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언어의 날'에는 각 학교에서 사투리로 각색된 연극 등이 상연된다.
해마다 9월26일은 ‘유럽 언어의 날’이다. 유럽연합 안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들을 지키고 보존하며 새로운 언어 습득을 독려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곳곳에서 열리는 강연회, 연극, 포럼 등에서 이날만은 그 지역의 사투리가 표준말을 제치고 당당히 모든 행사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다.
독일에도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다. 베를린도 예외는 아니다. 그중에서도 표준어에 익숙한 귀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말이 있다면 단연 ‘Plattdeutsch’(플라트도이치)가 아닐까 싶다. 가끔 단어가 들리기는 하지만 한 문장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표준어를 일컫는 ‘Hochdeutsch’(호흐도이치)의 ‘Hoch’는 높다는 뜻을 가진 반면 플라트도이치의 ‘Platt’는 납작하다는 의미를 가진 표준어의 ‘Platt’와 철자와 발음이 모두 일치한다. 게다가 플라트도이치가 사용되는 북서부 독일과 네덜란드 일부는 비교적 산이 적고 지형이 낮아 언뜻 낮은 지방의 독일어를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플라트도이치의 ‘Platt’의 어원은 납작하다는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Hoch’ 즉 ‘높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만인의 언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플라트도이치로 기록된 문헌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점차 호흐도이치에 밀려나면서 북부지방의 방언으로 간주되었고, 현재까지도 한 가지 문법과 표기법으로 정리되지 못한 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엄밀히 말해 플라트도이치는 독일의 표준어 호흐도이치의 방언으로 볼 수도 없다. 그 이유는 플라트도이치가 호흐도이치와 마찬가지로 서게르만어군에서 파생된 언어이기는 하지만 호흐도이치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플라트도이치와 호흐도이치는 서로가 서로에게 방언인 셈이다.
언어의 날을 맞아 베를린의 각 학교에서도 이런저런 행사들이 열린 모양이다. 학교에 다녀온 막내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내가 한국 대표로 질문을 받았는데, 북한말은 한국말의 사투리야? 아니면 독립된 언어야?”
이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스스로 한 번도 통일된 한국의 표준말에 대해서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솔직히 국제적으로 남과 북의 언어가 구분되어 인정받고 있는지 여부도 알지 못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뭇거리고 있자니 막내가 답답한 듯 대답을 대신하고 나섰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어. 모두가 알다시피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십 년 동안 남한과 북한은 통일된 한반도의 표준어에 대해 논의해볼 기회가 없었다. 아마 통일이 된다면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말이 사투리라 주장하며 다툴 것이다. 맞아?”
이 글을 읽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우리 막내의 주장에 어떤 설명을 덧붙여 주실지 궁금하다.
1990년대 말부터 플라트도이치는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인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글ㆍ사진 이재인 재도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