 아니냐, 공원을 막개발하겠다는 것이냐, 시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됐느냐 등이 비판의 요지다.

실제로 해당 부처들이 얘기하는 시설의 필요성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많다. 경찰청이 “남영동의 박종철기념관과 가까워 경찰의 과오를 반성하는 장소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의 정보통신 역사와 미래를 체계적으로 보여줘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겠다”며 국립과학문화관을 짓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원 조성의 기본 이념과 (국토부) 콘텐츠와의 연계성이 모호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렇게 성급하게 시설을 확정하고 공원조성계획에 반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여론의 뭇매가 쏟아지자 국토부는 한발 물러섰다. 국토부는 “콘텐츠 검토는 공원 안에 있는 1200여 동의 건물 중 보전과 활용이 필요한 건축물의 재활용 차원에서 추진됐으며, 8개 콘텐츠는 용산공원추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1차로 검토한 것으로 국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발표했다”고 해명했다. 콘텐츠의 입지 결정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는 뜻도 덧붙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론 수렴과 전문가 검토 등을 거쳐 내년 하반기에 용산공원 콘텐츠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의구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국토부가 용산공원 조성을 주도하는 지금의 틀이 유지되는 한 ‘힘 있는’ 부처들의 요구를 제어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 및 지역계획학)는 8월23일 국회에서 열린 용산공원 토론회에서 “국토부의 콘텐츠 해프닝은 용산공원의 기본 이념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계획 과정을 조율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지닌 컨트롤타워가 부재하다는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용산공원은 미래의 모습을 확정적으로 설정하는 마스터플랜 방식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완성하는 확장적 계획”이라며 “현시점에서 모든 콘텐츠를 다 정하고 계획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보여주자”

남산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 안 사우스포스트 지역. 아래쪽의 용산2가동, 왼쪽의 이태원2동 주택 밀집지역과 달리 숲이 울창하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쟁점4 국가공원 정체성

“용산의 미군 반환부지를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국가 주도의 민족역사공원으로 조성하겠다.”

2005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렇게 밝혔다. 용산공원이 ‘국가공원’의 지위를 갖게 된 직접적인 계기다. 이런 방침은 용산공원조성특별법 제1조(목적)에 “…대한민국에 반환되는 미합중국군대의 용산부지 등을 활용하여 국가의 책임하에 공원 등을 조성 관리하고…”라는 내용으로 명문화됐다. 그리고 특별법 2조(기본이념)는 용산공원을 “민족성 역사성 및 문화성을 갖춘 국민의 여가 휴식 공간 및 자연생태 공간”으로 규정했다.

용산공원이 ‘자연생태 공간’이어야 한다는 데는 별다른 반론이 없다. 전문가들은 용산공원이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서울의 ‘허파’ 역할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센트럴파크는 남북 4㎞, 동서 0.8㎞ 길이에 100만 평 규모의 공원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용산공원은 서울의 중심지로, 회색 도시 서울에 생태·문화공원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용산공원을 통해 북한산~남산~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남북녹지 축이 완성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연생태 공간이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해서 저절로 목표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환경 훼손과 오염문제의 올바른 해결, 일제 유적과 생태의 조화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은 많다. 여러 정부 부처들이 나눠먹기식으로 시설들을 집어넣을 경우 ‘시설공원’으로 전락해 생태와 멀어질 가능성이 큰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자연생태 공간’과 달리 ‘민족성·역사성·문화성을 갖춘다’는 게 무엇을 말하는지는 선뜻 정의 내리기 어렵다.

정부의 용산공원 조성 과정을 비판하는 이들이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국토교통부가 국가공원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공원의 경계, 추진 방식과 일정 등에서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용산공원을 국가공원으로 정한 것은 무엇보다 이 공간의 ‘역사적 상처’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잃어버린 국가다움에 대한 반성, 분단에 대한 반성 속에서 나라의 독립, 자주, 국민의 삶의 지속 등과 같은 가치들이 집약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단순한 부지의 반환이 아닌, 100여 년 이상 역사적 흐름을 간직한 수도 중앙의 광활한 108만 평 대지에 대한 공간 주권의 회복인 동시에 정체성의 회복”이라고 비슷한 생각을 밝혔다.

용산공원이 지닌 미래적·탈한반도적 가치도 주목해야 할 영역이다. 신주백 연세대 HK(인문한국)연구교수는 식민과 냉전, 분단이 뒤엉켜 있는 용산의 공간적 특성을 강조한다. 그는 “식민과 열전은 과거이고, 분단은 현재이며, (민족과 지역) 분단 극복은 미래이다. 용산기지를 공원화한다는 것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보여주며, 미래까지 말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용산공원을 한반도에만 가두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용산기지는 단순한 군부대 주둔지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의 식민과 냉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아시아 분단사 박물관이나 세계 냉전사 박물관 같은 기억 공간을 실현한다면 용산공원의 가치를 세계에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용산기지를 조사하고 그 가치를 다듬으며 상상력을 키울 때”라고 밝혔다.


환경오염 실태조사도 없이 시간표만 먼저 만들어

용산기지 환경오염 문제 공원 조성의 큰 변수로 떠올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8월17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근처에 있는 오염 지하수 집수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정보 공개와 주한미군의 정화 책임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쟁점5 졸속 추진·국토부 주도

지난 8월4일부터 30일까지 용산 미군기지 인근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등에서는 1인시위가 이어졌다. 미군기지에서 진행된 오염 조사 과정을 공개하고, 시민참여를 보장하라는 시민단체의 시위다. 신수연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은 “8월4~25일에 제3차 오염조사가 실시됐지만, 주한미군과 정부의 불통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난해 5월 실시된 1차 조사 결과를 알고 싶다는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청구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이 지난 6월 “공개하라”고 판결했지만, 환경부가 항소해 여전히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환경부는 “외교 관련 사안으로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2021년까지 공원 사용 수준의 정화 불가능”

용산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는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서 큰 변수가 될 민감한 사안이다. 전국의 미군기지 중에서 오염사고가 가장 자주 난 곳이 바로 용산기지이고, 오염조사와 정화에 상당한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용산기지에서는 2000년 한강 독극물 방류, 2001년 녹사평역과 2006년 캠프킴 유류 유출 등 1998년 이후에 확인된 오염사고만 14건에 이른다. 지난해 서울시 조사 결과, 녹사평역 주변에서는 발암물질 벤젠이 국내 허용기준치의 646배, 남영역 캠프킴 인근에선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키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가 허용치의 8600배 이상 검출됐다.

문제는 오염조사와 정화에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군 시설로 사용됐던 다른 지역의 사례에 비춰 여러 해가 걸릴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환경공단이 미군 유류저장시설(1958~68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천 문학산 일대에 대한 오염 실태 정밀조사를 벌인 게 2014년 2월부터 올해 6월까지다. 조사 결과, 대상 지역 20만㎡ 가운데 1만8673㎡의 땅이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는 우선 송도역세권 개발 예정 지역을 제외한 곳(오염 면적 6965㎡)에 대해 2019년 12월까지 정화사업을 벌일 방침이다. 조사에서 정화까지 거의 6년이 걸리는 셈이다.

그렇지만 국토교통부는 용산공원의 경우, 2017년 말 미군 이전이 완료되면 2021년까지 환경 정화를 한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그래픽 참조) 2018년에 조사를 마치고 2019~2021년에 정화하는 스케줄이다. 이에 대해 신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은 “한미 두 나라가 조사를 한 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소파)을 통해 오염·정화 책임을 다투는 데에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며 “2021년까지는 공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정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나 시민단체들은 이처럼 정부의 용산공원 조성 프로세스가 앞뒤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현장 접근이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유적이나 오염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없이 먼저 시간표를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 및 지역계획학)는 8월 국회에서 열린 용산공원 토론회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현 단계 계획에서는 공간의 커다란 구조와 기반을 마련하는 데 그쳐야 한다. 부지 반환 뒤 철저한 조사를 하고, 그 이후에 공간 활용 방안을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공원은 기지 반환 뒤 50년 이상 천천히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시민과 미래 세대 참여 길 열어야

국토부가 공원 조성을 주도하는 것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 군과 주한미군의 잔류 시설 문제, 일제 병영시설 문제, 환경오염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관련 분야 학계 전문가와 국방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범정부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다. 아울러 다른 누구보다 용산공원의 주인이 될 시민들이 기부나 성금, 봉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원 조성 과정에 참여하는 길이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정헌 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화가)은 “지금까지 국토부의 추진 과정은 토건적 개발 패러다임에 몰두해 시민적인 창의성과 참여가 배제돼 있다”며 “시민과 지역의 참여를 배제한 채 국가가 개발을 독점하게 되면 외국군이 용산공원 터를 독점해온 것과 마찬가지의 폐해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2050년 정도를 목표 시점으로 잡고 단기·중기·장기 계획을 세울 것을 제안하고 있다. 부지 반환 뒤 단기적으로는 명확한 현장조사와 역사성 규명, 공원 조성계획 변경 등을 시행하고, 중기적으로 토양 정화, 문화재 실태조사 등과 함께 공원 조성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시민이 운영을 관리하고 미래 세대가 참여하는 공원의 모습을 갖출 것을 제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런 형태로 프로세스가 바뀔 수 있도록 우선 국토부 장관이 용산공원 조성계획을 수립하게 돼 있는 특별법 제14조를 손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 “2027년까지 공원 조성” 고수

하지만 국토부는 현재의 프로세스를 수정하거나 법안 내용을 고칠 의향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예정대로 용산공원 조성계획을 2017년 하반기에 세운 뒤 2019년부터 2027년까지 3단계에 걸쳐 단계적으로 용산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에 발표될 용산공원 조성계획에는 기존 건축물 활용 방안, 문화유산 보존 방안, 생태녹지 축 및 경관 조성 방안, 주요 시설 계획 등이 담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